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는 담론이라기보다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당위'가 아닐까. 그럼에도 경영의 현장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여전히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면서 또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weekly@예술경영]은 창작단위(단체, 개인 아티스트)와 환경(축제, 공간)을 키워드로 예술경영의 현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지형을 살핌으로써 특성화의 '당위'를 확인하는 데에서 나아가 예술경영의 현 단계를 점검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 ② 축제(시각)
양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축제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으로 확산되는 축제문화가 질적으로는 얼마나 지속가능한 성공적인 축제인지 생각해야 할 시기이다. 이러한 점에서 '축제의 특성화' 문제는 그 시의성과 함께 '축제'와 '축제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요구와 함께 제기된다.



축제, 정치 경제적 기획의 연장


한국 사회에서 축제의 양적 팽창은 자방자치제도와 관련이 깊다. 90년대 중반을 지나 지방자치제가 정착하면서 지역 고유 문화예술의 정체성 찾기, 지역주민들의 여가선용과 문화예술 향유권을 제공하려는 공공서비스의 요구, 그리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자원이라는 필요가 만나 축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축제기획이 일종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기획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지역축제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정치경제학을 배경으로 양산되어 왔다. 적은 예산과 효율적인 기획으로 지역주민의 애향심을 고취하는 동시에 지역 고유의 풍속과 특산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제와 지역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는 선택의 관계가 아니라 필연적인 삶의 문제이다.


통계를 보면 대략 하루에 3회 이상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데,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 비수기를 빼면 축제가 열리는 성수기에는 하루에 수십여 회의 축제가 동시에 열린다. 양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축제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말 밀레니엄을 전후로 축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그와 함께 점차 섬세하며 정밀한 기획을 통한 풍부한 미적 경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 또한 증가하였다.


지금은 양적으로 확산되는 축제문화가 질적으로는 얼마나 지속가능한 성공적인 축제인지 생각해야 할 시기이다. 이러한 점에서 ‘축제의 특성화’ 문제는 그 시의성과 함께 ‘축제’와 ‘축제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요구와 함께 제기된다.




주체, 장소, 주제 등으로 살펴본 축제 유형


연간 주위에서 열리는 축제들을 무작위로 살펴보자. 보령머드축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하이서울페스티벌, 청계예술축제, 논개페스티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헤이리페스티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 와우북페스티벌, 벚꽃축제, 문경찻사발축제, 전주한지문화축제, 아산성웅이순신축제, 하동야생화문화축제, 무주반딧불축제, 청주직지축제, 금산인삼축제, 천안흥타령축제, 화천산천어축제, 대관령눈꽃축제, 그리고 수많은 항구와 어촌에서 열리는 전어축제, 쭈꾸미축제 등등.


일반적으로 축제는 하나의 프로그램 또는 하나의 예술장르 등 개별 단위의 형식이나 내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수의 프로그램과 예술장르 또는 다층의 형식과 내용이 결합된 복합체일 것이다.


축제의 성격을 구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축제를 주최하는 주체의 성격에 따라 공공영역의 축제와 민간영역의 축제로 나뉜다.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차이는 축제가 지향하는 목표가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에 집중하느냐 아니면 수익을 목적으로 하느냐로 구분된다. 또한 축제 참여 대상이 한 지역 또는 국내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세계 각국의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축제인지에 따라서 축제의 성격이 구분될 것이다. 대체로 지역축제들은 국내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고 예술축제의 경우 국제적인 축제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서울에서 열리는 축제인지 아니면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인지 구분해 볼 수 있다. 주제별로는 지역 고유의 풍속이나 특산품을 주제로 한 축제와 보편적인 테마를 갖는 축제로 나눠 볼 수 있다. 또한 예술축제와 비예술축제로 구별해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예술축제는 중앙정부가 주체인 경우 예산과 축제의 스케일에 있어서 동아시아권에서는 최고 수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그렇고 부산영화제가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는 축제의 이름을 달고 탄생했지만 정체불명의 정책적 계산에 의해 진행되는 축제들도 상당수 볼 수 있다. 수많은 크고 작은 축제들의 집합체인 ‘하이서울페스티벌’이 그렇고 또 최근 ‘한강르네상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그렇다. 말 그대로 총동원령을 내리는 이러한 기획들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이웃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행사들은 축제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고 ‘축제의 특성화’의 문제선상에 놓이지도 않는다.


어째든 축제들은 그 주제나 형식은 달라도 결국 무언가 다른 지역 또는 다른 축제와는 다른 것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예술축제를 지향하는 경우 보다 견고한 미학적 입장과 함께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와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1. 2008 와우북페스티벌 2.2008 청주직지축제 3. 2008진주남강유등축제 4.2008헤이리판페스티벌






특성화의 길들


축제의 특성화 관련해 지역축제의 특성화문제와 예술축제의 특성화 문제로 크게 나눠 생각해보자.


앞서 보았듯 우리나라의 지역축제란 지역경제 또는 지역발전과 동일한 문제로 이해된다. 따라서 지역축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이란 결국 지역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들의 한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축제의 일반적인 문제는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지역고유의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이벤트성 행사, 전시성 또는 과시성 행사, 예산집행의 비효율성, 관주도의 행정편의주의에 따른 축제기획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니 전국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90%가 넘는 지역축제의 경우 ‘축제의 특성화’란 바로 이와 같은 아주 평이한 오류와 문제들을 교정하고 지역주민들과 축제 참가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축제로 간다면 굳이 ‘특성화’라는 표어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2008 광주비엔날레, 2008부산비엔날레


조금 생각해보면 지역 축제의 성공 여부는 해당 지자체의 축제담당 공무원의 축제의 ‘축제성’과 축제의 ‘고유성’에 대한 평균 수준 이상의 이해와 관심, 그리고 전문가 집단과의 파트너십을 위한 노력과 관련된다. 그러기 위해서 지자체의 문화담당 공무원의 신분과 업무에 대한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함께 외부 전문가 집단과의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위한 원활한 소통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지역의 행정관들과 의회와 주민과의 지속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성공적인 문화기획 중 상당수는 실제 축제프로그램을 수행하기에 앞서 다년간 최소 수십 회에서 최대 수백여회에 걸쳐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만든 지자체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요컨대 지역축제의 특성화란 결국 축제를 실제 기획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들 간의 성공적인 소통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성과 고유한 문화를 고려한 보다 다양한 축제의 형식과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2008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그러면 나머지 예술축제들의 ‘특성화’는 어떻게 볼 것인가. 예를 들면 시각예술분야의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미디어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이천국제도자기비엔날레, 대구청년비엔날레 등등. 이들 축제들도 점점 본래의 시각예술 이외의 각종 공연예술과 시민참여행사들이 덧붙여지고 있다. 점점 축제들은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점차 주위는 수많은 축제와 여흥과 놀이들로 넘쳐난다. 여기서 ‘축제의 특성화’란 ‘놀이의 특성화’로 번역된다. 그 과정에 예술이 한 몫 한다. 그러니 예술축제들의 ‘특성화’란 본래의 취지와 방향에 부합하는 예술축제의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굳이 하나의 예술축제가 모든 예술장르와 형식과 주제를 아우를 필요도 의미도 없다. ‘특성화’란 ‘고유성 갖기’ 또는 ‘특이성 찾기’가 될 것이다.




예술축제의 고질적 문제,
전문성 안정성 지속성


또한 매년 반복해서 열리는 예술축제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해당 예술축제의 예술성과 미학적 방향을 결정하는 예술프로그램 전문가들의 안정성과 지속성의 문제이다. 비엔날레의 경우 예술감독의 선정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르는 풍경이 때마다 반복되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과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여되는 대형 국제예술행사의 경우 예술외부의 정치경제학적 판단이 우선적으로 고려됨으로 인해 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라 요동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오랜 기간 심사숙고를 통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 예술축제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려는 의지, 매회 예술축제를 성공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문제로 수렴된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축제문화에 대한 이해의 고양과 관련된다. 수준 높은 축제 소비자가 수준 높은 축제의 자원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축제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주체들의 선구적인 노력이 우선 경주되어야 한다.


결국 ‘축제의 특성화의 문제’는 축제문화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축제란 무엇인가?’, ‘축제의 축제성이란 무슨 의미인가?’,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축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대안을 내놓는 과정에 ‘축제의 특성화’의 어떤 구체적인 모습이 잡힐 것 같다.



김노암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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