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미술시장의 호황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확대된 미술시장을 바라보며 미술계에 입문한 젊은 세대들에게, 최근의 시장 변동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장 확대에 따라 시작된 직업군의 분화가 주춤거리고 호황기 젊은 작가들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지금 가장 먼저 거두어지고 있다. [weeekly@예술경영]은 시장변동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젊은 미술가들의 진단과 모색을 싣는다./편집자 주 연재순서: ② 공간
지난 몇 년간 몰아친 미술시장의 열기가 급격히 주저앉은 가운데 새로운 대안은 부재하고 혼란에 빠져버린 듯도 하다.그간 진행되어 온 대안공간의 활동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공간들의 움직임을 다가올 미래라고 추켜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의 기로에서 현재는 과거를 통해 열린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 대안공간인가요?” 2006년 갤러리킹을 오픈하고 한동안 듣던 질문이다. 대안공간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작가, 기획자 등 미술 관계자들은 머릿속에 채 10년도 못된 대안공간들의 강렬한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전시장, 서평, 홍보 등 작가 주변의 모든 것을 제공하는 동일한 외적 지원 형태만을 주목하면서 기존 대안공간과의 구분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2009년 미술이 시장의 풍파를 겪으면서 그 관심이 미술계 너머 일상으로까지 크게 확대되었다. 가깝게는 다양한 미술 관련 문화 행사들이 빈번하게 열리고 있고, 창작 예술 공간에 대한 지원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또한 수많은 국내외 옥션과 기존의 대안공간들의 역할을 고스란히 담당하고 있는 상업갤러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된 환경은 ‘확장’의 징후이기도 하지만 기존 대안공간들의 역할이 대체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소위 대안공간 이후 새로운 공간들은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변화된 환경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새로운 몇몇 온·오프라인 공간들의 특색 있는 활동과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카페 등에 대한 사례를 통해 대안공간 이후 새로운 공간들의 변모된 역할과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온ㆍ오프라인 넘나드는 광범위한 활동

「한국의 대안공간 실태연구」(사회문화연구소, 2007년)에 따르면 “대안공간의 주요 홍보처는 언론사나 미술관계자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일반인들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홍보 방안이 모색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상기 연구는 대안공간 설립 10년을 즈음하여 발간된 자료인데, 기존 대안공간들이 일반인들과의 소통에 대해 소원했다기보다는 척박한 국내 미술 환경을 개척하면서 쏟아 부을 수 있었던 에너지의 한계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적절할 것이다. 대안공간의 주요한 역할은 다양한 미술 활동들을 통해 예술에 대한 인식의 범주를 확장하는데 있었다고 본다.

대안공간들의 현재 중점 사업


대중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폭은 롤러코스터 같은 시장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작가들의 창작물들은 소수의 감상물이 아닌 대중의 향유 대상으로 진입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기존의 대안 공간들에 대한 내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혼란의 가운데 새롭게 자리하기 시작한 공간들은 차별화된 소통방식과 적극적인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활동과 시장에 대한 유연한 사고는 새로운 양상이다.


갤러리킹은 미술과 대중의 소통을 지향하여 2004년 온라인 사이트에서 시작하여 2006년 오프라인 공간을 오픈하였다. 온라인의 경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킹이랑 미술관 가기’, 작품을 판매하는 ‘오나프’(www.onaf.co.kr), 오프라인의 경우 기획전과 미술 파티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미술작품 판매 사이트인 오나프


‘킹이랑 미술관 가기’는 온라인을 통해 행사 내용을 공지하고 일반 사람들을 모집하여 전시장을 투어 하는 프로그램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총 40회에 걸쳐 70여 곳을 순회하였으며 2천여 명이 참여하였다. 기존의 대안공간들이 중점 사업으로 삼고 있는 공간 내부에 머무르는 전시 위주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을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오나프’는 신생 갤러리들이 연합하여 작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이다. 지난해 쌈지스페이스가 주최한 심포지엄 ‘왜 대안공간을 묻는가’에서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대안공간의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복제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상업갤러리들이 점차 기존 대안공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적극적인 수익모델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대안적인 공간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스튜디오 유닛의 옥션 모습스튜디오유닛의 경우 2004년 홍대 앞 작업실 투어를 시작으로 현재 작가들을 연대하여 온·오프라인 전시, 작업실 투어, 옥션, 파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들 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자생력 있는 작가 배출과 예술을 사랑하는 일반인들과 예술 관계자들의 소통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온라인을 통해 3천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작가와 작품이 연재 및 전시되고 있다. 또한 작업실 투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 스스로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소통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나 기존의 제도화된 옥션과는 차별화된 작가들이 주축이 된 스튜디오유닛만의 옥션은 8회가 진행되는 동안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작가들 간 연대를 통해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매니지먼트 함으로써 작가의 기반을 보다 확장하는 토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시장에 대한 유연한 사고

AB군단 건물 전경
AB군단은 미술전시 에이전시로서 전시대행 서비스, 아트 비즈니스, 작가 레지던스, 전시 공간 등을 하나의 거대한 건물 내에서 총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회사이다. 앞서 언급된 두 사례와의 확연한 차이점은 적극적으로 미술 비즈니스를 실천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회사’라는 명칭에는 일반적인 함의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 AB군단은 “모든 비즈니스 모델들이 오직 ‘미술’을 기본으로 기획 및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전시 공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2명의 작가가 상주하고 있는 레지던스 공간은 사무실 바로 옆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오픈 스튜디오와 수시 전시를 통해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또한 매월 열리는 벼룩시장은 AB군단이 단순히 자본 축적만을 위한 회사가 아닌 건전한 미술 풍토의 단초로서 기획·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갤러리킹, 스튜디오유닛, AB군단 각각의 움직임들을 통해 기존의 대안공간에서 발견 할 수 없었던 적극적인 소통과 비즈니스를 접목한 노력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득권에 대한 학습과 반성에 기인하기도 하며 변모된 환경에 대처하는 발 빠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들이 시장의 지배력으로부터 적절히 벗어나 각자가 지향하는 역할들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뚜렷한 담론이 없는 상태에서 좌표를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켜봐야 할 일이다.




새로운 매개 공간, 카페 갤러리


요 몇 년 사이 카페 곳곳에 그림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소위 카페 갤러리들의 출현은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홍대, 신사동, 압구정 등에서 많이 목격된다. 이는 국내 미술시장 활황기에 있었던 젊은 작가들에 대한 화려한 주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는 확장된 인식의 저변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젊은 대중과 작업의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찾던 다수의 작가들이 카페라는 문턱이 낮은 공간과 맞물려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카페 갤러리 전시 광경


홍대의 문화공간 안내 지도인 [쓸모 있는 종이]에 기록된 카페 갤러리는 현재까지 총 16개 정도이다. 여기에 복합공간과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카페 전시들을 합하면 그 수와 양은 전시장의 몇 배에 이른다. 이러한 카페 갤러리는 자체적으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하고, 카페 간 서로 연계한 프로젝트 전시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또한 다양한 축제의 전시, 공연 등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실례로 홍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 와우북페스티벌 등의 경우 직간접적으로 카페와 연계되거나 그에 대한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또한 2008년에 홍대에서 열렸던 ‘카페 아트마켓’(갤러리킹 기획)의 경우 갤러리를 매개로 4곳의 카페를 연계하여 진행됐는데 성공적인 판매는 물론 카페가 미술과 대중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 2009년 상상마당이 주최한 ‘서교난장’(NGAF, New Generation Art Fair)의 경우 100여 명의 작가 150여 작품이 4곳의 갤러리와 4곳의 카페를 연계하여 진행되었고 언론과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갤러리와 카페와의 교류는 여전히 대중에게 문턱이 높았던 갤러리 공간들이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중요성을 발견한 지점이기도 하고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서 카페가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리기도 한다. 좀더 과거로 올라가 보면 카페는 과거 대안공간으로 이어졌던 대안문화의 출발점이기도 했다.「한국의 대안공간 실태연구」(사회문화연구소, 2007년)에 의하면 “홍대 앞 카페에서 실험적으로 시도 되었던 몇몇 작가들의 전시들은 한국판 대안공간의 탄생이 얼마 안 남았음을 예견하는 중요한 시도라 할 수 있다. 1991년 클럽오존에서 개최된《바이오 인스톨레이션 오존전》등 (중략) 기존 전시공간 이외의 공간들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되었던 전시들이 그러한 사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지적이 그러하다.


카페 갤러리 전시 작품들


이로부터 우리는 오늘날의 카페 갤러리가 보다 폭넓고 유용한 예술의 새로운 장을 형성하기 위해서, 다시금 과거 대안문화(공간)로서 기능했던 지점들을 비판적으로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전히 갤러리, 카페 어느 곳도 생산, 향유, 유통의 유기적인 구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를 창출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대안’ ‘공간’ ‘이후’, 과거 현재 미래의 연결 고리


대안공간을 정의하는 데는 여러 가지 난맥상이 있다. 대안은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을 통해 전복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2008년 대안공간 1세대로 분류되는 쌈지가 폐관하였다. 대안공간이 설립된 지 꼭 10년 만의 일이었다. 또한 90년대 후반 IMF 사태 이후 10여 년 만에 닥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몰아친 미술시장의 열기가 급격히 주저앉은 가운데 새로운 대안은 부재하고 혼란에 빠져 버린 듯도 하다. 그간 진행되어 온 대안공간의 활동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공간들의 움직임을 다가올 미래라고 추켜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의 기로에서 현재는 과거를 통해 열린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록 시장의 열기가 식었지만 새로운 시도들은 실패하는 대안들을 통해 불씨를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안’ ‘공간’ ‘이후’는 과거, 현재, 미래의 연결 고리이며 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들은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바이홍

필자소개
바이홍(본명: 최홍규)은 한양대 국어국문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갤러리킹 디렉터로 내외부의 다양한 전시 기획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미술과 그 주변의 문화들이 교류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