강선애

작년 여름의 하우스콘서트. 관객이 가득 찬 작은 공간은 에어컨의 초강력 강풍을 무색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편안했고 진지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음악가들의 연주와 그 울림이 음향의 밀림을 만들었다. 좌식으로 앉은 그 공간은 공연장에서 느끼지 못하던 떨림을 선사했다. 피부로 스며들고 뼈를 울렸다.

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를 이끌어 가는 박창수 대표 옆에는 수석 매니저 강선애가 있다. 그녀는 머리보단 가슴으로 먼저 생각하고, 말보다는 몸이 앞서는 이다. 직책은 ‘수석’ 매니저이지만, 하콘을 떠받치는 ‘암석’ 매니저, 혹은 ‘반석’ 매니저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하콘 살림에 있어서 일당백이자 전방위적이다.

새로운 ‘음악적 사건’의 발현지가 되고 있는 하콘은 올해도 사건 하나를 터뜨렸다. 7월에 ‘원먼스 페스티벌’(ONE MONTH festival)이 시작되면 한 달 동안 27개국 155개 도시에서 432개의 공연이 이어지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풍경들이 ‘하콘’이라는 이름하에 432개의 시공간으로 복제되어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 ‘하우스(집)’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이런 역사를 만드는 것일까. 나는 강선애에게 ‘하우스’의 ‘How’를 물었다.

제 436회 하우스콘서트

▲ 제436회 하우스콘서트(사진출처 : 더하우스콘서트)


하우스콘서트의 시작

예술가의 집

▲ 동숭동 대학로 ‘예술가의 집’
(사진출처 : 더하우스콘서트)

그렇다면 잠시 하콘의 시작을 살펴보자. 하콘의 박창수 대표가 쓴 ‘하우스콘서트, 그 문을 열면···’(2008, 음악세계)을 펼쳐본다. 이 ‘집’의 가장인 그는 작곡가다. 2002년 3월, 1층의 주방과 거실을 트고 2층은 작업실 겸 콘서트장으로 쓰기 위한 공사에 들어간다. 벽을 허물자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지인들은 명색이 무대이니 작은 스테이지라도 하나 만들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박창수는 장소도 넓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관객과 연주자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음악이 마룻바닥을 통해서 피부로, 그리고 온몸으로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의자 생각도 접었다. 이곳에서의 소리는 세상 그 어느 장소보다도 아날로그적으로, 모든 악기도 모든 목소리도 자연 그대로의 소리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음악은 청각예술이자 촉각예술이었다.

2008년 9월, 200회 공연을 뒤로 이 ‘집’은 서울 광장동, 역삼동, 도곡동의 스튜디오로 이사를 다녔다. 피아니스트 김선욱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의 클라리넷 수석주자 벤첼 푹스 등의 클래식부터 강산에와 10cm 같은 대중 가수까지 이 ‘집’에서 연주했다.

하우스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 작전

미친 짓도 10년 하면 예술이 되더라. 10주년을 맞은 2012년에는 하콘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강선애는 하콘의 이름으로 음악을 심을 공연장을 세어봤다. 그 결과, 400개가 넘는 전국의 공연장 중 약 80%가 연중 내내 휴업 상태였다.

“많은 이들에게 ‘문화가 있는 날’ 같은 정책을 잘 알려서 공연장에 가게 하는 것도 중요한데요, 궁극적으로는 공연이 매일매일 우리 삶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가 있는 ‘날’보다, 문화가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니까요.”

작전이 시작됐다. 작전명은 ‘하우스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 작전’ 일주일 동안 전국 21곳에서 100회 공연을 올리는 ‘프리, 뮤직 페스티벌’을 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는 하콘의 형식을 극장 무대에 그대로 적용했다. 음악가와 관객은 살갑게 맞닿았고, 관객들은 무대 위에 편하게 앉아서 관람했다.


“2012년에 ‘공연장 습격 작전’을 잘 끝냈어요. 2013년을 위해서 100여 개의 공연장을 돌아다녔어요. 많은 공연장들이 2013년에는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죠. 우리 쪽에서는 공연료를 낮춰 매력적인 가격으로 제안했고요. 정말이지 많은 공연장이 참여할 줄 알았어요.”

제 436회 하우스콘서트

▲ 2013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 작전(사진출처 : 더하우스콘서트)


선애씨, 꼭 그래야만 했나요?

2012년 ‘공연장 습격 작전’이 끝난 그해의 가을과 겨울은 2013년을 위한 강선애만의 작전이 시작됐다. 홍보에 열을 올렸다. 공연장 관계자들의 지회별 모임에 가서는 2013년 참가 제안서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른바 제안서 습격 작전. 잘 먹히지 않았다. 작전을 바꿔 개개인을 찾아다녔다. 이른바 무조건 습격 작전. 경남으로 차를 몰아 거제, 통영, 함안 등을 찍었다.

“지역에 가면은 좋은 공연장도 있는데요, 이런 데 왜 공연장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허벌판에 공연장만 달랑 있는 곳도 있더라고요. 관계자들은 찾아오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고, 저처럼 멀리서 찾아오면 무언의 압박처럼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인근에 갈 곳이 있어 가는 것이라고 하며 방문했죠.”

초대형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던 ‘공연장 습격 작전’은 지방에선 알려지지 않아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공연장 관계자들과 단 ‘10분’의 만남을 위해서 ‘1시간’씩 운전을 했다. 그렇게 전국의 공연장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제 436회 하우스콘서트

나는 물었다.
“꼭 그래야만 했어요?” 대답이 돌아온다.
“제 눈으로 현장을 보고 싶었거든요.”

기폭제를 마련하다

강선애

“그런데 지역 공연장은 월별로 고르게 가동되지 않을뿐더러 유명 가수와 뮤지컬 초청에 예산을 먼저 편성하고, 남는 돈으로 이런저런 관심 가는 공연을 선택하는 생리인데, 그 과정에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하콘과의 손을 놓거나, 10번의 무대를 약속하고 2번만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수를 세어보니 100개가 조금 넘더라고요.”

1000여 개의 무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꿈과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땀 흘린 보람이 있었다. 2013년, 7월 12일 7시 30분 한날한시에 전국 65개 장소에서 294명의 예술가가 1만 명의 관객을 만난 ‘원데이 페스티벌’이 올랐던 것. ‘하우스’의 종류도 소극장, 가정집, 군부대, 학교 등 각양각색이었다.

같은 침상(同床)에서 서로 다른 꿈(異夢)을 꾼다는 것을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했던가. ‘원데이 페스티벌’은 반대로 이상동몽(異床同夢)이었다. 각각 다른 장소(異床)였지만, 한날한시에 다 함께 음악을 꿈꾸는(同夢), 정말이지 꿈같은 음악프로젝트였다. 그리고 강선애는 ‘원데이 페스티벌’을 더 크게 알릴 기폭제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는 박창수 대표와 다음을 준비한다.

원먼스 페스티벌의 초석을 닦은 원데이 페스티벌

원데이페스티벌

▲ 2014 One Day Festival
(사진출처 : 더하우스콘서트)

2014년에는 ‘원데이 페스티벌’을 동아시아로 뻗어 ‘한·중·일 원데이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총 94곳(한국 47곳, 일본 29곳, 중국 18곳). 이는 음악으로 쓴 삼국지(三國志)였다. 그런데 여기서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고.

“해외와는 일반 공연을 조직하듯이 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에요. 그들은 대개 하콘을 연주자 개념으로 인식해요. 매니저들은 기획자이지만 페스티벌 동참을 제안할 때에 장소, 개런티, 공연 조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보다는 ‘의미’를 앞세우고 동참 의사를 물어요. 그러다가 한 음악가와 닿게 되면 그가 또 동참하고 싶은 다른 누군가를 소개하고, 또 소개해주고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하콘의 제안 이후 현지에서 진행하는 모습도 나라마다 각양각색. 때에 따라서는 나라별 관습에 맞추는 호흡도 필요하다고.

“중국은 중국대로 ‘만만디’(慢慢的, 행동이 굼뜨거나 일의 진척이 느림을 이르는 말)예요. 절차와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요. 설령 현지에서 하콘을 돕는 한국인이라고 해도 그 사람 역시 중국에 있기에 ‘만만디’예요. 일본은 일을 꼼꼼하게 하고 엄청난 개런티와 이익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 페스티벌을 향해서 모아지는 힘이 남다르다고 느꼈어요.”

여기서 ‘박창수 카드’도 한몫한다. 그는 하콘의 대표와 예술감독 이전에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리뮤직의 ‘꾼’이다.

“대표님을 통해 해외 아티스들과 일차적으로 접촉하고요. 의미를 잘 인식시켜 주고, 주변에 소개를 부탁하고, 페스티벌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일으켜요.”

원데이 페스티벌이 갖고 있는 재미와 의미는 국경을 넘었지만, 오히려 국내에서는 그 뜻이 잘 관철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공연장 관계자들은 좋은 프로그램이라고는 인식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되면 계산기를 두드려요. 무대 위에 올라가는 관객들이 많아봐야 100여 명인데요, 부가세 포함 회당 220만 원으로 관객들에게 1~5천 원의 티켓을 판매해도 수익이 안 나잖아요.”

경제논리로 접근하지 말라며 강선애가 가슴과 마음을 내밀지만 공연장 관계자들이 머리와 계산을 앞세울 땐 속상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마음의 온수와 현실의 냉수를 적절하게 하여 미지근한 온도를 맞춘다.

제 436회 하우스콘서트

“때로는 저희처럼 뜨거운 마음을 갖고 호의를 보내는 담당자를 만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위의 관리자가 ‘수익’과 ‘마이너스’를 내세울 땐, 이해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하콘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재단도 아니고 개인 사업자이고, 지금의 프로젝트들도 전국적으로 하지만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만드는 것이지, 우리 자체가 거대한 하나는 아니잖아요.”

재미보다 앞서는 의미의 축제,
2015년 7월의 원먼스 페스티벌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만드는 힘, 이것이 하콘의 힘이다. 이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 위치한 하콘 앞에는 많은 과제와 숙제가 놓여 있다. 하우스콘서트, 지방 순회 기획공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인 ‘문화가 있는 날’ 공연, 하우스토크까지 많은 양의 공연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7월에는 27개국 155개 도시에서 432개의 공연이 이어지는 ‘원먼스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이는 앞서 살펴본 ‘원데이 페스티벌’의 확장판으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호주, 영국, 독일, 러시아, 미국, 페루 등에서 열리는 하콘의 축제이다. 클래식을 중심으로 재즈, 국악, 프리뮤직부터 무용, 연극까지 전문 공연장은 물론, 일상 속 소소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184개의 공연이 개최될 한국에선 황병기(가야금), 정경화·이경선·권혁주(바이올린), 강태환(색소폰), 강은일(해금), 유진규(마임), 이경숙·김태형(피아노) 등이 참여한다. 올여름, 수많은 음악가들은 이 ‘집’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것이다.

제 436회 하우스콘서트

▲ 2015 ONE MONTH FESTIVAL(사진출처: 더하우스콘서트)



많은 이들이 하콘의 이러한 저력을 그리고 예산을 궁금해할 것이다. 예산의 약 3분의 1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고, 3분의 2는 하콘이 부담한다. 무엇보다도 하콘을 받쳐주는 가장 든든한 예산은 하콘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원데이’가 ‘원먼스’로, 한·중·일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하콘의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하콘의 생산자로 넘어와 함께하는 것이다. 강선애는 처음에 “맡을 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하콘의 문화를 즐기고 먼저 맛보게 한다”라고 한다.

“하콘의 공연을 보여주고 이 공연이 왜, 어떻게 이뤄지게 되었는지 설명해줘요. 집에서 시작했던 하콘의 역사와 전국프로젝트와 페스티벌의 의미를 모두 설명해주고요. 의미에 동참하지 않고 일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원먼스 페스티벌의 막이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하콘은 새로운 음악과 관람문화를 기대하는 이들에겐 ‘팝콘’이자 이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전 세계로 뻗어가는 ‘월드콘’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하우스콘서트는 음악생태계의 온도를 적절히 조정하고 유지하는 비닐 ‘하우스’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강선애가 있다. 하우스콘서트에서 그녀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보자.

필자사진_송현민 필자소개
송현민은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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