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별 문화재단 설립이 가속화되면서 문화예술제도 정책에서 문화재단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지역협력형 사업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예술지원제도와 정책에서 문화재단의 역할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곧 예술환경의 주요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weekly@예술경영]은 문화재단의 설립 현황을 살피고 운영 현황을 통해 문화재단의 역할을 가늠함으로써 변화되는 예술환경을 전망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③ 광역2(신생)
능동적인 정책과 제도수립이 더디면 더딜수록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잃고 행정적 완고함과 경직된 제도성이 강조되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중앙에서 생산된 맞춤형 제도와 지방정부의 관행적인 지원방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하는 일이 문화재단 설립 초기의 핵심적인 일이다.


문화영역이 점차로 조직화되면서 예술의 사회적 위치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규정하려는 욕구가 늘어난다. 이 때 총체적인 사회화 과정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요인이나 저항하는 요인에 비해 관리되는 세계의 행정적인 일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암암리에 하게 된다. 관리기술의 확장은 앙케이트나 이와 유사한 과학적 방법과 융합되어 있다. 이런 일들은 새로운 예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유형의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 아도르노, 『미학이론』



2000년 이후 정부의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정책은 괄목할만한 의욕을 가지고 추진되어 왔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문화정책의 수립과 실천영역에서의 양적ㆍ질적 변화가 이루어졌다. 문화예술분야의 정책적 활력과 의지는 때때로 현장의 흐름을 압도할 정도여서 ‘질주하는 정책, 아우성치는 현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역문화진흥이라는 아젠다마저도 중앙정부가 먼저 제시하고 지역에 그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대세는 광역문화재단이 속속 설립되는 등의 구체적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 16개 광역 중 기존의 서울, 경기, 인천, 광주, 강원, 제주 외에 연내에 설립되는 부산, 대구, 대전 지역이 있다. 그 외에 경남, 전북, 충북 지역에도 설립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최근 광역과 기초지자체에서 증가하는 문화재단의 설립은 문화지형에 어떤 변화를 낳게 될까. 중앙정부 주도의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이 지고 지역분권에 기반한 지역문화가 꽃피우는 시기를 암시하는 것인가. 언론을 통해 들리는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은 여론수렴, 의회상정, 재원마련, 조직구성까지 어디하나 쉬운 과정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기존에 설립된 재단의 모델을 참조하게 되고 사업형태까지 대동소이하게 구성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에 시·도 해당부서에서 수행하던 지원사업을 이관 받아 확대 개편하면 사업구조의 가닥이 잡히게 된다.


대전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공청회(2009.4.16), 대구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공청회(2008.11.13)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은 예산을 출연해주는 시도의 시어머니 역할과 지역예술계의 요구 사이에서 좁게 형성된다. 더군다나 시도에서 시행하던 지원사업은 차별성 없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일종의 보급형 지원제도다. 광역단위의 문화재단은 이러한 지원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할 새도 없이 부랴부랴 업무를 시작하게 되고 여기에 중앙기구와의 매칭사업까지 확대되면서 지원규모가 증가하게 된다. 만일 문화재단이 현장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정책적 관점을 재빠르게 수립하지 못한다면 지원사업은 관행화되기 쉽다. 능동적인 정책과 제도수립이 더디면 더딜수록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잃고 행정적 완고함과 경직된 제도성이 강조 되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이른바 관료화다. 그래서 중앙에서 생산된 맞춤형 제도와 지방정부의 관행적인 지원방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하는 일이 문화재단 설립 초기의 핵심적인 일이다.




‘예술생태계’라는 관점과 지역의 딜레마


중앙단위기구(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정책의 기본 관점은 ‘다종다양성에 근거한 순환적 생태계로서의 예술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는 계층별, 분야별, 연령별 예술가들이 유입되고 발전하고 도태되는 일종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따라서 지원제도는 예술자원의 풍부함 속에서 특정한 목적과 기준에 따라 문화예술적 가치가 높은 대상을 선별하는 것이다. 거기에 예술을 준공공재로 인식하고 그 행정적 가치인 공평성, 합리성이 지원제도의 원리가 되었다.


지역 문화재단의 주요 역할의 하나인 지원금 배분, 즉 지원제도의 운용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적용된다. 그런데 과연 각 문화재단의 사업대상이 전국단위기구에 비해 단지 규모만 작아진 문화예술생태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정한 지역에 한정된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제도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수년간의 지원명단을 보면 과거에 지원받던 단체의 상당수가 현재도 지원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원대상의 변화가 미미한 것이다. 그러면 재단은 지원사업의 다각화를 통해 종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된다. 문제는 인적자원의 한정이다. 새로운 문화예술그룹의 생성이나 유입이 더디고 젊은 예술가들의 약진도 미미하다. 이는 예술가가 성장하고 활동하기 위한 인프라가 허약하기 때문인데 지역예술진흥의 근본적인 문제로 작용한다.


새로운 예술자원의 발굴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선택과 변별이라는 지원제도의 논리는 약해진다. 자율적이고 역동적인 예술계를 가정했을 때만 지원제도의 변별적 선택이라는 기능은 제 힘을 발휘한다. 이는 문화예술과 관련한 충분한 인적, 물리적 인프라가 먼저 존재하고 그 인프라를 통해 자연적으로 예술인력이 배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기초체력이 허약하다면 제도의 이러한 관점은 그 의미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매칭사업, 중앙 중심 모델의 한계


최근 문예진흥기금의 지역이관이 확대되고 있다. 기존의 ‘지역문화예술진흥금’과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에서 2009년부터 ‘공연예술단체집중육성’과 ‘지역특성화사업’ 등이 이관되면서 양적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역으로 광역단위 문화재단의 주된 지원사업이 이 매칭사업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매칭사업은 재단의 자율권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의지가 결정적인 지침이 될 수밖에 없다.




사업명 사업비(09년) 지역이관조건
지역문예진흥사업 48억 1:1 이상 매칭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 50억
공연예술단체집중육성 41억
지역특성화사업 15억
[표1]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이관사업 현황


이는 중앙단위에서 검증된 제도와 방법론이 지역에 투사되는 방식인데 실제로 이 모델을 지역에 적용시키면서 몇몇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의 수혜대상의 80% 내외는 서울 등의 수도권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수혜대상의 지역 분포를 살펴보면, 실제로 지역이관사업 예산의 60~70%는 서울로 이관되고 있고 나머지 지역은 등급별 또는 1/n식의 논리로 나누어 이관된다.


문제는 지역에 이관되는 지원내용이 대부분 서울의 경우를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사업’의 경우 지원분야를 연극, 무용, 음악, 국악, 다원예술로 구분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장르적 구분이 여타 지역에서도 타당한 모델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다원예술의 경우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지원신청만 이루어지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제 중앙에서는 커 보이지 않던 문제가 지역에서는 고민거리가 되는데, 이는 정책이 현장을 과도하게 실체화, 일반화하는 경향 때문이다. 중앙집중식의 정책은 정책대상을 일정부분 일반화하여 수행할 수밖에 없고, 정책대상의 수가 적은 지역의 현장은 충분한 고려가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일 신생재단이 충분한 현장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이러한 제도를 시행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다소 길게 논의했는데 이는 현재 지역이관사업이나 신생재단 설립 등 외형적 변화가 지역문화정책, 지역문화 현실의 실제적인 질적 변화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 부분을 밝히려는 의도이다. 각 재단이 정책적 관점이나 제도운영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기까지 이 문제는 각 재단들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다만 현재 이루어지는 이관사업이 아직도 중앙중심적인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역재단들 또한 적극적으로 정책의 관점과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수행에 급급한 처지다.




현장과 행정기구 사이에서 정체성 찾기


한편 현재 진행되는 15개 광역시도의 문화재단 설립은 서울을 제외한 금액대비 20~30%의 주변부에 해당하던 지역이, 이제는 서울과 지역이 동등한 15개의 기구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생문화재단을 위상학적으로 보자면 지역예술계의 요구와 예산을 수립하는 행정기구의 사이에 놓이게 된다. 문화재단은 이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야 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앙기관과 매칭한 지원제도는 초기 정체성확립에 큰 도움이 된다. 예산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면서 사업대상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매칭사업의 확대는 예산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독자적 관점의 사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사업확대에 따른 전문인력의 문제


최근 간접지원 형태의 사업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창작공간, 연습실, 연수 및 레지던스 등의 물리적 공간 중심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확대되는 사업들은 겉으로 보면 창작과정에 지원한다는 긍정적 부분이 있지만 내적으로는 직접지원규모나 방법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징후일 수 있다. 직접지원방식의 결과를 산출해내기가 힘들어지자 긴 호흡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수도권 문화재단의 창작공간, 미술관, 공연장의 운영은 직접지원의 한계에서 오는 대안모색 과정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온 것이다.


이러한 사업 확대에 따라 문화재단의 전문인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과연 문화재단의 전문인력이란 과연 무엇이고 인력의 육성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문화재단의 인력은 문화행정 및 경영, 예술현장 및 정책에 있어서의 고른 소양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행정을 알면서도 예술가와 작품에 대해 논쟁할 수 있어야 하는 일견 모순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현재 제도권에서 배출되는 (공연장, 미술관 등) 문화공간 운영 인력이 교육받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국내외 기관 간 교환연수, 자체인력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그 역할을 전문화해야 한다.


서교예술실험센터, 문래예술공장(예상도), 금천예술공장(예상도)-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 창작공간들





지역의 가치를 찾아내는 구체적 정책 생산


중앙단위의 정책이 국가적인 문화정체성의 형성을 위한 것이라면 한정된 지역을 사업대상으로 한 지역 문화재단은 이러한 사고의 틀을 바꾸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세계최고의 예술단체’를 보유하는 것이 모든 지역 문화정책의 주요목적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따라서 지역에 필요한 문화예술의 가치 자체를 구현하고 생산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기존 장르에 기반한 고급예술의 틀이 과연 지역에서도 정당한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지역문화에서는 전문예술단체의 부족으로 일반시민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생활문화에 대한 정책이 적극적으로 생산되어야 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보다 상호보완적인 정책을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당 지역만의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고 구현하는 일이 필수 과제다. 이는 문화예술계를 보는 문제 틀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고, 문화재단의 정책은 지역에 적합한 가치를 찾아내고 그 실현을 위해 정책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은 소극장을 일반시민의 문화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완전히 개방하였고 그 반응의 열기도 상당하였다. 그에 소요되는 시민육성프로그램 비용이 부족하자 광역문화재단은 그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이는 다음 해 다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의 기획예산에 반영되는 선순환구조가 되었다. 특정한 ‘가치’에 동조하는 광역-기초 간의 협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문예회관이 권위적, 배타적으로 예술작품을 탈일상화하던 기존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정한 것이다.


제도의 전면적 개편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작은 시도가 문화예술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물론 이 방법이 전국적으로 모두 통용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정책의지를 지닌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작은 변화이지만 권위적인 문예회관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지역의 잠재적 욕구를 읽어내고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책이란 이념, 전략, 실현수단을 세우는 것인데, 왜 지역문화재단은 전략과 실현수단에만 매달려야 하는가. 예를 들어 왜 문화예술을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라는 질문, 자본의 경쟁에서 초라해져가는 기초문화예술이 우리 삶에서 무엇인가라는 질문, 이런 근원적인 고민의 흔적이 반영된 정책이 의미 있는 지역문화의 모태일 것이다.






오세형

필자소개
오세형은 연극분야에서 연출, 기획, 제작에 참여하였고, 2005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만남과 자극을 위한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 젊은 예술가 집중육성 등에 관심이 많고 독일의 탄츠하우스 같은 현장과 제도와의 흥미로운 만남을 주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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