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성장세가 대단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뮤지컬 산업은 그러나 ‘엔데믹’이 시작되며 V자 반등을 기록하는 등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물가 상승과 인건비 증가로 공연 입장권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악재도 있지만, 심지어 ‘보복 소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회복세는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대한민국이 가히 뮤지컬 전성시대를 맞는 듯하다.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관행적 분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크게 창작뮤지컬과 수입뮤지컬로 양분돼 있다. 수입뮤지컬은 다시 공연권을 확보해 우리말로 재구성하는 라이선스뮤지컬 그리고 배우와 스태프, 제작진이 모두 함께 내한해 일정 기간 막을 올리는 오리지널뮤지컬로 관행적으로 구분한다. 정교하거나 치밀한 분류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리지널(original)’이다. 일반적으로 무대에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은 초연 배우가 등장하는 무대, 즉, 오리지널 캐스트가 출연하는 공연이나 음반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단지 외국어로 공연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무대라고 해서 오리지널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그저 마케팅 수사에 불과하다. 원작이 프랑스어로 만들어진 뮤지컬을 영어로 번안한 프로덕션이 내한해도 오리지널뮤지컬이라는 표기를 붙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등장했던 것도 마찬가지 오해 탓이다.

엄밀하게는 투어 프로덕션이라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과거에 비해 투어 공연 양식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많은 인력과 기술이 집중되는 대형 뮤지컬 프로덕션의 경우 과거엔 대도시의 규모가 있는 공연장에서 갖가지 볼거리와 특수효과를 더해 장기 상연하며 관객들의 발길을 유혹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무대 설치와 해체의 용이함, 그리고 무대 세트의 경량화 등을 바탕으로 관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공연이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가 시장 상황을 뒤바꾸고 있다. 글로벌 뮤지컬 산업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창작뮤지컬의 정의에 관한 논의와 K-뮤지컬



수적으로만 보자면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가장 주요한 동력은 단연 창작뮤지컬이다. 연간 제작 편수나 참여 인력, 다양한 소재라는 측면에서 한국 뮤지컬이 지닌 특유의 역동성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논란도 있다. 우선 창작뮤지컬의 정의에 얽힌 부분이다. 어떤 형태나 구조, 형식을 지닌 작품들을 이른바 ‘창작’ 뮤지컬로 구분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배우들은 한국 배우가 나오는 작품을 창작뮤지컬이라 부르고 싶어 하고, 제작진은 작사나 작곡, 극작가가 우리 예술가인 경우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갈수록 글로벌화되어가는 작금의 뮤지컬 산업 환경 하에서 막연한 기준과 잣대로는 창작뮤지컬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다는 딜레마다. 배우의 국적으로 창작을 논한다면 과연 몇 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할 때 창작과 수입의 구분을 둘 것인지, 예를 들어 10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무대에서 6명이 한국 배우이고, 4명이 외국 배우라면 우리는 이를 창작뮤지컬이라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한 난처함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작사가는 한국인이고 작곡가는 외국인이라면 우린 이 뮤지컬을 창작뮤지컬이라 인정할 것인가의 모호함도 있다. 애초에 창작뮤지컬이라는 개념이 수입뮤지컬과의 대척점에서 비롯돼 국내 시장을 보호하며 한국 예술가들을 진작시키고 육성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도를 반영한 용어로 시작되다 보니 생겨난 문제점들이다.

당연히 정책의 개발과 적용, 시장의 순기능을 제고하기 위해서 창작뮤지컬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보다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지식재산권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그 여부에 따라 창작뮤지컬의 정의를 적용하는 방법이다. 특정 콘텐츠의 부가가치가 어느 국가나 경제권역의 참여자에게 귀속되는지 그 여부에 따라 창작뮤지컬의 정의를 적용하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창작뮤지컬이라는 용어보다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는 ‘K-뮤지컬’로 용어를 대체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보다 넓어진 K-뮤지컬의 개념 아래에서 더욱 탄력적이고 신축적으로 대한민국의 뮤지컬 콘텐츠와 관련 산업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모색과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K-뮤지컬로의 확장을 위한 다양한 변화 모색

이미 시장은 이런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단순히 어느 나라 사람이 만든 뮤지컬인가에 논의를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국 공연 시장에 라이선스 뮤지컬이 통용되며 부가가치를 낳는 것처럼 K-뮤지컬의 판권을 스몰 라이선스나 논 레플리카(non-replica) 등 다양한 형태로 적극 활용해 글로벌 마켓에 알리고 되파는 부류의 도전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해외 흥행 프로덕션에 투자자로 참여함으로써 향후 글로벌 공연시장으로의 확장에 수익 셰어가 가능한 프로듀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경우도 목격되고 있다. 간접적으로는 글로벌 문화 콘텐츠의 유통에서 우리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향후 해당 콘텐츠의 한국 제작이 이뤄질 경우 더욱 빠르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장점 등이 있다. 일차원적인 저작권 귀속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차원적이고 입체적인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 과정을 분석하고 활용함으로써 그 외연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무척이나 반가운 논의의 확장이다.

창작뮤지컬의 제작과 유통에서 수도권과 지역의 역할 대두



국내 시장을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창작뮤지컬의 제작과 유통에 선순환적인 영향을 고민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역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도 그중 하나다. 지금까지 우리의 뮤지컬 시장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개발과 제작을 주도하고, 지역은 단순히 콘텐츠가 유통되는 시장적 기능에 머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역발상을 해야 한다. 지역에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서울에서 흥행을 점검하는 방식으로의 변화다. 그러니까, 일종의 수문장(gatekeeper) 역할을 지방에 부여해 콘텐츠의 초기 개발과 완성도를 높이는 담금질의 과정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환경적 요인을 배려하고, 서울 및 수도권은 이런 과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들이 더욱 큰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 흥행을 도모할 수 있는 시장적 기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개발된 창작뮤지컬은 다시 지역으로 옮겨져 안정적으로 소비될 수도 있고,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면 글로벌 마켓으로 진출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도록 정책적 배려의 대상으로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 지역이 창작 과정에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동화되어가는 지방에 문화와 예술이라는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해 관련 산업의 육성을 추진함으로 경제의 역동성을 제고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미 크고 작은 시도들이 결실을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구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다. 인도나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 서울에서도 좀체 만나기 힘든 다양한 국가들의 뮤지컬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창작 지원 프로그램이다. 일종의 문화 콘텐츠 인큐베이팅 사업인데, 아직 한 번도 티켓을 상업적으로 유통하지 않은 창작뮤지컬을 대상으로 하여 대본과 음악을 공모해 트라이 아웃(try out) 무대 형태로 축제에 선보이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독회(reading) 과정도 추가돼 창작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적극성도 보이고 있다. 지역에서 첫 실험 무대가 꾸며지는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상대적으로 제작비의 압박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얻을 뿐 아니라, 지역이 콘텐츠 초기 개발에 참여하는 전초기지로 활용됨으로써 공연산업의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장점도 부차적으로 얻을 수 있다. 좋은 선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K-뮤지컬국제마켓 또는 K-뮤지컬 로드쇼 프로그램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산실 등과의 유기적인 결합도 고민해볼 문제다. 창작뮤지컬의 외연을 K-뮤지컬 개념을 통해 확장하듯, 우리나라 뮤지컬 콘텐츠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모색해야 한다.

잘 익은 단감이 내 입으로 떨어질 순간만을 꿈꾸며 감나무 아래 누워만 있을 것이 아니라 좋은 과실을 맺도록 비료도 주고, 보호하고 육성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먼저 고민돼야 한다. 창작뮤지컬의 성장은 그런 노력이 거듭되면 자연스레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 필자 소개

    순천향대학교 교수이자 뮤지컬 평론가. 한국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이며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이자 학술분과장을 맡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 다수의 뮤지컬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뮤지컬 분야의 전문 평론가로 지금도 지면과 방송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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