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연은 비평가 겸 기획자, 작가 겸 기획자가 활발한 미술계에 비평가로서의 정체성과 의미를 고민하는 비평가이다. 느리지만 견고한 자기-조직화의 과정에서 다른 속도와 의미를 만들어 가는 비평가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연구자에서 평론가로

대학에서는 조각을 전공했다.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해서 4년간 실기 전공을 했고, 졸업하자마자 바로 동 대학원 예술학과에 들어갔다. 딱히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당시에는 기획자나 미술사, 평론가로 활동하던 선배들이 실기 전공 후 이론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당연하게 순수미술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미술사든 미술비평이든 학문이 하고 싶어서 이론을 전공하는 코스를 밟았다.

2008년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바로 미술 비평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연구와 강의를 하는 연구자로서 활동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스친 생각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관심사들이 실제 한국미술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비교해 온도 차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때 좀 더 현장에 밀착된 일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평론 공모에 도전했다.

2012년 <아트인컬처>의 ‘뉴비전’ 공모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비평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년 동안 압축적으로 리뷰, 서문, 심사, 자문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했다. “제 나이에 ‘젊은’, ‘신진’이라는 타이틀이 좀 무색하긴 했죠. 새로운 얼굴이기보다는 예전부터 활동해 온 사람이라는 느낌을 다들 받았을 거예요. 그래서 겨우 1~2년 활동했는데도 나이 때문에 중견 비평가라는 이미지가 좀 있더라고요.(웃음) 제 경우는 약간 독특한 사례였어요.”

비평가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연구가 관심 있는 주제나 시대에 대해 사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라면 평론은 이제 되어 가는 것, 변수를 살펴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평적 담론을 주도하면서 언어로 만들어 가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전시 기획을 하지 않고, 오롯이 비평가로서의 직업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일종의 전업 비평가(평론가)의 정체성을 고집했지요.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구조적이고 비평적으로 보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평론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요.

비평가로 활동하시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잡지사 원고료는 적기도 하고, 전시 서문의 경우에는 한 달에 1~2건 정도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전업 비평가로 생활하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어요. 그것보다는 평론가로서 당대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담론을 형성하고 표현해야 하는데, 리뷰만 쓰다가 소비되는 것 같아 익숙했던 연구 방식과 자신의 역량을 고민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비평 언어, 전시, 작업 주제가 어느 정도 수렴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땐 유사한 비평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지금 바로 현장의 역동성이나 속도도 좋지만, 거기에서 이탈한 잔가지가 그에게는 더 소중하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작업하는 작가들 말이다.

평론을 전업으로 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사실 글 잘 쓰는 전시 기획자는 많이 있잖아요. 반대로 평론 일을 전업으로 하는 젊은 평론가들은 드물죠. 그래서 전시 기획을 의도적으로 피해 왔던 것도 있어요, 어떻게 하면 평론만 가지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죠. 전시 기획에 대한 유혹이 몇 번 오긴 했어요. 저를 각인시키는 데 전시 기획만큼 임팩트 있는 것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전시 기획을 하면서 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내 평론에 미치는 영향들을 생각해 봤어요. 평론가가 선호하는 작가나 전시 주제를 정하는 일이 초창기 활동하는 저한테는 부담스럽고 버겁더라고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작가들을 선정해 전시하는 일에는 조금 더 신중을 기하고 싶어요.

어떤 작가나 주제에 관심을 두고 계신가요? 학교에 있을 때는 현장의 역동성이 굉장히 흥미진진했지만 그게 현장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저는 엄청난 속도의 궤도를 벗어나 느리게 개인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전업 작가에게 관심이 있어요. 꾸준히 작업하며 전시를 하는 그들의 속도도 중요하죠. 누가 봐도 자명한 작가가 아니라, 다른 속도를 가진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것을 인식하고 끌어낼 수 있는 비평 언어를 고민하고, 예술의 다양함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야 한다고 봐요. 그게 바로 비평가의 또 다른 과업이죠.

평론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저는 작가와 협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그게 충족이 안 되는 건 서로 무리하고 있다는 것이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고 피드백이 없다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서문을 쓰는 경우, 가장 좋은 건 전시가 정해지고 나서 준비 과정에서부터 작가의 자료를 공유하면서 글로 협업하며 함께하는 거예요.

시나 소설처럼, 때로는 드로잉처럼 유연하게 글쓰기

최근 들어 그는 자신에게 맞는 글 쓰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비평의 언어가 동시대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감수성일 수는 있어도 진리나 정답은 아니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면 가장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한두 해 비평가로 활동하다 보니까 이제는 그림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제가 작가가 되지는 않죠. 비평가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시가 될 수도 있고 소설이 될 수 있고 드로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렇게 확장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요즘 체감하는 중이다.

글을 쓸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미술 비평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는 활동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더라고요. 가장 일반적인 건 잡지사에 전시 리뷰를 쓰거나 카탈로그의 전시 서문을 쓰는 일이에요. 한국에서 평론가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건 리뷰와 서문, 이 두 가지 글의 형식을 통해서죠. 하지만 비평가라고 하면 당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담론을 형성하고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훨씬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표현해 내야 해요. 그런데 저는 몇 년 동안 전시 리뷰 쓰다가 소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결심이 필요했어요. 전시 리뷰는 조금씩 조율해 가면서 이슈나 담론에 맞는 시각을 제시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스스로도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죠.

비평 활동을 하실 때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면요? 미술계가 경제적 부분이 취약하긴 하지만, 저는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열심히 일하고 글을 쓰면 정당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작가들이 작업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 정중하게 원고료에 관해 확인을 하기도 하고, 글이 무단으로 게재되는 것에 대해서도 관리를 해요. 작가 작업실도 가고, 전시도 보고, 여러 자료를 보는 것이 1차 과정이고 짧은 글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그걸 가볍게 소비하려는 제안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는 현재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비평 언어에 관심이 있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더불어 글이 가진 이미지로서의 효과와 구조, 정서에 관한 책도 준비 중이다. 건조한 이론과 비평을 담은 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이 어떤 식의 이미지로 흔적을 남기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평이야말로 유연함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비평이 여러 가지 시각적 옷을 입고 다양한 흔적을 남겼으면 한다.

인생UP데이트

비평가를 하려는 분들이 전문적 완결성에 대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그러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어요. 이슈와 담론도 중요하지만, 연구 방식과 현장에 대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몰입과 집중이 필요하죠. 글과 조사가 함께 하는 능동적인 방법을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글 쓰는 방법을 찾길 바라요.

안소연 프로필
학력
- 홍익대학교 조소 전공
-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석사
-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박사 수료

주요 경력
-『22명의 예술가, 시대와 소통하다』(궁리, 2010) 공저
-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 오브제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재조명’(『현대미술사학』 제27집, 2010) 논문
- Art in Culture <뉴비전 평론상> 수상(2012)
- <제2회 아마도 애뉴얼날레-목하진행중>(아마도예술공간, 2014) 전시 기획 비평가
- 現 대학에서 미술사 및 미술 이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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