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극장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자리는 무대와 객석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극장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고안하거나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작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극장은 공연예술생태계의 거점이자 사회적 소통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weekly@예술경영]은  월간 고양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누리]와 공동기획으로 공연예술생태계의 거점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가는 극장의 운영사례를 싣는다./ 편집자 주
스위스 빈터투어시립극장은 언어극, 음악극, 무용극 등 극 중심 공연예술 전문극장으로 예술성 높은 프로그램을 통해 극장의 애호가 층을 넓혀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예술공연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극장을 위해 다양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공연관람의 생활화'와 '생활 속의 공연장'을 모토로 실시되고 있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프로그램이 빈터투어 시립극장의 특징이다.

빈터투어는 취리히에서 북동쪽으로 20km 떨어진 곳으로 스위스 국내외 교통의 요지이자 산업과 경제의 부유함을 바탕으로 문화, 예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대도시의 편리함과 작은 도시의 서정적인 아늑함을 함께 가지고 있는 빈터투어는 찾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빈터투어시립극장(Stadttheater Winterthur)은 이 도시의 대표적인 극장으로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다. 빈터투어시립극장은 지난 1979년 개관했는데, 1970년대는 현대연극, 오페라, 뮤지컬, 발레와 같은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관객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적합한 공연장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극 중심 공연예술 특화

유럽 대다수의 시립 또는 국립극장은 일반적으로 각 극장 소속의 발레단, 오페라단, 오케스트라가 있고, 소속 단체의 기획공연으로 운영된다. 반면 빈터투어시립극장은 가스트슈필하우스(Gastspielhaus)로 구분되고 있는데, 이는 극장에 전속 예술단체를 두지 않고 초청공연으로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극장을 말한다. 한편 빈터투어시립극장은 국제적 공연장으로서 ‘유럽의 집’(Europaeisches Haus)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프로그램의 양적ㆍ예술적 측면, 그리고 관람객의 규모와 참여도, 인프라 구축의 측면에서 빈터투어시립극자은 독일어권 지역의 가스트슈필하우스 중 단연 선두이다.

스위스 빈터투어시립극장 외관
787석(16×13×18.7m) 규모의 이 극장에서는 극 중심의 모든 공연예술 장르, 즉 음악극(오페라, 오페레타, 뮤지컬), 언어극(연극, 희극), 무용극(발레, 현대창작무용 등), 청소년ㆍ어린이극 등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9월 초부터 다음해 6월 초까지 계속되는 공연시즌에서 약 120여 회의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2007/8년 시즌에는 75개의 작품이 총 118회 공연되었고 10회의 낭독, 낭송회와 45회 작품해설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극 프로그램 중에는 영어, 프랑스어로 공연되는 ‘영국연극’, ‘프랑스연극’이 특징적 이다. 이러한 원어공연은 영국연극과 프랑스연극이라는 유럽 연극의 전통성을 상징하는 것이면서 빈터투어시립극장이 그만큼 연극 전문 공연장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독일어권 이기지만 스위스가 국제적 요충으로서 다언어 국가라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어공연의 관객층은 특정 마니아층으로 한정되어있다.

극 중심 장르 이외에도 각 장르의 접경분야에서 소위 복합장르로 새로이 탄생되는 작품들이 무대 또는 극장의 훌륭한 로비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러한 기획 공연은 연극의 입지를 사회적으로 더욱 확고히 하고, 보다 폭넓은 대중적 관심과 동참을 얻기 위한 목적이 있다.


공연 전 해설 프로그램, 백스테이지 등 운영

빈터투어시립극장은 공연관람을 보편화하고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유도하기 위해 공연 전 약 45분 동안 작품에 대한 해설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해설 프로그램은 모든 공연에 대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작품이 특별한 주제나 문화적 이해를 필요로 할 경우에 실시된다. 공연을 관람하지 않더라도 해설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그밖에 관객 확보를 위한 부수적인 서비스로 백스테이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선정된 주요 작품의 무대장치와 소품 등을 무대감독이 가이드하며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빈터투어시립극장은 무대공연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다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극장공간을 제공하여 극장 로비와 레스토랑에서 각종 연회와 문화행사, 회의, 세미나, 워크숍, 토론회 등이 개최되고 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인근 지역은 물론 스위스 전 지역 그리고 국제적으로 문화예술계 전문인들과의 네트워킹을 구현하고 있다. 방송 매체, 여행업체, 각종 협회와 같은 단체와의 교류에도 적극적이며 지역 호텔업체와의 협력에도 힘을 쏟는다. 빈터투어시립극장은 극장과 지역사회의 긴밀한 관계망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극장 로비의 카페와 로비를 활용한 시낭송회, 파티 모습



정액권제로 할인서비스와 관객확보

빈터투어시립극장의 주요 마케팅 전략은 ‘선불정액권제도’(Abonnement)로 지금까지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7년간 정액권 구매율이 57%~64%에 머물렀으나 2007/8년에 성장추세로 밝혀졌다. 특히 발레와 탄츠테아터(Tanztheater)의 경우에는 70%를 기록하고 있다.

선불정액권제는 공연시즌 전에 일정 금액의 정액권을 구입하고 연간 프로그램 중 정액권 금액의 범위 내에서 공연을 선택하여 예약 구매하는 제도이다. 무용, 프랑스연극, 영국연극, 복합패키지, 재즈, 오페라/오페레타, 아방가드, 연극 등 장르별로 Ⅰ~Ⅴ등급까지 가격대별로 세분화 되어 있다.1) 일반 선불정액권 외에도, 공연시즌 중에 일정금액(50스위스프랑, 한화 약 6만원)을 지불하고 정액권을 구매하여 관람권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반액정액권, 일정 금액의 정액권을 지불하고 지불한 정액권 금액 한도 내에서 원하는 공연을 5주 전에 예약할 수 있는 선택정액권(10% 할인) 등으로 다양한 정액권제를 실시하고 있다.

정액권제를 통해 관객들은 최고 25%까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자신만의 관람석을 지정해 놓을 수도 있다.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극장에서 줄을 서서 대기할 필요가 없는 점이 장점이다. 또한 정액권은 상품권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매회 공연에 티켓 두 매에 10%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결국 정액권 구매를 통해 정기적으로 자연스럽게 극장을 출입하며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는 점이다.

극장에는 감독, 홍보, 매표, 기술진 및 관리담당을 합하여 총 6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재정, 예술, 기술 홍보 등 각 분야별 1인의 감독과 이 감독들을 돕고 있는 각 1인의 비서를 제외한 약 55명의 직원은 무대기술 스태프와 티켓매표담당 및 관리담당이다. 빈터투어시립극장의 각 분야는 매우 독립적이며 동시에 서로 긴밀히 협조하는 합리적인 운영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인상을 받았다. 분야별 조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조로울 정도로 각 감독 한명 한명이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감독 지안 지아노티, “드라마틱한 시 구현을 추구한다”

예술감독 지안 지아노티극장의 브레인이자 공연작품의 경향과 주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단연 예술감독이다. 2000년부터 빈터투어시립극장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지안 지아노티(Gian Gianotti)는 연극연출가로 유명하다. 지안 지아노티는 취리히대학에서 독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후 베를린, 밀란, 파리, 취리히에서 연출경력을 쌓았다. 1973년부터 스위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연극연출을 하고 있기도 하다. 문학적 구상을 기초로 하는 기획력과 다양한 예술장르의 결합이 그의 작품의 특색으로, 다양한 언어와 장르로 500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작업한 화려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관은 “가능한 최소한의 것으로, 그러나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함” 이고, 가장 중요한 간접자본은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회의식적인 시문학 소양을 바탕으로 ‘관계’, ‘권력구조’, ‘비전’, ‘서로 다른 견해와 문화의 만남’, ‘소속과 급변하는 환경에 처한 인간’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모든 예술작품에 있어서 드라마틱한 시의 구현을 추구한다고 한다. 이 같은 그의 철학 또는 원칙은 극장의 운영방침과 극 장르 전문인 빈터투어시립극장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작품과 주제선정에 있어 그의 모든 지식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열정이 예술감독으로서의 전문성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빈터투어시립극장은 고유한 철학과 명확한 지향점을 추구하며 전문적인 체제를 구축하여 운영의 효율성을 확대해 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극장이 계량적인 목적달성, 즉 이윤창출에 앞서 관객의 관심과 참여로 소통하는 극장, 공연관람의 생활화, 다양한 이유로 관객이 찾게 되는 생활 속의 극장이라는 점일 것이다.

에언스트 볼벤드(Ernst Wohlwend) 빈터투어 시장은 2008년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고객만족도와 상승하고 있는 선불정액권제의 통계를 빌어 빈터투어시립극장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스트슈필하우스로서 국제공연 예술계와의 네트워킹과 수준 높은 예술작품의 공연유치에 성공하였고 관객의 문화예술에 대한 다각적인 욕구를 충족하였다며 만족스러움을 표현한다. 무엇보다 빈터투어 시의 문화 예술적 위상을 국제적으로 끌어올린 빈터투어시립극장을 볼벤드 시장은 “스위스의 창”이라 칭송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고 있다.


1) 각 장르별로 가격대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무용(BT)의 경우 I등급 250(30만원)~V등급 100(12만원)까지 있다. 복합패키지(G1)의 경우는 I등급 345(42만원) ~ V등급 130(16만원), 오페라(M1)는 I등급 300(36만원)~V등급 120(15만원)까지 있다. 일반적인 공연입장료는 최고 70(8만원)에서 입석 10(1만2천원) 수준이다. (단위: 스위스프랑)
임민숙

필자소개
임민숙
1985 이화여대 무용과 재학 중 독일유학을 떠나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사회학과 신문방송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7년부터 국제공연예술기획 인터쿨트(Inter-Kult)의 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