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정점

2022년 한국 미술시장은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그 존재감이 단연 최고로 드러난 해라고 할 수 있다. SEOUL과 KOREA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였다. 9월 전에는 프리즈 서울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내년을 기약했다. 정점의 시간이 끝난 지금, 한국 미술시장엔 침묵이 찾아왔다. 유일하게 대중에 공개되는 미술시장 지표인 경매는 6월 이후 그 규모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1차 시장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화무십일홍. 짧은 정점을 끝으로 이제 긴 쇠락만이 남은 것일까. 올해 한국 미술시장을 짚어본다.

(1) 한국 미술시장 현황과 해외 미술시장

올해 미술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코로나19로 급격한 위축과 폭발적 성장을 거듭한 지난 3년의 세월도 함께 살펴야 한다. 최근 국내외 미술시장의 성장은 여러 요인이 맞물려 전개됐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에 자금이 각종 자산시장으로 몰렸고,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에 미술 관련 NFT가 폭풍의 핵으로 등장했다. 또한 동시에 이와 같은 모멘텀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라는 카드에 가로막혀 단번에 사라지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경기침체는 2020년 글로벌 미술시장을 집어삼켰다. 2019년 대비 28% 역성장하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정부의 적극적 양적완화에 힘입어 1년 만에 회복세로 돌아섰다. 2021년 글로벌 미술시장의 키워드는 단연 ‘Resilience’(회복탄력성)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여행이나 이동이 어려워지자, 국내 소비가 늘었다. 해외 아트페어 참석률은 떨어졌지만, 딜러를 통한 온라인 구매,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갈 곳 잃은 돈은 미술시장으로, 주식시장으로, 부동산시장으로, 가상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었다.

Figure 1.1 | Sales in the Global Art Market 2009 - 2021, p. 25.
출처 : Art Market 2022, UBS

지난 3월 발표된 아트바젤-UBS의 ‘아트마켓 2022’에 따르면 2021년 세계 미술시장 총 매출은 651억 달러(약 85조 원)로, 2020년 503억 달러 대비 29% 증가했다. (Figure 1.1 | Sales in the Global Art Market 2009 - 2021, p. 25.)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644억 달러)을 넘어선 수치다. 오프라인에서의 이동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했다. 2021년 온라인 거래는 전년 대비 7% 성장한 113억 달러를 달성했다. 온라인 매출이 전체 미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전년보다 5% 감소했지만, 이는 전체 거래액이라는 분모가 커진 영향이기도 하다. 2019년 9%에 비하면 2배 넘게 성장했다. (Figure 1.6 | Online Sales of Art and Antiques 2013 - 2021, p. 36.)

(2) 2022 해외 미술시장 금리인상 경제 침체에도 여전히 고공 행진

시장의 이와 같은 전반적 활기는 2022년도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전체 결산 자료가 집계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말할 순 없으나, 글로벌 양대 경매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가 지난 7월 발표한 올해 상반기 매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판매 총액은 41억 달러(5조 3,0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크리스티 측은 지난 7년 중 최고 실적으로, 록펠러 경매가 있었던 2018년 상반기를 능가했다고 발표했다. 하반기 경매 중 가장 큰 경매로 꼽혔던 지난 11월 열린 폴 알렌(1953~2018) 컬렉션은 단일 경매로는 최고액인 15억 638만 6,000달러(2조 640억 원)에 낙찰됐다.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그의 컬렉션을 놓고 시작 전 약 10억 달러(1조 3,300억 원)에 거래될 것으로 추정했으나, 50% 이상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모델들, 군상’으로 1억 4,900만 달러(약 2,041억 원)에 거래됐고, 1억 달러를 넘긴 작품만 5점에 달했다. 대형 경매에 힘입어 크리스티의 하반기 매출도 예년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술시장이 식어가는 와중에, 이와 같은 이벤트성 특별경매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11월 30일과 12월 1일 홍콩 홍콩컨벤션센터(HKCEC)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11월 경매의 내용을 살펴보면 섹터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틀간 열린 ‘20/21세기 미술경매’는 낙찰총액 12억 3,200만 홍콩달러(약 2,059억 원), 낙찰률 91%를 기록했다. 아시아 미술시장이 건재함을 확인하는 증거라며 샴페인을 터트렸지만, 메인 행사인 이브닝세일(20/21세기 미술) 낙찰액은 8억 1,780만 홍콩달러(1,365억 원)였다. 올해 5월 14억 홍콩달러(2,337억 원), 지난해 3월 15억 홍콩달러(2,504억 원), 지난해 5월 16억 홍콩달러(2,671억 원)과 상당한 차이가 나는 숫자다. 출품작도 늘 80점에 가까웠는데 이번엔 68점으로 줄었다. 메인을 장식했던 티라노사우루스 셴의 뼈대는 ‘완전성에 의심’을 받으며 경매가 취소됐고, 예상가 8,500만~1억 홍콩달러(142~167억 원)였던 산유의 걸작 ‘매화(Potted Prunus, 1940년대)’도 경매 직전 출품이 취소됐다. 인기 작가인 자오우키(6,800만~9,800만 홍콩달러)와 우관중(1,900만~2,500만 홍콩달러)의 작품은 유찰됐다. 가장 핵심인 이브닝 경매만 따로 놓고 보면, 경매시장이 이전처럼 활황은 아님이 명확하다.

(3) 2022 한국 미술시장 ‘상고하저’

한국 미술시장도 상반기까지는 해외 미술시장과 유사한 커플링을 보이다가 하반기부터는 확연하게 하락 반전한다. 미술시장에서 유일하게 대중에게 그 숫자가 공개되는 경매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시장 전체적으로 활기가 주춤한 상황이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1월 현재까지 국내 10개 경매사의 낙찰총액은 2,230억 원이다. 2021년 전체 낙찰총액인 3,242억 원에 비해 약 31% 줄어들었다. 12월 한 달 치 낙찰총액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해도 20% 넘게 시장이 주저앉았다.
시장이 하락 반전한 것은 6월부터였다. 전년 동기 대비 낙찰총액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낙찰률도 꾸준히 빠져 2022년 11월 30일 현재 연평균 낙찰률은 59.7%다. 2021년 평균 낙찰률은 66.5%였다. 가장 최근인 11월은 49.3%를 기록해 출품작의 절반이 유찰됐다.

Figure 3.22 | Market Share of the Post-War and Contemporary Sector in 2021, p. 162.
출처 : Art Market 2022, UBS

한국 미술시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요인으로는 크게 경기침체, 급성장에 따른 피로감, 가상자산시장의 폭락 등이 꼽힌다. 올 초부터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달러를 빨아들이고 있다.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할 것 없이 대부분 자산시장이 폭락했다. 미술시장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급격한 성장에 따른 조정기도 왔다. ‘아트마켓 2022’에 따르면, 조사 이래 처음으로 한국이 ‘전후 및 동시대 미술’ 분야 전 세계 거래액 2%에 랭크됐다. (Figure 3.22 | Market Share of the Post-War and Contemporary Sector in 2021, p. 162.)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에 이어 5위를 차지한 것이다. 전후 및 동시대 미술은 현대 미술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로 꼽힌다. 존재감조차 희미했던 한국 미술시장이 5위에 진입하게 된 것은 MZ세대로 불리는 신규 컬렉터의 다량 유입이 컸다. 문제는 이들 MZ컬렉터의 자산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가상자산 시장이 몰락하면서 국내 미술시장도 함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올해 거래 규모가 약 9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미술품 분할소유권(조각 투자) 시장을 금융 당국이 증권으로 편입하면서, 소비자보호조치를 마련할 때까지 공동구매가 잠정 중단됐다. 시장 전체를 흔들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투자심리엔 악영향일 것으로 보인다.

(4) 그렇다면 내년 한국 미술시장은

시장에서는 내년 한국 미술시장이 긴 침묵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매시장의 위축은 이미 시작됐고, 냉기가 1차 시장과 프라이빗 세일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는 것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만큼 급하게 식는 경매시장과 달리 1차 시장인 갤러리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프라이빗 세일 시장은 견조한 편이다. 이우환, 박서보, 이건용, 이배 등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갤러리 가격에선 시장 경쟁력이 있고, 프라이빗 세일도 거래가 뜸할 뿐 호가는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경매에서 유명 작가의 작업이 유찰, 취소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컬렉터들의 심리도 차갑게 식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호가는 있지만 거래는 없는 ‘긴 침묵’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2022 프리즈서울 전경
출처 : 프리즈 홈페이지

그러나 마냥 다운사이드만 커진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은 글로벌 미술계에 아시아 아트 허브로 서울의 가능성을 알렸다. 때맞춰 열린 삼청 나이트, 한남 나이트, 작가 작업실 방문, 각종 포럼 및 세미나 등 한국 미술을 딥 다이브(Deep dive)할 수 있었던 행사들로 한국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프리즈에 참여했던 갤러리들이 만족감을 표하자, 서울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진 상황이다. 올해는 해외 유명 재단, 미술관 등 기관 관계자들과 큐레이터, 디렉터 등이 주로 찾았다면, 내년엔 해외 방문이 좀 더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여 주변국 큰손 컬렉터들의 방문이 기대된다. 아시아 아트 허브로 작동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더불어 미술시장의 후퇴에도 한계가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849억 원이던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는 2021년 9,223억 원까지 커졌다. 빅뱅 수준의 성장에 따른 피로감은 분명 있지만, 아무리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이전 수준까지 후퇴는 어렵다. 유통, 패션 산업 등 다른 산업의 미술시장 진출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곁에 두고 감상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더해 아트 토이, 한정판 굿즈 등 미술시장의 저변도 커졌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변곡점의 끝에서, 프리즈 서울은 한국 미술시장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파티가 끝난 뒤 찾아온 침묵의 시간, 화무십일홍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어떠한 조치들이 필요할까. 2023년은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다.

  • 필자소개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감정평가사협회(AAA)의 미술품 시가감정 과정을 수료, AAA의 준회원 후보 자격을 획득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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