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공연예술 프로듀서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

김미선 이번 발제를 준비하며 예술가와 프로듀서는 권력을 겨루는 적대적 관계일까, 함께 역할을 진행하는 관계일까, 아니면 시너지를 발휘하는 관계일까 고민했다. 내가 경험한 프로듀서의 포지션은 창조성이 결여된 기능적, 예술가의 보조적 역할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프로듀서가 창조적이지 않은 역할일까? 창조성(예술가)과 비즈니스(프로듀서)는 태생부터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프로듀서로서 참여한 연극 두 편을 사례로 소개하며 예술가와 기획자의 소통법이라는 화두를 던질 생각이다. 물론 이것은 프로듀서로서의 관찰일 뿐이다. 그래서 다루지 않은 여러 변수가 많이 존재함을 미리 밝힌다.
공연1은 40년 경력의 연출가, 23명의 배우, 57명 스태프, 전체 객석 점유율 99%, 전통적 제작 방식 등으로 제작비 대비 회수율이 높았던 작품이다. 공연2는 청소년극 시리즈로서, 소극장 규모이고 신인에 가까운 연출가와 11명의 배우, 35명 스태프 등 실험적 제작 방식으로 제작 대비 회수율이 12%에 그친 작품이다. 이 두 공연이 막을 내린 이후 공연1의 경우 연출가와 주요 배우에게 상당한 성과가 돌아갔고, 공연2의 경우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으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다. 특히 공연2는 수평적 네트워크로서, 비공식적 협력 관계와 동등 계층 간의 관계를 통해 확장되는 형태를 보여 주었고 집중보다는 보이지 않는 힘과 시너지가 발현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반면, 공연1은 수직적 네트워크로서, 문화적 생산과 유통의 공급 사슬 관계를 통해 확장 및 집중화된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에 따라 공연1은 오더메이드가 되어 있는 방법으로만 공연할 수밖에 없었고 성과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향후 재공연을 하는 것보다 성공이 중요한 것이다. 이는 집중적이고 강한 연결을 보여 주는 공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연출가와 무대미술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상승하고 전 회 매진이라는 결과에 따라 이런 식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확보되고 주연 배우가 유사한 역할에 캐스팅되는 등의 기회가 열리는 반면, 후속 작업이 많지 않아 새롭게 콜이 오지 않게 되고, 연극 작업에 회의를 느끼는 배우와 스태프가 존재하게 된다. 공연2는 할까 말까 망설이다 진행되는 공연으로서, 다양성과 복합성, 약한 연결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의견을 나누며 실험적으로 진행된다. 그 결과 후속으로 재공연이 예정되고 기존 연극계의 호불호가 다르긴 하지만 관객인 청소년의 만족도가 높고 배우와 스태프의 재공연 참여 의지가 높게 된다.
크게 대비되는 이 두 공연의 개념을 통해 예술가와 프로듀서의 관계와 소통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네트워크와 연극 제작 시스템을 연결한 이유도 천재성을 띤 창조자, 예술가에게만 주목하는 것이 아닌,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과 네트워크에 주목한다는 점은 사실 공연을 제작하는 사람에게 반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하늘에서 떨어진 듯 연출가와 아티스트에게 모든 공을 돌리는 것을 많이 봐 왔다. 물론 아름다운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그 사람에게 맞는 집을 연결해 주는 복덕방 아줌마도 창조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데이브 슬레스윅 나는 예술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배경을 가진 프로듀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제작과 연기를 배우며 공부했고, 아직도 연출이나 감독을 한다. 나는 상호 연결성이 강한 예술가들 사이에서 성장하고 같이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그들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더라.(웃음) 또한 내 친구들 모두 자신의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자신의 프로덕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창의성이 발휘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창의적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하는 것 사이에는 단절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지속하면서 예산을 찾고 파트너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지인들을 통해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친구들의 작품을 구현하고 현실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그들과 프랑스 축제에 참가하거나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등 협력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프로듀서로서 나 자신을 브랜드화하기로 결정했다. ‘마더보드 프로덕션’이라는 제작사를 만들고 공식적인 브랜드를 내가 하는 일 주변에 넣기로 했다. 이때 이전부터 같이했던 두 친구와 처음 아이디어에서부터 협업했다. 사실 이것이 내가 한 모든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파트너들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작업에 대해 대화한다.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있어 2년 동안 아티스트들과 협업한다. 그들 중에는 신진 예술가도, 전문 예술가도 있다. 지난해에는 10개의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아이디어의 핵심에서부터 협력하며, 예술가들과 아이디어를 놓고 대화하는 편이고, 그들이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려고 노력한다. 프로듀서로서 겪는 어려운 점은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있어 예술가가 모든 힘든 일을 내가 다 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예술가와 프로듀서의 파트너십

성무량 아티스트와 프로듀서가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프로듀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프로듀서라는 말을 꺼냈다가 예술 감독에게 혼이 난 적 있다. 예술 감독이 최고의 자리이고, 기획자라고 해서 한국말로 플래너라고도 불렀다. 프로듀서를 한국어로 만들 때 매니저, 시니어 매니저, 디렉터, 프로그래머, 프로듀서라고 부르곤 했다. 나 같은 경우 프로듀서라고 불리는 게 편하지 않다. 프로듀서는 좀 더 제작에 손을 대고 관여하는 쪽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프로그래머라 불리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기관이나 재단에서 아트매니저 등 행정에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에릭 퀑 이전에 데이브와 프로듀서라는 역할을 놓고 많은 얘기를 한 적 있다. 먼저 나는 마카오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다. 연극 제작에 고등학교 때부터 참여하며 대본 작가, 연출가, 무대 디자이너 등을 경험했다. 주로 협업 프로듀서는 하지 않았고 기획자 역할을 했다. 정부에서 일할 때는 장소 관리나 프로그래밍에 참여했고, 일부 예술가들과 작품의 프로덕션 작업을 했다.

성무량 에릭은 프로듀서의 역할이 매개자 역할까지를 맡게 되는 경우를 말한 것 같다. 예술가와 기관 혹은 예술가와 관객 사이, 긍정적인 사례로 우정까지 나누는 관계로 발전했지만 사실 프로듀서로서 예술가와 우정을 나누기는 쉽지 않다. 내가 만났던 예술가는 (운이 없었는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해야 하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와는 굳이 논쟁하지 않았고 원하는대로 해 주는 데만 급급했다. 초창기 선생님들과 주로 일을 했고 그 사람들의 천재성을 건들면 안 되며, 아무리 이상한 소리를 해도 구현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에릭과 데이브의 경우 행복한 관계에서 작업했던 것 같다. 친구 같고 가족 같은 파트너십. 한국에서 이게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김미선 연애하는 것 같다. 예술가를 짝사랑하면서 모든 걸 들어주고 모든 걸 해 주고. 그것은 예술가가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걸 떠나서이다. 그렇게 했다가도 배반당하는 느낌을 사실 많이 받았었고 그런 과정에서 과연 어떻게 프로듀서로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극단 목화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고 '파임커뮤니케이션즈'라는 에이전시에서 제작, 기획하다가 월드뮤직 그룹 아나야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프로듀서로 일했다. 여러 예술가를 만났는데 그 과정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프로듀서보다 외롭지 않았던 이는 없던 것 같다. 함께한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팀이 아닌 경우도 발견되고 기쁨도 많았던 것 같지만, 다시 한번 차분히 생각해 보니 예술가와 프로듀서는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소통법이라는 것은 다른 존재에 대해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나아가려면 비전을 함께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발현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갈 수 있어야 하는, 자가 능력 같은 에너지가 프로듀서로서 필요한 게 아닌가 한다.

에릭 퀑 데이브나 나나 독립 프로듀서로 일했기 때문에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었다. 같이 일할 예술가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작품, 태도나 자세를 보고 우리가 좋으면 같이 작업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독립 프로듀서로 살아가기

성무량 한국에는 여전히 독립 프로듀서가 별로 없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직장에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 한꺼번에 10명 또는 20명과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데이브나 에릭은 처음부터 좋아서 친구들과 작업하면서 "너는 아티스트, 나는 프로듀서, 너는 둘 다 맞겠다." 하며 발전된 관계이다.

데이브 슬레스윅 나 역시 조직이나 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있다. 아트매니저나 프로듀서의 경우 페스티벌에서 일하며 엄청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정부나 기관의 요구에 맞추다 보면 훌륭한 예술품이 나오지 않는다. 몇몇 아트매니저들은 창조적 본능을 좇지 못하고 예술혼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리더십은 중요하다. 리더십이 바뀌지 않으면 프로듀서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환경이 바뀌고 있음을 한국에서도 호주에서도 볼 수 있었다. 많은 정책이나 안건이 떠돌고 있는데 이런 것이 진정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예술가들과 프로듀서들이 진정으로 교류한다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면 기계적으로 일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좋은 예술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여러 역할을 해 봤기 때문에 다른 차원과 분위기, 관점에 익숙하다. 결국은 내 충동을 따르고 내 본능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성무량 신생 예술가의 성장을 돕기 위한 프로듀서의 역할이 무엇인가?

데이브 슬레스윅 신진 예술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도예술가가 훌륭해서 보수를 받지 않고 헌신한 경험이 있다. 네트워킹도 하고 인간관계도 돈독히 쌓는 등 초기 투자가 중요하다. 펀딩 단체나 예술 기관, 기획자가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야 돈이 흐른다.

성무량 3년 차, 5년 차, 10년 차에 다 포기한다. 살아남는 게 강하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피폐해지지 않고 좋아서 시작한 이 일에 근접하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예술가든 프로듀서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오히려 창조하는 아티스트가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중 에릭과 데이브는 펀딩을 받고 있나? 펀딩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

에릭 퀑 마카오 같은 경우에도 프로듀서에게 구체적인 펀드가 있진 않다. 행정가가 극단에서 일할 경우 펀딩을 받는다. 독립 기획자는 그렇지 않다. 내 경우에는 프로젝트 지원금을 신청한 적 있는데 예산을 살펴보고 대부분은 지원해 줬지만 프로듀서 지원만 제외시켰더라. 그래서 프로듀서가 전체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왜 정부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것인가 성토했다. 결국 아티스트가 모든 펀딩을 받았고 아티스트가 자신 몫의 절반을 나눠 주겠다고 나섰다. 그 아티스트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균형을 맞춰 가며 작업하여 노력하고 있다. 정부 부처, 펀더들과도 예술 교육 등과 관련된 프로젝트에서 협업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 덕분에 지속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었고 직원들도 계속 일할 수 있으며 나 또한, 동시에 예술가들과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콘퍼런스나 서울아트마켓 같은 행사에도 참여하며 개인적으로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마카오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지역도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비교적 풍족한 펀딩을 운용하는 유럽의 경우 아시아 독립 기획자들이 이와 같은 콘퍼런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려 노력하고 있다. 나 역시, 유럽에서 지원받아 콘퍼런스와 미팅에 참여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덕분에 네트워킹도 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니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신뢰와 관계를 형성해야만 한다. 코어아트마켓과도 관계를 맺기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하며 작품을 팔려고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참여한다. 네트워킹은 내 작품을 홍보하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제공_서울아트마켓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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