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von Kelly (출처 : London Real)

IT 전문잡지 와이어드(Wired)를 창간한 케빈 켈리(Kevin Kelly)는 크리에이터(Creator)가 창작자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백만 달러의 수입과 백만 명의 관객이 아니라 1,000명의 진정한 팬이라는 ‘1,000명 진짜 팬 이론’을 제시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팬이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200마일 거리를 운전하고, 유튜브 채널의 ‘베스트 선곡’ DVD를 따로 구매하며, 좋아하는 작가가 펴낸 책이라면 오디오 북을 포함한 모든 책을 기꺼이 구매하는 팬이다. 크리에이터가 팬 1명당 연간 100달러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100달러 x 1,000명 = 100,000달러를 얻을 수 있다. 즉 엄청난 부(富)까지는 아니더라도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수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팬들의 숫자는 더 적어도 된다. 연 수입 6천만 원 정도가 필요한 크리에이터라면, 1년에 10만 원을 지출하는 팬 600명이면 되고, 작품 가격이 30만 원인 크리에이터라면 2년에 한 번 지갑을 여는 팬이 400명만 있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크리에이터가 자기 작품을 진정 사랑하는 소수의 팬만을 바라보면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요한 것은, 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갤러리, 출판사, 공연기획사에 의존하지 않고 팬들과 ‘직접적인 연결’ 관계를 맺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팬덤 경제

소수의 진짜 팬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디지털 사회의 도래로 대중 시장(Mass Market)이 소멸되고, 전통적인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에 부딪힘에 따라 주목받는다. 콘텐츠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가치를 고객들에게 전달하고 이를 수익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자신만의 까다로운 취향으로 세분화되었고,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가 출현함에 따라 대중들에게 콘텐츠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콘텐츠 산업이 위축되는 현상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바랏 아난드(Bharat Anand) 교수는 ‘디지털 대화재로 인한 문화산업 대학살’이라고 표현했다. 아난드 교수에 따르면, 디지털 대화재의 본질은 미디어의 ‘연결 기능 상실’이며, 문화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중이 아니라 핵심 고객에 집중하고, 팬들과 연결을 강화함으로써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문화산업은 팬덤 경제를 중심으로 작동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팬덤 경제란, ‘관심 대상에 대한 고객의 충성심(loyalty)이 재화로 전환되는 경제 구조’를 의미한다. 그리고 팬덤 비즈니스는 ‘팬들의 충성심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비즈니스’이며, 팬덤 마케팅은 ‘팬들과의 효과적인 연결을 통해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체 시스템을 움직이는 동력은 팬들의 충성심이며, 팬들과의 ‘효과적 연결’ 여부가 시스템의 성패를 좌우한다.

“크리에이터들이 창작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예술 분야에서의 팬덤 경제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가능하게 한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란 ‘창작자들이 플랫폼의 수익 배분에 의지하지 않고, 창작물로 수익을 내면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의미하며, 디지털 시대의 문화산업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가능한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패트리온 한국 홈페이지 (출처 : Patreon.com)

팬들과 창작자를 연결하는 콘텐츠 플랫폼 온리팬스(Only Fans)에서는 16,000명의 창작자들이 연간 5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다.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은 17,000명의 작가들과 200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연결하고, 패트리온(Patreon)에서는 비디오, 만화, 음악, 게임 창작자 20만 명이 800만 명의 후원자들로부터 총 2조 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당연히 한국의 많은 창작자들도 이들 플랫폼에서 팬들과 만나고 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콘텐츠 창작자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틱톡은 2억 달러의 크리에이터 펀드를 조성하여 창작자들에게 배분하고 있으며, 유튜브도 쇼츠 창작자들에게 1억 달러를 지원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크리에이터들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최고의 플랫폼’을 지향하며 10억 달러 보너스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엑스(X, 옛 트위터)도 유료 구독 서비스 ‘슈퍼 팔로우’를 도입했다. 이와 같은 크리에이터와 팬들을 직접 연결하는 C2C (Creator-to-Consumer) 플랫폼의 확산을 실리콘 밸리의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크 안데르센(Marc Andreessen)은 ‘인터넷 제3의 물결’이라고 표현했다. 1,000명 진짜 팬 이론이 성립되기 위한 필요조건, 즉 팬들과의 직접 연결을 통한 창작자의 수익 창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팬들의 행복은 무엇인가?

연도별 상반기 피지컬 앨범 차트 Top 400 퍈매량 (출처 : 써클차트)

K팝은 팬덤 경제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꼽힌다. K팝 팬덤 경제의 시장규모는 8조 원으로 추산된다. 아이프라이스그룹(iPrice Group)의 조사에 따르면, BTS 아미는 앨범, 콘서트, 굿즈에 한 명당 평균 1,422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K팝 팬덤으로 CD 판매도 급증했다. 세계 1위 규모인 미국 음악 시장의 CD 판매량은 2022년 3,300만 장으로 계속 하락 추세인 반면, 국내 K팝 그룹들의 CD 판매량은 고공 행진을 계속하면서 ‘K팝 1억 장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앨범차트 TOP400의 판매량은 약 5,500만 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00만 장 많았다.

이미지를 공개하지 않는 랜덤 굿즈 예시 (출처 : 한국소비자원)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는 이유는 포토카드, 포스터 등 굿즈를 포함해서 음반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구매한 CD로 음악 감상을 한 소비자는 5.7%에 불과했고, 52.7%는 굿즈 수집을 목적으로 음반을 구매했다. 문제는 원하는 아이돌 굿즈의 획득 여부가 우연적 요소로 정해지는 ‘랜덤 굿즈’다. 랜덤 굿즈를 얻기 위해 음반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들은 동일 음반을 평균 4.1장 구매했고, 90장까지 구매한 소비자도 있었다.

충성 팬이라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여러 장 살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포토카드를 꼭 수집하고 싶은 팬의 충성심을 90장의 CD 판매수익으로 전환하는 것도 팬덤 비즈니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본질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고 대가를 얻는 것이다. 팬덤 비즈니스가 고객 가치를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팬들의 충성심만을 활용해서 대가를 얻는다면, 이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팬심을 이용한 상술로 비난받아야 한다. 구매한 CD에서 내가 원하는 포토카드가 나오지 않았을 때 느끼는 팬의 실망감은 아티스트가 제공할 가치가 아니다.

창작자가 자기 작품을 사랑하는 팬과의 연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팬덤 경제가 확산되고 있다. 팬덤 경제에서 더욱 중요해진 것은 ‘창작자가 팬들에게 제공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고, 팬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노력이다. 아무리 충성심이 많은 팬이라도, 창작자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그들은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네소타주립대학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제일기획, 파라마운트영화사 라이선싱 에이전트,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동우A&E 부사장을 거치면서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뮤지컬 산업을 경험하였다. 2012년 (사)한국애니메이션학회 ASKO 학술상,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2017년 경기중소기업청 우수창업센터장상을 수상했고,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콘텐츠 마케팅과 비즈니스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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