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약 력/·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극 전문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 연극 교육연구소 인터 부소장/·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상임연출가/·판소리창작 공연단체 판소리만들기    자 예술감독
/연 출/·2004 <가믄장아기>/·2011 뮤지컬 <재주 많은 다섯 친구> <소년이 그랬다>/·2012 <겨울이야기>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어쩌면>/·2013 <구름>, <사천가>/·2014 <억척가>/수 상/·2012 서울어린이연극상 연출상/·2010 서울어린이연극상 극본상, 작품상, 연기상

음악평론가 송현민은 동시대 공연예술 현장의 교차로에 서 있는 사람이다. 날마다 새로운 예술 감각을 익히되, 거기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찾는 사람이다. 그 자신도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결국 예술이 가야 할 지점을 그리고, 그 사이에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며, 그 신인이 다음 지점까지 어떻게 걸어가는지, 어떤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바로 평론이자, 평론가의 역할이라 그는 말했다.
이 젊은 평론가의 특별함과 희소성은 그의 이력에서 단번에 알 수 있다. 현재 클래식 음악과 전통 공연예술을 동시에 오가면서, 다양한 현장에서 비평과 저술, 자문 역을 수행하고 있는 그는 음악에서 더 나아가 예술 전반을 다루는 문화평론의 길을 선명하게 내는 중이다. 동시대 음악평론가로서 ‘발굴과 기록을 통해 사람을 찾는 작업’을 이어 가는 그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 보았다.


예술고 시절에는 클라리넷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는 한국예술학을 전공한 이력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고요. 학창 시절 예술과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동기들과는 사뭇 달랐을 것 같은데요.
청소년기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의 서재 한편엔 동양화와 문방사우가, 다른 한편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음반이 있었어요. 클라리넷을 전공하기 전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국악 공연이 오르던 국립극장에 자주 다녔죠. 클래식 음악 공연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각 장르에 대한 감이 있었고, 그 둘을 같이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학자라면 왼편, 오른편 가릴 것이 아니라 마땅히 양쪽을 다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죠. 대학에 와서야 이런 경험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학생들이 다른 전공 수업을 굉장히 자유롭게 오가며 공부하는 분위기였어요. 음악만 공부했던 저에게 미술, 건축, 영상 등 시각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거였죠. 덕분에 공연 속에서 시각예술적인 요소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고, 무대미술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졸업 후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세상에 많은 예술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또한 거기에 속한 수많은 이론들, 즉 예술에만 해당되는 이론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정치·경제·사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걸 목격하고 있어요. 학창 시절 예술을 통해서 사회학, 정치학, 인문학 제반을 공부한 것이 지금 평론가로서 활동하는 데 큰 연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졸업을 앞두고선 전공에 애착을 갖고 앞으로 그것을 살려 나갈 것인지, 또 전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수많은 의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학생들은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사회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 놓여 있잖아요. 현재 음악평론가로 활동하기까지 어떤 고민과 선택의 과정들이 있으셨나요.
졸업을 앞두고선 전공에 애착을 갖고 앞으로 그것을 살려 나갈 것인지, 또 전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수많은 의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행복할 수 있을지, 매번 그것을 의심하고 확인할 수 있는 (반대의) 기회와 맞닥뜨리는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좋겠죠. 현재 대학 교육과정에는 비평을 위한 전문적인 커리큘럼이 없어요. 제가 전공을 살리려 했다면 학자로 방향을 잡았을 겁니다. 저는 졸업 후 전공을 바로 살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대신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있으면서 예술과 교육에 대한 여러 현상을 목격했고, 대안을 찾아서 기획안과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내면에 자리한 비평성을 발견했어요. 그제야 이것을 정리하고 풀어내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려한 환경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 혹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대학에서 공부한 이론과 비평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앞으로 잘 가꿔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굳어진 거죠. 틈틈이 공연을 보고 필명으로 글을 쓰면서 비평가로서 가져가야 할 기초 체력들을 키웠어요. 이후 ‘객석예술평론상’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 평론가 박용구(1914~) 선생과 함께, 2013


예술 현장에 발을 내디딘 후,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생 시절 필명으로 활동한 것이 현장 직업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문기인 동시에 과도기였죠. 학생 대 현장이라는 과도기, 비평의 기능과 시스템이 사라진 시대에 평론을 꿈꾸는 과도기였어요. 등단 전까지는 현실과 내 안의 잠재력을 비교하고, 또 확인하는 과도기가 계속됐고, 평론가 직함을 얻은 지금은 다른 과도기에 있습니다. 하나의 평론 작업이 끝나면 세상은 그만큼 더 빨리 흘러 어디론가 가 있고, 그것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과정 역시 과도기의 연속입니다.
평론가는 과도기에 처한 현상을 계속 읽어 내야 합니다. 늘 변하는 현상 사이에서 과도기적 입장에 처하는 것이 평론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비평의 순기능을 잃어버린 시대에 평론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1970~1980년대처럼 평론가와 예술가가 치열하게 논쟁하는 시대도 아니고, 평론가 그룹이 예전과 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언젠가 평론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기록과 분석,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기능을 꽃피울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동시대 음악평론가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갖춰야 할 것을 꼽아 주신다면.
순발력! 순수 음악 장르뿐 아니라 음악이 기능하는 다양한 장르, 즉 뮤지컬, 연극, 무용, 다원 등에 담긴 음악을 색다르게 읽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각, 그리고 새로운 자세로 접근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보는 것 못지않게 많은 걸 듣는 시대입니다.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민감히 반응할 수 있어야겠죠. 평론가를 글만 쓰는 서생 같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흐름 가운데 ‘핵’을 낚아채는 동물적 감각이 있어야 하는 직업입니다.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더 넓은 지대에 끊임없이 자신을 보내야죠. 특정 커리어나 스펙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순발력! 순수 음악 장르뿐 아니라 음악이 기능하는 다양한 장르, 즉 뮤지컬, 연극, 무용, 다원 등에 담긴 음악을 색다르게 읽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각, 그리고 새로운 자세로 접근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보는 것 못지않게 많은 걸 듣는 시대입니다.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민감히 반응할 수 있어야겠죠.



평론가는 예술가의 작업이 이뤄지는 밀실, 그 작업이 완성되어 나오는 광장을 모두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현장을 지켜보면서, 기관이나 단체가 했던 작업을 반성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자문 역을 맡기도 하죠. 그 밀실과 광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다만 글쓰기 능력은 기본이고,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이 읽을 줄 아는 힘, 텍스트를 꼭꼭 씹어 먹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겠죠. 늘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당황스러운 모습의 예술을 처음 마주했을 때 분석하고 읽어 낼 수 있는 인문학적 힘이 중요합니다.



▲ 평론가 박용구 선생 『먼동이 틀 무렵』 출간 기념식 및 100세 기념 생신 잔치


그렇다면 지금의 일을 수행하면서 만족과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음악은 늘 흘러가고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현장에선 막이 오르는 오후 8시에 태어나 10시가 되면 사라지죠. 평론가로서 그 탄생과 소멸의 광경을 목격할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늪의 기포처럼 부글부글 올라오게 만드는 예술가와 작품, 분석하여 기록하고 널리 퍼뜨리고 싶게 만드는 예술가와 작품을 만날 때 만족과 행복을 느낍니다.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직업인으로서의 만족이 중첩되는 지점이죠.

예술 현장에 몸담은 동안 어떤 종착지에 다다르길 바라시나요?
동시대 비평 행위는 앞으로 계속 필요합니다. 작품을 선별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예술가와 작품을 유통시키기 위해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 비평의 범주에 포함되죠. 글의 형태로 존재하는 비평의 기능은 약화됐지만, 동시에 비평은 아직도 많은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어요. 평론가는 예술가의 작업이 이뤄지는 밀실, 그 작업이 완성되어 나오는 광장을 모두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현장을 지켜보면서, 기관이나 단체가 했던 작업을 반성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자문 역을 맡기도 하죠. 그 밀실과 광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것을 좀 더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동시에 이곳에서 우리나라 비평의 역사를 총정리하고 싶고요. 지금은 그런 자료들이 별로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전공하고, 사회 활동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지금 공연예술계에는 천재를 만들기 위한 정책과 너무 많은 수혜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 대한 믿음 이전에, 자신이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전제되어야 정책과 시스템이 주는 기회를 자신의 능력과 적절하게 결합해 이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요새는 그 분야에 대한 믿음이나 관심, 기대 없이 그저 무료로 누릴 수 있는 혜택에 휩쓸리거나,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유명인을 보기 위해 강의를 듣고 여러 기회를 마주하는 것 같아요. 주어진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되, 그것의 전제는 자아 파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필자소개 필자소개
김선영은 건국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월간 『객석』 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무대와 공연 뒤에 얽힌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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