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를 표방한 일군의 대안공간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이다. 이들 대안공간들의 주요활동은 젊은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고 이들의 미술계 진출을 위한 새로운 교두보 마련에 집중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젊은 작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대형 공모전이 있었으나, 해마다 학연, 지연 등 비리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행사 주관단체의 미적 성향만을 반복재생산하는 심의구조 속에서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창작 욕구는 반영되기 어려웠다. 또한 정부와 대학의 입시정책에 의해 미대졸업생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들의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상태였다. 결국 이러한 미술계의 획일성과 미술정책의 부재는 참신한 젊은 작가의 화단 진출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창작열에 불타는 젊은 작가들에게 남겨진 최후의 선택은 결국 자비를 들여 전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대안공간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 때가 IMF 시절이었음을 고려해 본다면, 신진, 유망작가들을 찾아내 이들에게 지원금과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대안공간의 등장은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이후 대안공간들을 통해 많은 수의 젊은 미술인들이 배출되었으며, 또한 이들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미술시장으로 진출하여 한국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안공간은 그 수가 늘어 10여 곳을 상회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정부(국공립 미술관)와 시장(상업 갤러리)의 기능을 보완하면서 예술계의 NGO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안공간, 다양성으로 한국미술에 활력

대안공간 풀 전시광경
이러한 대안공간의 공격적인 활동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안공간의 권력화에 대한 우려를 내놓은 바 있다. 그 말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러한 발언은 대안공간의 구조적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안공간의 특징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양성’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권력의 분산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미술계를 대표했던 80년대 미협, 90년대 민미협의 경우와 비교하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미협과 민미협의 경우 단일한 미적지향과 획일적 조직을 갖고 있었던 반면, 2000년대 대안공간은 다양한 미적지향과 수평적 조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각 공간마다 독립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상이한 미적지향과 활동들을 통해 선의의 경쟁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에서 대안공간의 다양성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안공간의 다양성은 동일한 목소리를 끌어내야 할 때, 종종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안공간들은 ‘대안공간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일 년에 두 개의 공동행사(Door to Door, 국제작가포럼AFI)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공간들이 모여 만든 협의체가 공동의 행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대안공간의 다양성 확보가 미술계의 자체적 노력에 의한 것보다는 한국사회의 변화가 미술계에 반영된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계의 수동적 자세는 제도적 개선과 보완이 요구되는 한국미술계의 상황에서 무기력한 측면이 있다.


상업화, 비영리성과의 상충이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 대안공간의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재정문제이다. 현재 한국미술시장의 과도한 팽창과 비교할 때 대안공간의 재정적 빈곤의 그림자는 더욱 또렷해진다. 대안공간 출신 작가들의 상업화랑 진출이 빈번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뜨겁게 달아오른 미술시장에 뛰어들어 재정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 이유는 미술의 상업화가 대안공간의 설립목적인 비영리성과 상충해서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미술시장의 획일성 때문이다. 한국미술시장은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취향의 획일성과 유명작가에 대한 쏠림 현상이 반복되면서 시장의 질적 전환을 이루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공간이 미술시장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게 된다면 미술시장의 질적인 변화는 요원할 뿐 아니라, 이것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대안공간의 독자적 정체성 형성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브레인팩토리 외관, 인사미술공간 외관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안공간의 다양성을 통해 경직된 한국미술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다변화된 미술시장을 바탕으로 대안공간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선순환 구조는 불가능한 것인가? 대안공간의 다양성이 미술시장의 질적 변화를 유도하여 미술계 전체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대안공간의 안정적 재정확보의 문제는 대안공간의 개별적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안공간의 재정지원을 위한 정책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제도개선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 해법은 개별적 대안공간들이 만들어내는 차이의 공명 속에서 제도개선을 위한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대안공간에 요구되고 있는 이러한 이중적 역할은 제도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제도의 디테일을 만들어 가야 하는 한국사회의 한계적 상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때 비로소 대안공간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견실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고승욱

필자소개
고승욱은 미술작가이자 대안공간 풀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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