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에게 창작 및 거주공간을 제공하고자 마련된 ‘인천아트플랫폼’(구 중구미술문화공간)이 2009년 10월 개관에 앞서 지난 4월 3일 인천시로부터 위탁운영을 맡은 인천문화재단의 오픈도어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외부에 모습을 공개했다. 인천시가 근대 건축물 보존방안 연구용역을 2000년에 시작했고 2004년부터 설계를 시작했으니 무려 9년 만에 일이 성사된 것이다.


근대개항도시 인천의 공간적 매력

오랜만에 인천에 가는 길이어서 인근 지역도 둘러 볼 겸 느긋하게 코스를 잡은 것이 ‘근대 개항기’라는 기억에 접속하는데 주효했다. 차이나타운-역사문화의 거리-아트플랫폼 순서로 점심과 산책을 곁들인 뒤 오픈도어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먼저 인천 차이나타운에 들려 이곳 특유의 매운 자장면으로 점심을 했는데, 퇴락한 기운이 완연했던 십여 년 전과 달리 특유의 밝고 강한 붉은 색으로 치장한 식당과 상가거리로 깔끔하게 변모해 있었다. 중국의 경제 활기로 화교의 위상이 높아진 때문인지 거리는 정돈되어 있었고 차이나타운이라는 문화적 일관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곳곳에 보였다.

이어지는 역사문화의 거리 또한 개항기의 목조와 석조건축물이 지니는 향수가 그득해서 20세기 초반 거리의 흥취를 맡아볼 수 있었다. 도시의 고층아파트의 스카이라인에 익숙해진 눈이, 낮으면서도 중량감 있는 근대건축물의 힘에 매료되는 순간이었다.


명분을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

역사문화의 거리와 자연스레 이어지는 아트플랫폼은 총 13개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2500여 평 대지에 두 줄로 늘어선 붉은 벽돌건물 사이로 너른 길이 펼쳐지고 각 건물들은 원래모습을 유지하면서 예술작업 용도에 적합하도록 리모델링을 마친 상태이다. 대한통운 창고건물과 (구)일본우선주식회사와 같은 개항기 건물은 최대한 보존하여 철골로 보강한 뒤 전시장 등으로 사용하게 된다. 건물천정에 남아있는 목조구조가 깊은 맛을 더해주고 있었고, 시기별로 제각각의 공간감을 주는 건축물들이 예술가들의 작업의욕을 북돋고도 남음이 있었다.

근대건축물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정책테마가 명분상의 가치를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 변모하는 표본적 사례를 발견하는 듯했다. 주변의 집합적 건물들이 모여서 발산하는 아우라는 서울역사와 같은 단독건물의 외로움과는 달리 시대적 공간감을 실어 나르고 있었고, 근대개항기의 공간들이 회고시키는 기억의 환기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급격한 산업화의 영향에 따른 불균형의 흔적도 눈에 띄었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석조건물 옆에 70년대에 지어진 개량식 시멘트 건물이 덧붙여져 기묘하면서도 익숙한 풍경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불균형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묘한 역사성과 매력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인천시가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하는 인근지역의 문화관광지구 개발이 이러한 지역적 특이성을 손상하지 않고 배려 깊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01. B동 전경 02. 자료실 외관 03. 신축된 아트샵 외관 04. 공방 외부


창작공간 중심이지만 시민접근성도 수월

아트플랫폼의 주요시설인 개인스튜디오 20실과 게스트룸 9실은 주로 창작작업에 제공된다. 개별 스튜디오의 천정이 높아 다양한 작업이 용이하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주변의 다양한 여러 개의 공간들을 문화지구 개념으로 포괄하면서 시민접근성을 고려한 복합적인 용도의 공간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전체 공간구성은 크게 보아 예술가를 위한 창작 및 전시공간과 시민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커뮤니티 및 교육공간으로 구분된다. 배타적인 여타 창작공간과 달리 이곳은 외부와의 담장이 없어 시민의 접근이 수월할 뿐더러, 인천문화재단의 교육프로그램 의지가 왕성해 예술가와 시민이 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변모해 갈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중앙로를 중심으로 갈라져 있는 A단지와 B단지를 이어주는 브릿지와 B동 뒤편에 공중산책로를 만들어 유기적 구성을 높인 점이 눈에 띄었다. 많은 극장과 전시장의 공간구성이 폐쇄적이고 외부와의 단절감이 강조된 반면 아트플랫폼은 공간구성상 개방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었다. 이런 공간의 특성을 바탕으로 창작스튜디오, 공방, 자료관, 교육공간, 전시실, 공연장 등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을 지향한다.

● 아트플랫폼 공간구성
창작공간(33%) 전시공간(15.5%) 교육공간(21.5%) 커뮤니티 공간(25.5%) 사무공간
스튜디오(20) 갤러리(1,2층) 교실(4) 아트숍 사무실 1
게스트룸(9) 야외전시장 실습실(1) 커피숍(식당) 자료실 2
공방(3개동) 커뮤니티 홀 공연장
공동작업실(1) 다목적실
* 출처 <인천 아트플랫폼 건축설계도면>


미션, 운영인력, 프로그램 등 구체화 노력 필요

이번 행사에서는 10월 개관을 앞두고 사업 개요가 발표되었다. 창작스튜디오 중심의 레지던시프로그램과 연계전시를 주요사업으로 하고, 세미나와 워크숍 등을 통해 학술적 활기를 모색한다는 것이 주된 사업방향이다. 비전은 국제교류프로그램을 통해 동북아의 거점을 지향하고, 예술창작-유통-향유를 아우르는 매개활동을 통해 지역문화를 아우르겠다는 것이다. 구체적 사업계획을 발표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설명회에 참여한 지역작가들은 더 구체적이고 손에 와 닿는 내용을 듣고 싶어 갖가지 질문을 던졌다.

사실 아트플랫폼의 규모로 볼 때 중장기 로드맵이 다소 불명확해 보였고 여러 가지 사업안이 제시되었지만 큰 줄기를 잡아내기가 힘들었다. 물론 지역에 근거한 문화공간의 경우 지역성과 국제적 인지도 획득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고 그것은 좀처럼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아트플랫폼은 지역진흥이라는 목표 외에 동아시아의 예술이 거쳐 가는 거점으로 활용될 정도의 규모와 공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국제적 거점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확실한 미션설정과 그에 따른 실행계획, 한편으로는 운영인력과 프로그램의 전문성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보인다.

아트플랫폼은 국내 문화공간 인프라의 초점이 미술관, 공연장 중심의 발표중심의 공간에서 창작과 교류라는 지점으로 확산된다는 신호탄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10여 년간 발표공간은 확대되었지만 그로 인해 국내에는 콘텐츠의 부족현상이 심화되는 와중이다. 금년 중으로 서울과 경기지역에도 규모 있는 창작스튜디오의 확충이 가속화될 예정이다. 그 선두를 여는 인천문화재단이 조만간 탄탄한 조직구성과 함께 멋진 비전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01. 전시장 02. 공연장 03. 공동작업실 04. 스튜디오 05. 자료실



도쿄 원더사이트, 공간별 미션 구체화한 작가 성장 프로그램 운영

도쿄에 소재하는 원더사이트(wonder site)에 방문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확한 목표설정과 구체적 계획이었다. 원더사이트는 도쿄 내에서 3곳의 공간(혼고, 시부야, 아오야마)을 운영하고 있는데, 각각의 성격과 그 연계가 명확하였다. 이들은 도쿄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해 지원하고 국제적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3개의 공간에 구체화시켰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lsquo;발굴한&rsquo; 예술가를 프로그램에 따라 &lsquo;육성하고&rsquo;, 성장한 예술가는 &lsquo;지원한다&rsquo;라는 3단계로 역할을 구분하고 있다.

먼저 신진예술가를 공개경쟁으로 선발하고 혼고에서 개인전시를 지원한다. 여기서 선별된 예술가는 다음으로 &lsquo;시부야&rsquo;에서 기획전시를 통해 성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작품판매, 워크숍 등을 통해 작가의 다양한 활동을 매개한다. 아오야마에서는 국내외의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를 위한 본격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게 된다. 작가들은 이 세 단계를 거치고 난 후, 국제적 흐름과의 접촉을 위해 해외기관의 레지던시와 국제아트페어 참가를 지원받는다. 원더사이트는 2001년 개관한 이래 이 프로그램을 정착하여 매년 1~2명의 국제적인 작가를 배출하고 있었다. 도쿄의 공간이 비싼 탓인지 원더사이트의 공간 입지는 그다지 좋지 못했고 공간을 세 곳으로 나눈 것도 목표의식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선택한 방법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창작-유통-향유의 과정 중 작가육성과 창작에 최우선권을 두면서 나머지 요소들을 결합해 나가고 있었다. 이는 정확한 목표설정과 구체적 방법론이 잘 결합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천문화재단
도쿄 원더사이트


오세형

필자소개
오세형은 연극분야에서 연출, 기획, 제작에 참여하였고, 2005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만남과 자극을 위한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 젊은 예술가 집중육성 등에 관심이 많고 독일의 탄츠하우스 같은 현장과 제도와의 흥미로운 만남을 주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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