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미술시장의 호황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확대된 미술시장을 바라보며 미술계에 입문한 젊은 세대들에게, 최근의 시장 변동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장 확대에 따라 시작된 직업군의 분화가 주춤거리고 호황기 젊은 작가들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지금 가장 먼저 거두어지고 있다. [weekly@예술경영]은 시장 변동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젊은 미술가들의 진단과 모색을 싣는다./편집자 주 연재순서: ① 총론
환경이 변한다고, 무형의 유형의 인프라가 변한다고 오랜 기간 붙들고 숙련해 온 소중한 것들을 폐기할 수는 없다. 이제는 과거에 비해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는 여러 장치들이 요소요소에서 힘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 미술을 신뢰하는 다수의 미술 대중들이 있다.



최근 미술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 특히 미술시장이나 경기와 관련된 체감온도는 매우 낮다. 얼마 전 끝난 옥션들도 낙찰률이 50% 밑을 맴돌았고 들리는 소문들에 따르면 잘나가던 화랑들의 딜러들이 상당수 자리를 옮기거나 두문불출杜門不出한다고 한다. 콜렉터들은 세계 금융위기로 도미노처럼 확대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고자 동분서주東奔西走한다. 천정 모르고 오르던 작품 가격은 반값이 되었단다.

물론 미술시장이나 경기는 시절을 따라서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초고속 성장과 활성화에 비해 마치 비행기가 수만 미터 공중에서 몇 천 미터 밑으로 뚝 떨어지는 현상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환경변화와 현실에 잠시 멀미가 나며 멍멍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 막 대학을 나와 미술계에 입문하여 2~3년간 잘 나가던 신예미술가들이나 옆에서 미술시장의 호황을 지켜보며 나에게도 기회가 오리라 희망을 품었던 작가들에게도 모두 기운 빠지며 허탈해지는 것이다.





불안

젊은 모색전(2006년) 전시장


주위에서는 앞으로 미술계가 어떻게 되겠냐는 질문을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나 어느 누구도 딱 부러지게 예측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불안은 불안을 재생산하며 미술시장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영역까지 확산된다. 나 또한 미술시장과는 일정한 안전거리를 두고 있는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미술계의 여러 영역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보니 관심과 구체적인 고민을 남의 일처럼 미룰 수 없는 사안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의반 타의반 우리 의식 속에 이제는 시장이나 경제현실로부터 완전 동떨어진 예술이 가능할까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또한, 현장에서 뛰는 전시기획자들의 딜레마 중 하나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작가들과, 다른 기획자들, 평론가들, 콜렉터들, 기자들, 미대 교수들, 학생들 등 미술계를 구성하는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다 보면 내가 과거에 학습해 온 관습적인 예술가 상이나 예술의 개념이 지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한지 되묻게 된다는 것이다.


미술환경이 변화하면서 전시기획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계층이 나뉘고 전공분야가 분화되어 왔다. 이미 비엔날레 시장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국제적인 대형미술행사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 기획자 군이 있는가하면 공공미술관이나 지자체의 문화과, 문화재단 등의 공공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군이 있다. 또한 상업갤러리나 옥션 등 미술시장과 구체적으로 닿아있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군이 또 있고, 또한 여전히 대학이나 학회 등 아카데믹한 영역을 중심으로 한 기획자 군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전시 기획자들이 소위 미술계를 형성하고 움직여나가는데 일종의 동력 역할을 하는 여러 영역에 걸쳐 있다고 보인다.


내가 관여하는 대안공간, 예술축제, 기업의 문화활동 영역 또한 최근 급격한 변화의 가운데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앞서 보아온 미술계 전 영역이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저 불안이라는 페스트에 감염되었다고 보는 것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신뢰

불안의 확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우울과 깊은 상념일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무기력증들. 생각해보면 불과 5~6년 전인 2002년 이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미술계란 아주 작은 동네일 뿐 이었다. 그 시기에도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였다. 그러나 작은 동네의 장점이 잘 발휘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는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과 신뢰감을 만들고자 부단히 움직였다. 또한 아주 참신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전시들이 기획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미술시장의 도약이 지난 시기 활동한 이들에게 어떤 보상의 의미로 보였다면 그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또한 많은 신예미술가들의 활동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잠시잠깐의 보상이나 동기유발치고는 그 뒷감당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것 또한 지금의 모습인 것 같다.

젊은 미술작가 60명의 작품을 추천, 소개하는 <서교육십>전 포스터
그러나 환경이 변한다고, 무형의 유형의 인프라가 변한다고 오랜 기간 붙들고 숙련해 온 소중한 것들을 폐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과거에 비해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는 여러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창작공간들을 이용할 수 있고, 또 많은 언론과 매체와의 네트워크도 건재하며 정부와 지자체, 문화재단, 문화기업 등 많은 인프라가 요소요소에서 힘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 미술을 신뢰하는 다수의 미술 대중들이 있다.


창작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자신의 창작을 위한 자족적 또는 자립적 환경과 나름의 인프라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자신의 창작 동력을 활성화하는데 일정한 관계나 역할을 맡는 것들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분야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불과 얼마 전 생산적인 미술환경과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 자신이 또 선배들과 후배들이 함께 무언가 밀고 당기고 치고 박고 싸우며 화해하는 모습에서 어떤 믿음과 안정을 찾았듯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러한 역동적인 모습과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작자들은 물론 다양한 매개자들의 과제이다.





젊은 미술을 주목한다는 것


한국메세나협의회에 따르면 2007년 여름을 전후로 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현대미술 분야로 확연히 집중되고 있다고 하는데, 문화재단을 설립하려는 기업들의 주된 관심분야가 미술이고 특히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이라고 한다. 이는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 일본의 팝아트, 중국의 현대미술 등 피부에 와 닿는 세계미술계 변화의 영향이다. 2000대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언론의 미술시장 관련 뉴스와 함께 여윳돈을 투자할 곳을 찾던 투자자들의 눈에 부동산과 주식투자의 뒤를 이을 달콤한 투자처로 미술시장이 부각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lsquo;떠오르는 시장&rsquo;으로 젊은 미술가들을 주목했다.


새로운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자본의 힘은 막강했다. 신예미술가들의 평균 연령대가 10년 정도 젊어졌다. 다시 말해 이전 한국사회에서 젊은 미술가라 함은 보통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보았으나 이제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낮아진 것이다.


<Retrospective 2007-Korean Young Painters>전(2008)


돌아보면 IMF 이후 열정적인 애국주의의 물결이 막 지나간 1998년을 전후로 밀레니엄의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하였고, 같은 시기 IT열풍으로 실력 있고 요령 좋은 젊은이들이 이벤트 축제시장과 인터넷 벤처시장에 뛰어들었다. 너도나도 신지식인을 열망했고 그것이 30대 중반을 사는 이들의 경험과 인식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된 급등과 급락의 경사를 오르내린 미술계의 경험 또한 20~30대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그와 못지않은 자국을 남겼다고 본다.


젊은 미술은 단순하게 관행적으로 이야기되어 왔던 세대의 문제를 넘어서 어떤 결정적 차이, 즉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미적 인식의 틈이 뚜렷하게 부각되어 보인다. 80~90년대 미술계는 선배들의 식견과 고언은 거의 유일무이한 지침이자 판단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서로 다른 경험과 인식과 이념이 공통의 지점을 찾아가는 일치의 과정을 밟을 여유가 없어졌다.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저 변화하는 세계의 삶과 예술을 숨 가쁘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육성肉聲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적응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 젊은 미술가들이라는 외부의 시각이 이들 자신에게는 어떻게 오버랩되고 삼투되고 있는가?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미디어를 사는 젊은 작가들, 젊은 기획자들은 어떤 시각과 고민으로 지금 이 변화의 시기에 그들의 미술을 만들고 있을까?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장 호황기에 입문한 젊은 미술인들의 예술과 삶은 이전 세대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모든 것을 헤아리는 객관적 또는 관찰자적 시점이라는 것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를 사는 우리들에게 답을 구하기 위해 남은 선택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젊은 미술인들이 만들어내는 고유성과 보편성이 어떻게 충돌하고 경험되는지, 예술, 미술, 작가, 기획, 소통 등등 가장 일반적이며 가장 공통적인 관념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새로운 실천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지 그들의 육성을 통해 들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분야에 대한 &lsquo;신뢰&rsquo;와 더불어 미술계의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젊은 미술인들의 비전과 생동하는 창의에 귀 기울인다.







김노암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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