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예술지원과 심사와 관련하여 기획특집을 구성할 때, 조금은 다른 양상의 사례를 만나보고 싶었다. 올해 다른 기관에서 진행했던 공공극장 운영에 관한 연구에 참여했을 때, 우란문화재단 프로듀서를 연구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우란문화재단의 심사과정에는 예술가들이 지원서를 내는 과정이 없다. 사전에 여러 번 내부 담당 프로듀서와 인터뷰를 하거나, 혹은 미팅을 통해 서로 탐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기획자가 재량권을 갖고, 지원 프로그램과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는 창작자를 선정하여 지원하는 과정이라 여겨졌다. 여기서 심사는 있지만, 형식을 갖춘 심사 제도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획특집에 우란문화재단과 함께 창작과정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을 모시고, 그 과정을 상세하게 들어보면, 공공 예술지원 심사 제도에 통찰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시/장소: 2021. 11. 9.(화) / 우란문화재단 분장실
진행: 장석류(웹진≪예술경영≫ 편집위원)
참석: 김유철 우란문화재단 PD, 김한솔 뮤지컬 작가, 이준우 연극 연출가


장석류(예술경영 웹진 편집위원, 이하 장석류)
안녕하세요, 장석류입니다. 오늘 우란문화재단(이하 재단) 김유철 피디님 나와주셨고,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 김한솔 뮤지컬 작가님, 이준우 연극 연출님 나와주셨습니다. 먼저 재단의 심사 혹은 사전에 진행하시는 기획자와 창작자분들의 인터뷰 미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탐색을 통한 첫 만남

김유철(우란문화재단 PD, 이하 김유철)
재단은 일반적으로 얘기하시는 심사는 없는 것 같아요. 사전에 다양한 방식의 미팅이 있기는 합니다. 두 분이 다른 케이스였는데, 작가님은 작업을 함께 하려고 만났던 상황은 아니었어요. 제가 뉴욕에서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도와주실 분을 추천받아서 만나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어떤 인간적인 관계들, 그리고 작업적으로 어떤 꿈을 꾸시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얘기를 주로 나눴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제가 작가/작곡가 중심의 뮤지컬 작품 개발을 하려고 그림을 그리던 중에, 작가님이 그 과정에 적합한 분일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작업적인 방식을 알기 전에 개인의 성향을 먼저 알게 됐고, 나아가 지향하는 작업방식 역시 저희 과정과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뮤지컬 작품 개발 방식의 틀을 짠 것 자체가 해외의 사례를 기준으로 만들었는데 해외에서 공부를 하셨다보니 그것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시고 해서, 한국에 들어오시고 제가 작품을 위한 창작자를 찾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우란문화재단 김유철 피디(좌)와 재단 공연장 전경(우)
우란문화재단 김유철 피디(좌)와 재단 공연장 전경(우)
*사진출처: 우란문화재단

장석류
준우 연출님은 조금 양상이 달랐나요?

김유철
예. 준우 연출님 경우는 추천을 많이 받았어요. 기존에 작업하셨던 분들 중에 ‘이준우 연출이라는 분이 있는데 공연 한번 보러 오지 않겠냐’, 아니면 ‘이준우 연출이라는 분이 있는데 PD님이 한번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는 등의 얘기를 듣고 공연을 보러 갔던 것이 출발이었어요. 그때 처음 인사를 나누고 그 뒤로 만나서 커피를 한잔 했죠. 그 커피를 마신 횟수가 2년에 걸쳐 대여섯 번 정도 됐나 봐요. 띄엄띄엄 만나면서 서로의 작업의 가치관과 다양한 얘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장석류
준우 연출님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 유철 피디님과 대여섯 번의 미팅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세요?

이준우(연극 연출가, 이하 이준우)
처음에는 바로 공연의 기회가 오는 건가 하는 기대를 갖고 만났는데 그런 얘기는 없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시는 거예요. 저는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등 다양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작품 얘기,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우란에서 뮤지컬 쪽 중심으로 매뉴얼을 만들어 작업을 하는데, 연극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아무래도 연출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니까 그런 매뉴얼을 만들기가 굉장히 까다롭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과정들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계속 대화하고 소통해 가는 그런 과정이 가능한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물어보셨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 피디님과 그렇게 오래 만나는 게 처음이었어요.

장석류
업계에 있는 일반적인 피디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이준우
네. 당시엔 아는 피디님도 많지 않았고, 주로 제작 예산이나 홍보 관련된 부분 위주로 얘기를 나눴었거든요. 기획 단계부터 피디님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만드는 것을 원했지만,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철 피디님을 만나니까 반갑고 재미있었어요. 우란이라는 곳은 이렇게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대여섯 번 정도 커피를 마신 다음에 어느 날 또 커피 마시는데 작업을 제안해 주시더라고요.

장석류
김한솔 작가님은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김한솔(뮤지컬 작가, 이하 김한솔)
우선 처음 재단을 알게 된 것은 뉴욕에서 대학원 다닐 때, 뉴욕에서 무슨 리딩을 하는데 한국말이랑 영어를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안을 받았어요. 일을 도와 드리면서 재단의 시스템을 알게 된 거예요. 그런데 너무 놀라웠어요.

장석류
어떤 지점이 놀라우셨어요?

김한솔
창작자들을 위해 이렇게 쏟아부으면서, 재단이 얻게 되는 점은 뭔가요? 라는 말을 많이 물었어요. 왜냐하면 제작사는 투자를 한 만큼의 이익을 원하잖아요. 우란을 만나기 전에 작가로서 고비가 있었어요. 저는 뉴욕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소극장에만 올려봤어요. 국내에 들어왔을 때, 한국 트렌드를 잘 몰라 제가 쓰고 싶은 거를 제작사 분들이 계속 이건 안 돼, 안 돼,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피디님한테 많이 하기도 했고, 피디님이 ‘그러면 네가 정말 작가로서 쓰고 싶은 글이 있냐’ 했는데 제가 늘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트렌드도 아니고 수익이 나지도 않을 것 같은 공연이니 제작사는 올려주지 않을 이야기였죠. 그래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래, 그거를 네가 쓰고 싶으면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됐습니다.

장석류
창작자의 입장에서 잘 팔릴 것 같다는 감각은 처음부터 생기긴 어려운 것 같아요.

김한솔
그렇죠.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는 너무 잘 알거든요, 근데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피디님한테 많이 했어요. 왜 자꾸 나한테 안 된다고 하는지 그걸 잘 모르겠다고. 상업 시스템은 1년 전에 대관과 캐스팅을 다 잡아놔야 되니까 극장을 잡아놓고 작가를 쪼는 거예요. 재단은 반드시 언제 해야 된다는 게 아니니까, 정성들여 쓴 연애편지처럼 그렇게 공연 대본을 썼고, 트라이아웃도 올라왔던 것 같아요.

뮤지컬 작가 김한솔(좌) 재단 지원작품인〈빠리빵집〉포스터(우)
뮤지컬 작가 김한솔(좌)과 재단 지원작품인〈빠리빵집〉포스터(우)*김한솔 작가는 2019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뮤지컬 <빠리빵집> 트라이아웃을 시작으로,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인사이드 윌리엄>, <태양의 노래> 등의 극본을 맡음. 최근 2021년 10월 서울시극단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각색으로 참여함.
*사진출처: 우란문화재단

심사의 기준과 판단

장석류
예. 과정을 기다려주는 힘. 그게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서 이준우 연출님 이야기로 가볼까요. 1년 6개월 동안 두 분이 커피를 마시며, 미팅을 했잖아요. 저는 모양이 잡힌다는 표현을 쓰는데, 어떤 사람을 인터뷰해보면 아, 저 사람은 이런 스타일이구나, 저렇게 살아왔구나, 하면서 어떤 모양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유철 피디님은 창작자의 모양이 매력적이어서 작업을 제안하는지, 아니면 재단의 어떤 상(像)이라 할 수 있는 심사 기준과 부합이 되어, 제안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유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을 선정할 때 재단이 생각한, 제가 지금 담당한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고 있는 것, 그 모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맞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하고 매력적인 아티스틱한 사람이라도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장석류
기준이 있네요. 그럼 그게 뭔지 한 번만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유철
뭔가 달성하고 싶은 어떤 목표 지점이 얼마나 명확하게 있는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 가지고 있는 네 가지 단어가 있어요. 우선순위는 아니고, 열정, 의지, 협업, 소통, 이 네 가지에요. 예를 들어 소통과 협업에 대한 것이라면 기억나는 게 연출님이랑 얘기할 때는 연출님이 이런이런 상황이 생겼어요, 그럼 ‘저는 이렇게 얘기하거나 이렇게 대처할 건데 연출님은 그거 괜찮으세요?’ 하고 되게 구체적으로 물어봤던 것 같아요. 대화를 통해 내가 협업하는 방식과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이 괜찮은지 상대에게 묻는 거죠. 물론 저도 연출님의 방식을 듣지요. 그게 서로 괜찮아야 하거든요.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부분인데, 그 다름이 이해될 수 있는 지점이 있는지,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열정과 의지는 제가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그것이 안에 있는가. 저도 다른 분들 만났을 때 이런 경우들이 있어요. 아, 돈이 필요하시구나. 공간이 필요하시구나. 상황이 필요하시구나. 그런데 그런 분들이랑은 할 수 없는 거죠. 재단은 예술가, 창작자를 지원하는 거지, 뭔가 환경이나 작품 제작비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장석류
사람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된다. 결국 사람이 작품을 만드니까요.

김유철
출발은 거기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라고 했을 때 ‘아, 이것도 해보고 싶고요, 저것도 해보고 싶고요’, 이런 게 아니라, 물론 하고싶은 게 많을 수는 있지만 되게 진중하게 내 마음속에서 어떤 것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힘. 그리고 재단에서 했을 때 더 의미있는 것. 저는 제가 예술감독도 아니고 멘토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옆에 있는 동료이기 때문에, 앞에서 끌고 가면서 ‘빨리 가세요, 앞으로 가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죠. 그건 자기 안에서 가져와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 부분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들이에요.

장석류
판단의 기준을 갖기 위해 시행착오가 있으셨겠네요.

김유철
그럼요. 그 시행착오들 틈에 여기까지 왔고, 사실 두 분의 작업을 통해서 또 경험한 시행착오들이 지금의 재단의 시스템을 그리고 저를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더 나은 방향성을 찾기 위해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장석류
그럼, 이준우 연출님께서 재단과 작업할 때, 밀고 나간 과제 혹은 추구하는 방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준우
일단 피디님이 말씀하신 부분이랑 같은데, 첫 번째가 협업이었어요. 그러니까 연극 작업을 할 때 연출이 주도적으로 모든 권한을 가지고 하는 것에 대해 좀 거부감이 있어요. 또 하나는 시간이었어요. 창작 과정 중심의 창작자를 지원해주는 시스템 안에서 1년 6개월 혹은 2년 기간 동안 차근히 의견을 나눠가면서 조금씩 만들어가는 그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고 감사했던 것 같아요.

장석류
그러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재단과의 작업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준우
우선 지원 신청서를 쓰지 않아요. 그게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죠. 공공기관의 제작지원은 대부분 작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런데 재단에서는 창작자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창작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주죠. 지원 신청서를 쓰게 되면 기획의도와, 그것이 가진 동시대성, 메시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생각하는 걸 온전히 글로 담아내기도 참 어렵고. 그래서 재단과의 작업에서는 평소 지원 신청을 하고 싶어도 받기 어려운 것, 혹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게 아닌 다른 것을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만들어 보고 싶은 그런 걸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추리 소설을 희곡화하고 무대화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시스템 안에서 함께 의견을 나누고 차근히 공연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해보고 싶었어요.

연극 연출가 이준우(좌) 재단 지원작품인〈붉은 낙엽〉포스터(우)
연극 연출가 이준우(좌)와 재단 지원작품인〈붉은 낙엽〉포스터(우)*이준우 연출은 우란문화재단과 2020년 토머스 H.쿡의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연극 <붉은 낙엽>을 창작함. <왕서개 이야기>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연출가 이준우는 <붉은 낙엽>으로 2021년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함. <붉은 낙엽>은 올해 12월 국립극단에 기획초청되어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예정임.
*사진출처: 우란문화재단

장석류
예. 중요한 지점이네요. 그럼, 자연스럽게 공공 예술 기관의 지원 제도 안에서 뭔가를 신청해보신 경험이 있을 것 같아요. 재단을 경험한 후에 둘을 비교해보았을 때, 어떤 차이를 느끼셨는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한솔
연출님 얘기하시는 거 너무 공감이 갔는데, 기획 의도나 이런 걸 너무 꾸며 써야 되는 거예요. 사실 작품을 대본만 쓸 때는 잘 모르거든요. 저는 글만 쓰는 사람인데 예산 같은 것도 쓰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런 것까지 다 할 줄 알아야 선정이 되는 거예요. 대본 외에도 뭔가를 엄청 노력해야 돼요. 차라리 대본을 여러 개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지원서 쓰는 게 사실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저는 작가인데, 작품으로 뽑는 거니까, 저한테 자꾸 연출적인 질문이나 무대 질문을 많이 하세요. 물론 제가 어떤 걸 생각하면서 썼는지 궁금하신 건 알겠어요. 그런데 거기서 계속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거는 나중에 연출을 만나서 디벨롭 하면 되는건데 말이죠. 그걸 초기에 막 물어보시는 걸 대답을 못해서 선정이 못 되면 이 작품은 기회를 잃는거에요. 제가 정말 너무 많이 준비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으니까, 사실 면접이나 심사에 들어갈 때 너무 긴장이 돼요.

장석류
디펜스 할 게 너무 많다. 그런데 재단에 왔더니 내가 제일 잘하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준다는 이야기 이신가요.

김한솔
그렇죠. 글만 쓰면 되고. 협업을 통해서 계속 디벨롭 된다는 걸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 동의하고 가는 거니까. 공공은 초반에 제가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작곡가가 같이 있어도, 작곡에 대해서 질문을 별로 안 해요. 왜냐하면 음악에 대한 질문을 하실 수 있는 심사위원이 잘 안 계시거든요.

담당자의 재량권과 신뢰의 작동

장석류
블랙리스트 이후 공공기관 예술지원 심사에서는 특히 담당자의 재량권이 거의 작동되기 힘들어진 것 같아요. 재량권이 없다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지는 않는데, 상대적으로 피디님의 재량권은 크게 느껴집니다. 장점이 뭐가 있을까요, 혹은 부담은 없으신가요.

김유철
우선, 재량권이 크다는 말이 다르게 비춰질까 부담스러운데요. 재단은 이사장님께서 피디들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재단의 사업을 끌고 나갈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가능하게 되어 온 것 같아요. 그게 다른 공공기관들과는 다른 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인터뷰를 할 때마다 조심스럽기도합니다. 잘 해석해 주시길 바라면서 말씀드려보자면, 두 분께서 얘기하신 ‘실패해도 된다’가 사실 저한테 제일 중요한 키워드이긴 해요. 제가 가진 기준과 그런 걸 통해 선택한 사람들을 믿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가고 싶은 방향의 길을 잘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인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재량권이란 단어를 썼지만 그보다는 함께 계속 걸어오던 동료로서 더 필요한, 유연한 선택을 할 수 있게 제안해준다고 말하고 싶어요. 책임진다는 표현은 너무 위험한 것 같고, 그들이 조금 더 안정적인 환경 안에서 과정 중심의 작품을 개발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질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것이 저한테 중요한 키워드인거죠. 그 안에서 실패를 해도 되는 것의 전제는 ‘우리가 합의한 이 과정을 충실히 함께 수행했을 때’ 인 것 같아요.

장석류
에너지를 다 쏟는다는.

김유철
네, 모두가 그것을 충실히 수행했을 때. 대중에게 외면받을 수도 있고, 협업의 과정 속에서 문제가 생겨서 이게 안 될 수도 있지만, 작품이라는 것은 그걸 통해서 또 얻는 게 있으니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고, 또 나아가 그 작업들을 통해서 결국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 공연예술계 자체의 다양성이 계속 확보될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장석류
그러면 재량권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 있다면

김유철
내가 제공하는 환경과 그들을 선택하고 함께 하자고 얘기했을 때 주고자 했던 것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 방향 속에서 실제로 이 작업이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죠. 왜냐하면 이 작업 과정 중에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의 시행착오 끝에 쌓은 노하우와 이분들이 잘 매치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되지 않을 수도 있죠. 제가 판단해서 이분들이랑 같이 협업하면 좋을 것 같아, 라고 했지만 그게 안 될 수도 있는, 그런 것들이 부담이라면 부담일까? 혹은 그 과정을 충분히 다 해오셨는데, 누구보다 우리가 그 그림을 같이 그리면서 왔는데 잘 안 됐다라고 하면, 그런 작품들에 대해서는 마음에 계속 짐이 있는 것 같아요.

장석류
예술지원 정책의 1차 고객이 예술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이 만나야하는 2차 고객인 시민(대중)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거든요. 균형이 중요하긴 하지만 2차 고객을 너무 강조하면, 예술인들이 나다운 작업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피디님의 고객은 8할 이상이 함께하는 예술인에게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하시는 그 프로세스를 좀 더 체계적으로 가져가는 시스템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구체적으로 어떤가요?

김유철
체계적인 시스템이라는 말은 거창한데요. 재단이 작품을 개발하는 과정은 최초의 영감에서 발아된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믿고 함께하는 것이 전부인거 같아요. 물론 ‘좋은’이라는 단어 안에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긴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좋은 과정을 함께 했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 혹은 확률이 높아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지향점, 그러니까 시스템이겠죠.

장석류
예. 그러면 여기서 작가님과 연출님에게 하나만 더 여쭤볼께요. 심사의 과정에서 만약 어떤 분을 추천하고 싶다면, 어떤 분이 생각나세요?

김한솔
제 동료 작가 중에도 글은 정말 잘 쓰는데 트렌드에 맞지 않는 글을 쓰는 친구가 있어요. 잘 되는 공연들은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그냥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쓰는데 그게 트렌드가 지났을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영영 안 올 수도 있지만, 글은 정말 잘 쓰고, 열심히 하고, 너무 좋아하는데, 다만 시기가 좀 안 맞는 그런 분을 추천하고 싶어요.

장석류
시대를 잘 못 만난 분이라는 거군요.

김한솔
그렇죠. 그런데 그 작품으로 인해 또 트렌드가 바뀔 수도 있거든요. 지금 이렇게 여자 주인공이 많이 나온 작품이 나올 줄 몰랐잖아요. 그렇듯이 작품 하나가 또 완전히 분위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이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장석류
좋습니다. 준우 연출님은 어떠신가요.

이준우
주목 받지 못하고 있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 협업이 가능하고 소통이 가능한 예술가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연 분야 외의 다른 장르의 예술가가 유철 피디님이랑 만났을 때 어떨까하는 궁금함도 있는 것 같아요.

장석류
유철 피디님께 마지막 질문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공공에서 하는 예술지원 사업 심사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우란에서 하는 창작지원 사업의 심사와 작업 과정에서는 ‘신뢰’가 작동하는게 느껴집니다. 어떤 신뢰가 중요할까요.

김유철
어려운 질문인데, 어쨌든 저희 재단의 방식이 정답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부담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누가 옳고, 어떤 방식이 옳다는 접근이 아니라 창작자, 예술가들이 자기의 세계를 조금 더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게끔,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펼쳐낼 수 있게끔, 약속한 시간동안만큼은 그저 믿고 동료로서 함께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장석류
예. 그것만으로 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유철
해외 비영리 단체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느끼는 건, 말씀하신 것처럼 그걸로 족한 거였거든요. 그것이 뿌리가 되고 쌓여야 예술이 더 다양해지고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생겨나고, 규격화 되지 않은 것들 속에서 발견 될 수 있는 것, 그게 사실 공공에서, 또는 어떤 사업들이 뒷받침 되어야 할 수 있잖아요. 그 작업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 또 생각해 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석류
작품을 했다는 족함을 너머, 작품은 관객을 만나야 하잖아요. 창작자들도 관객을 만나고 싶어하고.

김유철
맞아요. 창작자들 입장에서 그들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건 본능이자 어쩌면 당연한 것이에요. 우리의 과정은 결국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 완성도는 결국 관객에게 잘 닿을 수 있다고 믿는, 그 또한 신뢰의 연장선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시행착오도 많지만 이런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

장석류
예. 긴 시간 너무 잘 들었습니다. 우란문화재단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등과 같은 예술지원조직 혹은 일반적인 제작시스템을 갖춘 극장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역할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단의 사례가 완벽하다고 보기도, 혹은 이 사례를 공공예술지원 시스템에 바로 적용하자고도 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하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재단의 심의와 작업방식은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우란문화재단의 김유철 피디님, 김한솔 뮤지컬 작가님, 이준우 연극 연출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장석류
  • 필자소개

    장석류는 학부 때 연극영상학부에서 연출을 전공했고, 조직과 연결망 중심의 사회학(M.A), 협력적 거버넌스 영역을 중심으로 공공문화 행정학(Ph.D) 분야에서 연구를 해왔다. 정동극장에서 13년 동안 다양한 포지션으로 근무했고, 최근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시드앤파트너스 이사,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운영위원,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문화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화정책 연구와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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