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나의 한국행은 팬데믹으로 인해 2년 넘게 하늘 길이 중단된 이후 첫 대륙 간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아일랜드 현대미술 비엔날레인 에바 인터내셔널 아일랜드 비엔날레(EVA International - Biennial of Contemporary Art in Ireland)의 큐레이터로서 새로운 도전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나는 비엔날레에 초청할 예술가 목록을 작성하고 있는 중인데, 비엔날레 준비 기간이 12개월 정도 짧아 특별한 인연이 있는 몇 개국만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이중 한국은 나의 첫 번째 선택지였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은 아트 스튜디오와 박물관 등을 방문하여 한국의 예술에 대한 나의 지식을 업데이트 하는 것이다. 또한 프리즈×KIAF 서울 아트페어 기간 동안 진행되는 수준 높은 특별 전시 및 강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일랜드 비엔날레인 에바(EVA)와 관련된 작업은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전시 기획 작업(바르샤바 현대미술관과 독립기획 프로젝트에서의 경험을 기본으로 봤을 때)에서 나는 종종 고전 예술작품을 창작하지 않은 작품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장기적이고 정치적이며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 예술가들에게 관심이 있다. 동시에 경계를 넘나들며 음악, 공연, 아카이빙을 하는 예술가들 역시 관심 대상이다. 이것은 전시가 항상 예술가들의 실천을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매체가 아니며, 그들의 작업이 쉽게 박물관의 틀에 통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1970년대 폴란드 이론가 예지 루드빈스키(Jerzy Ludwinski)의 문구를 종종 언급한다. 그는 행동주의, 농업 및 과학과 같은 예술 기관과는 거리가 먼 ‘생태계’에서 발전할 새로운 기술을 준비할 필요성을 예견하고, 그 특정 활동을 ‘포스트아트’라고 불렀다. 놀랍게도 예지 루드빈스키(Jerzy Ludwinski)가 남긴 문구는 나와 한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2018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젊은 큐레이터들을 대상으로 루드빈스키 이론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였는데 그의 핵심 이론인 “포스트 예술 시대의 예술 (1971)”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동시에 나의 저서인 “S.Z.T.U.K.A(예술)”의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특히 개념주의 및 지구 예술과 관련된 20세기, 21세기의 인물 50인을 어린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방문할 때마다 한국 예술은 매력적이었고, 정치적 양극화와 기후 위기 시대에 대응할 만한 예술 역할에 대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를 하는 새로운 기관과 사람들을 발견했다. 팬데믹으로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가 위축되긴 하였지만 말이다.

여행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르샤바와 서울을 잇는 공통 관심사인 여성의 권리 투쟁 측면의 예술 역할에 대한 작업을 활동가이자 예술가인 김화용 작가와 함께 이어갔다. 2년간의 락다운 기간 동안 바르샤바에서 김범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예술경영지원센터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된 한국 방문은 현재 한국의 예술에 대한 나의 생각을 확인하고, 새롭게 연락할 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무엇보다 내년 아일랜드 비엔날레를 위한 예술가를 선정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트 페어 기간 중 이루어진 서울 방문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지난 2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은 장소에 깊이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팬데믹 이후, 공공과 시장측면에서의 아트커뮤니티들은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활동 강도와 활동 규모를 크게 증가시킨 것으로 보인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프로그램(‘Dive into Korean Art’)을 통해 나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경을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전설적인 화가 서용선님의 시골 작업실 방문이 인상적이었다. 개울가가 흐르는 장엄한 건물 주변으로 수 십 년간 수집해 온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서용선 특유의 소나무 모티브, 유럽과 미국 등 도시 생활 풍경과 제주도에 머물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작품들은 참으로 흥미롭다. 나는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시리즈로 배열하고 다양하게 조합되어 전시될 작업 과정을 상상해 본다. 특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금을 추출하는 여성들을 보여주는 한 작품이 기억에 많이 남는데, 완전히 제멋대로이고 투박하지만 생기가 넘치는 작품이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신미경 작가의 스튜디오였다. 나는 그녀의 비누 작품을 예술적 규범, 고상함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한다. 비누와 같이 불안정하고 씻겨지는 재료를 사용하여 고대 화병이나 그리스 로마 조각품을 복제하여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실로 충격적이다. 우리는 확장되고 있는 주거 및 비즈니스 단지 사이 거대한 홀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작가가 수 백 점의 기성품을 나무 상자에 담아 놓은 모습이 여느 생산 라인 풍경과 닮았다. 비누 냄새가 코를 찔렀고, 그 주변에는 작가가 예전에 손을 씻는 용도로 도시의 화장실에 배치했던 작품이 있었다. 팬데믹,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무균 환경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 시대에 이러한 작업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또한 기상 조건에 노출된 외부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이 작품들은 끔찍한 방식으로 왜곡되었고, 공상적인 고문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변형되었다. 내구성이 강한 대리석과 청동 대신 섬세하고 쉽게 부스러지는 모습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작품에서 동서양의 관계, 즉 식민지의 과거, 자원, 사람, 생각을 착취했던 그 시절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해석하였다.

서용선 작가 작업실 방문

신미경 작가 스튜디오 방문

나의 한국 방문은 위트레흐트(네덜란드)의 카스코 아트센터(Casco Art Institute)의 최빛나 관장 등과 같은 사람들의 조언과 추천으로 이루어졌다. 도시에 익숙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업실을 찾아 헤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지난 여름 서울에 머물면서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파른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정겨운 시골집, 그리고 각종 작물들 사이로 멋진 도시 전망이 보였다. 기존에 믹스라이스(Mixric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던 이 아트 그룹은 앞서 예지 루드빈스키(Jerzy Ludwinski)가 언급한 “포스트 아트”의 구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요리, 농사 교육, 함께 시간 보내기, 타인과의 관계 맺기, 자연 등 일상생활에 너무 많이 ‘위장’되어 있어 예술, 사회 활동 또는 행동주의 관점에서 명확히 레이블을 지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의 일부로, 예술 영역을 넘어서는 동시에 예술적 도구, 방법 및 풍부한 감성에서 연출된 활동으로 표현된다.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의 최신 작품은 올여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현대 미술 전시회 중 하나인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에서 선보였다. 해조류를 채취하는 어부 합창단이 참여한 제주도를 그린 영화 ‘미역 이야기’도 발표되었다. 내가 올해 본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이고, 시각적으로도 매혹적인 예술 작품 중 하나이다.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는 행동주의를 넘나들며,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전시의 맥락을 세워 세련된 작품을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와의 만남은 생각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고, 아일랜드 현대미술 비엔날레의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본 전시회는 2023년 여름에 개최될 예정이다. 콜렉티브 작업 정신으로 빚어낸 예술, 자연환경 및 이웃 관계에 대한 관심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계획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미술은 포스트 휴머니즘, 트랜스 휴머니즘 또는 인류세 시대의 종의 적응력과 같은 문제를 품고 신규 기술을 기반으로 다져지는 세심하고도 육성된 관행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것은 유럽 관객들이 베니스 비엔날레 또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떠올리는 이미지이다. 물론 대부분이 실제 이미지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프로그램에서 사변 과학, 예술 및 건축 분야에서 활동하는 문경원&전준호 듀오와 환상적인 영화 및 애니메이션 작가로 인정받는 예술가 김아영 작가를 만났다. 동시에 나와 관계를 맺은 예술가들은 기술 발전, 소셜 미디어와 관련성이 적은 예술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들의 예술은 자연, 정치적 행동주의 탈성장에 대한 최근의 논의, 생물 다양성의 상실, 또는 정치적 권리에 대한 일상적인 이슈와 더욱 가깝다. 예를 들어, 서울에 머무는 동안 차재민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담소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녀의 매혹적인 작품은 관객들의 많은 이목을 끌고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집중하게 만든다. 그들의 느린 리듬에 굴복함으로써, 우리는 때대로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탐색과 실험의 긴 과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세계에 입성한다. 차재민 작가는 몸과 마음의 한계에 직면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함으로서 돌봄, 건강 및 연민 문제에 초점을 맞춘 아티스트이다. 그녀의 예술은 보살핌, 민감함, 까다로움을 모두 아우르는 예술이다.

문경원&전준호 듀오 작품

김아영 작가 작품

한국 미술은 오랫동안 집단으로 협업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행동을 지향해왔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작가, 큐레이터들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옥인 컬렉티브의 위대한 유산과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환경 파괴, 통제되지 않은 도시 변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유럽의 이스탄불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의 급속한 도시 발전에 따른 건축, 공공 공간 및 부작용 문제를 다룬 플라잉 시티(Flying City)의 활동이 잘 알려졌다. 올해 부산 비엔날레에 ‘사회적 발효’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여성 작가 그룹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Rice Brewing Sisters Club) 등 여러 새로운 예술 그룹이 주목을 끌고 있다.

내가 서울에 체류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가장 중요한 현대 개념 예술가 중 한 명인 김범 작가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는 놀라운 상상력,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돌에 정지용 선생의 시를 읽어주는 김범 작가의 12시간 분량의 영상을 현대미술의 핵심 작품 중 하나로 꼽는다. 나는 바르샤바 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The Penumbral Age. Art in the Time of Planetary Change’ 전시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였다. 이 작품보다 ‘깊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 잘 포착하는 예술 작품은 상상하기 어렵다. 김범은 2021년 락다운 기간 동안 우리가 출판한 책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올해 한국에 머물면서 이 작가의 작업이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감을 주는 지 다시한번 깨달았다. ‘artist’s artist’라는 말이 있다. 다른 예술가와 이론가에게 특히 존경받고 영감을 주는 예술가일지라도 일반 대중에게 모두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조용하고, 굳이 내세워 홍보하지 않고 수수한 수단을 사용하는 김범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인간과 자연, 행성, 영성 관계에 대한 현재의 논의 대상과 강하게 공명한다.

물론 현재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아일랜드 비엔날레 역시 한국 작가들과 함께 작업할 것이다. 올해 말에는 전시회 참가자의 목록이 확정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한 나의 한국 여정은 예상치 못한 사건과 뜻밖의 발견으로 가득했고, 큐레이터로서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의 인연이 더욱 견고해져서 독특한 예술 현장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고 덜 알려진 예술가들을 세계 다른 지역의 전시회에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 필자 소개

    세바스티안 시코기는 바르샤바 현대미술관의 수석큐레이터 및 부프로그램 디렉터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폴란드 전시관을 기획하였으며, 현재는 아일랜드 현대미술 비엔날레인 에바 인터내셔널 아일랜드 비엔날레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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