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연방과 유럽연합에서는 정책적 제안을 담은 녹서(Green Paper, 실제로 연녹색을 띤 종이에 인쇄한다)를 발간하여 사회 각계각층에 광범위한 토론과 토의를 이끌어 낸다. 이는 최선의 정책을 결정하기 위함이며, 이를 바탕으로 백서가 탄생한다. 때로는 통과된 법안을 바꾸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2022 전국 공연예술 창제작유통 협력 사업> 결산 좌담회가 있었다. 사업 실무위원을 맡았던 오득영 업플레이스 대표PD의 진행으로 사업 참여자들과 함께 운영 소회, 공연 제작 및 협력 사례, 사업의 차별점, 과제 등을 이야기 나눴다. 마치 녹서를 받아든 마냥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도록 진지하게 의견을 밝히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데, 그 생생한 순간을 이 글에 모두 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일시/장소 : 2022. 11. 30.(수) / 모임공간 상연재
진행 : 오득영_업플레이스 대표PD
참석 : 박정연_(사)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 프로그램 팀장
참석 : 신성희_GS칼텍스 예울마루 기획홍보팀 부장
참석 : 신예진_서울시뮤지컬단 기획PD
참석 : 박선희_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이사

오득영 업플레이스 대표PD

2022 전국 공연예술 창제작유통 협력 사업의 탄생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관하고 발표한 공연예술조사를 보면 2021년 공연 매출액은 4,932억 원으로 2020년 3,946억 원보다 상승하였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8,529억 원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리고 공연 시설은 전국적으로 총 968개, 종사자의 수는 12,180명으로 이는 2020년에 이어 2년 연속 감소 추세이다. 그에 반해 코로나19 이전부터 급증세를 보였던 공연단체 수는 2020년 4,237개, 2021년 4,261개로 여전히 증가 추세이고 공연단체 종사자 수도 마찬가지로 소폭 증가했다.1)

이 통계는 무엇을 알려주며,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단편적인 몇 가지 데이터와 정보로 현상을 분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연 매출액은 아직 코로나19 이전을 회복하지 못했고, 같은 기간 동안 공연 시설과 종사자는 감소 추이, 공연단체 수와 그 종사자는 증가 추세라는 시계열 흐름은 공연예술의 활성화를 위한 걸음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도 남는다. 특히 유통 측면에서 보자면 공연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한 중심 플랫폼이다.

본 사업은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침체기를 보내야 했던 공연예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전국 어디서나 국민들이 양질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올해 의욕적으로 시작되었다.

박정연((사)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 팀장) : 창작을 지원해 주는 사업들은 많지만 지원하면서 안정적으로 유통까지 해줄 수 있는 사업이 민간에는 너무 좋은 모델이었습니다.

신예진(서울시뮤지컬단 PD) : 공연을 제작하는 단체에 창제작부터 마지막 유통까지 책임지게 하는 구조, 그리고 지역과의 협력이 필수 조건이므로 어찌 보면 여러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는 본 사업이 공연예술산업의 가치사슬인 창제작-유통-관객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데 아우른다고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일상을 되찾아가는 시기와 맞닿아서인지 큰 관심 속에 본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금년 한 해 동안 24개 단체의 신청사업이 선정되어, 17개 시도에서 총 404회 공연되었다. 이 공연을 대략 총 18만 명의 관객이 관람한 것으로 추정된다.2)

공연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 협력과 파트너십

신예진 서울시뮤지컬단 PD

박정연 (사)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 팀장

신예진(서울시뮤지컬단 PD) : 저희가 선택한 것은 연극에서 사용하는 디바이징 방식이라고, 참여자가 극본을 개발하고 그들에게 맞는 음악으로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화천에 있는 민간예술단체와 협력을 했는데, 화천에서 생애 전환기를 맞고 계시는 시민들을 만나 같이 예술 워크숍을 했어요. 그 워크숍을 기반으로 단원들의 이야기와 시민분들의 이야기를 버무려서 대본을 만들었어요.

박정연((사)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 팀장) : 전국의 페스티벌과 협력했던 것이 좋은 포인트였어요. 타 지원사업은 지역 공연장으로 한정이 되어 있는데, 이 지원사업은 파트너의 대상이 열려 있어서요. 재즈 연주자들이 지역의 토속 민요 레퍼토리를 전통 예술가들과 함께 재구성한 것이었죠.

신성희(GS칼텍스 예울마루 부장) : 기존 사업은 사실 협력이라는 관계 자체가 형성될 수 없는 구조였는데, 이번 사업은 참여하는 공연단체들이 굉장히 열정도 있었고, 오픈되어 있어서 저희 공연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본 지원사업에서 ① 공연단체/기획사와 제작사/지역의 공연장, ② 공연단체/기획사와 지역의 공연단체/공연장, ③ 공연장과 지역의 공연장이 협력하여 함께 공연을 만들었다. 주로 공연의 창제작은 단체가 주도하였고 지역의 공연장은 관객 개발을 위한 홍보와 마케팅,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워크숍을 마련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협력 모델이 발굴되었는데, 좌담회에 소개된 대로 공연 창제작에 지역의 단체나 예술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출연하였다. 정식 공연장을 벗어나 도서관이나 전시장과 같은 문화공간을 활용한 공간 다각화도 이뤄졌다. 그리고 지역의 어린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데 뜻을 모으기도 하였다.

지역 간 문화 소비 격차를 해소하고 균형 발전 도모

신성희 GS칼텍스 예울마루 부장

박선희 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이사

신성희(GS칼텍스 예울마루 부장) : 이 지역에 대해 공연단체들이 잘 알고 파악해서 그런지, 먼저 제안하는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홍보 마케팅 방법이라든지, 지역 관객이나 예술단체와 같이 워크숍, 아이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워크숍은 지역에서 흔하게 이뤄지지 않으니 공연장과 협력할 좋은 기회이죠. 워크숍을 깊게 고민하는 단체들에는 가산점이라도 줘서 활성화를 유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현장에서 했습니다.

타 지원사업은 기존 국공립 문예회관이 중심에 있다면, 본 사업은 민간·국공립의 정식 공연장 외 다양한 문화공간을 활용하도록 대상을 확대하여 지역 간 문화 소비의 격차를 줄이는 데 방점을 찍은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위 좌담회의 사례와 같이 이번 사업에 참여한 공연은 모두 협력의 일환으로 워크숍·아웃리치 프로그램을 열고 관객을 공연 바깥에서 만났으며, 관객이 더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 예술을 경험하고 소비할 수 있게 하였다.

서울시뮤지컬단, 왁자지껄 수다뮤지컬 <다시, 봄>©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이제 첫걸음을 뗀 우리에게 놓인 도전 과제

좌담회에서는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간의 성과 못지않게 본 사업을 진행하며 아쉬웠던 점이나 한계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이어갔다. ① 사업 초창기이니만큼 본 사업의 목적이나 목표에 대해 협력 기관 간 이해의 정도가 달랐던 점, ② 공연장과의 협력 모델이 다양하지 않고, ③ 티켓 판매 수입금을 정해진 기준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데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웠다는 점, ④ 생소한 공연을 지역에 홍보하기 어렵고 지역마다 홍보 마케팅의 환경이 다르고 열악한 점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당장 물리적으로 내년도 사업에 이를 반영하여 개선하기는 어렵겠으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현장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해소하도록 의지와 혜안을 가지고 바람직한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수사례 발표대회를 개최하여 사업에 참여하는 단체/기관들뿐만 아니라 예비 참여자들과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나아가 성과를 시상하는 축제와 같은 결산 자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2023년 공연유통협력 지원 사업으로 한 계단 더

이제 2023년 이후의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야를 돌려보자. 먼저 단순해진 사업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션이자 본 사업의 특장점인 유통과 협력에 집중한다. 주요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금년도 사업은 창제작 모두 가능하였으나, 내년에는 창작 공연은 제외하고 기 발표된 제작 공연만 지원이 가능하다. ② 신청 주체는 민간으로 한정하되 협력 기관이나 단체로 국공립이 함께 할 수 있다. ③ 기획과 유통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차세대 인력을 최대 2인까지 본 지원사업에 포함할 수 있다. ④ 다양한 공간을 공연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⑤ 모든 공연은 티켓을 판매한다.

공연 티켓 유료화 원칙은 지역 공연장마다 관객의 성향과 특징이 달라서 현장에서 일괄 적용하기 까다롭겠지만, 관객 관리와 확대를 위해 과감하지만 바람직한 결단이라고 믿는다. 티켓 판매를 통해 비로소 관객 데이터를 수집, 분석할 수 있고, 관객 개발을 위한 마케팅 전략 계획을 수립하는 프로세스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별도의 마케팅 컨설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에도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본 사업을 통한 협력적 파트너십이 발굴되어 우수한 공연이 지역마다 무대화되며,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줄일 뿐만 아니라 보다 충성된 관객층을 형성하길 바란다. 주춧돌을 쌓고 다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 있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필자 소개

    박선희는 금호문화재단에서 클래식음악영재 지원사업과 공연사업을 총괄하였으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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