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의 올해의 여름 노래 차트 10위에 오른 다이나믹 듀오의 'AEAO'.
뉴진스, 정국 등과 함께 차트에 올랐다. (출처 : 틱톡코리아 뉴스룸)

팬덤의 창작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

최근 다이나믹 듀오가 2014년 발표했던 ‘AEAO’라는 곡이 국내외 음원차트를 역주행하고 있어 화제다. 잊혀 가던 ‘AEAO’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기획사나 마케팅 회사가 아닌 디지털에서 새롭게 팬덤을 만들어낸 틱톡 크리에이터들이다. 틱톡은 글로벌 16억 이상의 월간 사용자 수를 가진,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로, 음악과 댄스가 틱톡의 주요 장르에 해당한다. 다이나믹 듀오의 팬들이었던 몇몇 틱톡 사용자들이 진솔한 가사와 중독적인 후렴구를 가진 ‘AEAO’ 노래를 사용해 영상을 올렸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를 따라 틱톡에서 해당 곡을 부르거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영상을 재창작해 게시하면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콘텐츠의 성공이 프로듀서나 기획사, 방송국이 주도해 부상한 스타의 ‘인기’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어떤 콘텐츠라도 시청자들의 콘텐츠 ‘재창작’에 의한 재미와 참여, 소비의 커뮤니티의 형성이 ‘팬덤’에 필수가 된 것이다.

팬덤은 자발적인 열정에서 시작하여 선호하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적극 수집하고 애정을 적극 표현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Fiske, 1992). 이들은 앨범, 콘서트, 방송 등 아티스트가 직접 창작의 과정에 관여한 콘텐츠를 즐기고 감상하는 역할을 해왔고, 이러한 형태는 ‘소비’를 중심으로 한 일차적인 의미의 팬덤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은 팬덤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팬들이 자체적으로 생산과 공유하는 문화를 활성화하게 하였다. 이는 이차적 의미의 팬덤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팬덤의 콘텐츠 IP를 활용해 재창작 활동을 하는 프로슈머이자 크리에이터로서의 팬덤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에서 팬덤 소비자들이 집단적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 안에서 팬들이 아티스트들의 사진, 직캠을 공유하고, 직접 영상 콘텐츠를 만들거나 아티스트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써서 배포하기도 하면서, 팬덤 콘텐츠의 생산 영역이 새롭게 확장된 것이다. 온라인 팬덤 커뮤니티에서 만난 팬들은 오프라인에서 아티스트의 생일 및 기념일에 카페를 대관해 모임을 하고, 자신이 만든 실물 굿즈를 다른 팬들에게 판매하거나, 팬덤 기부금을 모아 지하철역에 유명인들의 생일 및 기념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게시하고 있다. 이렇게 팬덤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제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확장되며, 아이돌 산업에서 시작한 팬덤의 대상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치 등에서 활동하는 콘텐츠 창작자인 ‘크리에이터’로 확장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비주류 문화로 취급받던 크리에이터들도 이제는 당당히 팬덤을 보유한 영향력자로서 이 산업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 미스터비스트.
그가 만든 오징어 게임 실사판 영상은 조회수가 3억이 넘었다. (출처 : MrBeast Burger)

누구나 창작자가 되어 팬덤을 가지는 시대, 크리에이터

‘시대상을 읽으려면 초등학생들의 미래를 보라.’라는 말이 있다. 2022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조사한 초등학생 장래 희망 직업 순위에서 크리에이터는 의사나 경찰보다도 높은 3위를 차지하였다. 개인 창작자를 뜻하는 크리에이터는 디지털에서 영상, 사진, 소설, 웹툰, 팟캐스트 등 창의적인 콘텐츠를 창작하고 공유하는 개인을 뜻한다. 인플루언서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이제 웬만한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 이상의 팬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Gen-Z세대에서 더욱 강한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 미스터비스트(1.8억 명)는 만 25세이며, 전 세계 틱톡 매출 상위 5명은 모두 25세 이하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시청자의 개념은 점차 팬덤으로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반적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을 우리는 시청자(viewer) 또는 팔로워(follower) 또는 구독자(subscriber)라고 한다. 로블록스와 같은 사용자 창작 게임 플랫폼에서는 플레이어(player)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단순히 시청하는 것을 넘어 특정 크리에이터에게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는 적극적인 옹호자인 팬덤이 된다. 이들은 팬으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를 후원하고, 매력적인 오디언스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 유료 구매에 나서는 고객 집단이다. 일종의 발굴자, 컬렉터, 후원자이자 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팬덤은 자신이 지지하는 크리에이터를 위해 정기 후원, 유료 아이템 구매, 크라우드 펀딩 등의 방식으로 경제적 후원을 한다.

최근에는 NFT와 같은 새로운 개념의 후원 및 투자 수단이 등장했다. 팬덤은 크리에이터의 초기 후원 단계부터 참여하여 함께 팬덤을 모으고, 장기적으로는 콘텐츠의 가치가 상승하여 NFT 가격이 상승하면 투자 성과를 함께 나눌 수도 있다. 다만, 대다수의 NFT 프로젝트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반면, 거래량 자체를 늘려 차익을 얻으려는 투기성의 목적에 가깝게 운영되며 시장의 신뢰를 많이 잃은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팬덤을 관리해주고 수익화해주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온리팬스, 패트리온 등이 대표적이며, 국내에서는 비스테이지빅크가 대표적이다. 팬덤 플랫폼은 소셜미디어보다 크리에이터에게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커뮤니티 운영과 마케팅을 위한 정보 및 데이터 접근이 용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온리팬스와 같이 자칫 유해한 콘텐츠의 새로운 유통 경로로 변질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팔로워 숫자로 구분한 크리에이터. 나노와 마이크로 크리에이터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출처 :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규모보다는 버티컬에 집중하라, 세분화되는 팬덤

크리에이터들에게 어느 정도의 팬덤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하지만 최근의 커다란 트렌드는 단순히 구독자를 수십만, 수백만 모으는 것보다는, 작더라도 나를 정말 사랑해주고 나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단단한 팬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팔로워 숫자로 크리에이터를 구분한다면, 크게 메가, 매크로, 마이크로, 나노로 분류할 수 있다. 메가는 수십만~수백만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지도 높은 셀럽형이다. 마이크로 및 나노는 그보다 숫자는 훨씬 작지만, 보다 충성도 높은 팬들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다. 과거에는 메가, 매크로가 시장의 트렌드를 리드했다면, 지금은 나노 크리에이터 단위에서도 작지만 강한 팬덤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이런 분야를 다루는 크리에이터가 있다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을 좋아하고 따르는 팬덤들이 있음을 우리는 디지털 공간에서 매번 확인할 수 있다. 계곡을 전문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계곡은 개골개골’은 계곡만을 콘텐츠로 만들어 구독자를 20만 이상 모으기도 했다. 앞으로 점차 더 취향이 세분화되어 가는 시대에서는 팬덤 또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채널들을 적극 찾고 팬으로서 그 채널을 적극 후원하게 될 것이다.

남녀노소 팬덤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더 세분화하고 표현할 수 있다.
(출처: 모비인사이드 ‘[IT 트렌드 바로읽기] 소셜 팬덤의 시대‘)

팬덤 문화의 이면과 새로운 가능성

이처럼 다변화되는 팬덤 문화의 이면에는 갈등의 요소들 또한 함께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22년 발행한 <콘텐츠산업 팬덤 기반 지형변화와 대응방향 연구>에 따르면, 국내 팬덤은 약 50% 정도가 팬덤 활동 중 갈등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팬덤과 팬덤 간의 갈등, 팬덤 내부의 갈등, 팬덤과 기획사 간의 갈등의 순으로 경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이돌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들도 굿즈 판매 사업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제품의 품질보다는 팬덤에만 호소하면서, 팬들이 굿즈를 구매한 이후에 실망하는 경우들도 일반적인 제품을 사는 경우보다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팬들의 지나친 관심이 사생활 침해의 영역까지 이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아이돌 세븐틴 조슈아가 최근 한 유명인과 열애설이 확산되자 소속사가 있는 용산구 일대에 일부 팬들이 트럭과 포르셰들을 동원해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안무와 메이크업을 바꾸라, 개인 스케줄을 막지 말라 등 소속사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넣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위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설문에 따르면 팬덤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질문한 결과 70% 이상의 응답자가 여가 시간을 즐겁게 보내게 되었고, 행복해졌으며 삶에 활력이 생겼다고 응답할 정도로 팬으로서의 활동은 현대인에게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소비자로서의 팬에서 창작자로서의 팬으로 변모함으로써 수동적인 형태가 아닌 능동적인 형태로 시장에 참여하는 것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팬덤 경제는 인공지능으로의 대체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그 전망이 밝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인공지능으로 인해 앞으로 5년 안에 지구상 일자리의 23%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팬덤과 관련된 산업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렵다. 앞으로 팬덤에 더 많은 주목이 필요한 이유이다.

  • 필자 소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전문가. 지난 10년간 구글코리아 유튜브, 카카오엔터테인먼트, CJ ENM를 거치며 현업에서 MZ세대의 디지털 콘텐츠 산업 전반을 온전히 경험하였다. 카이스트 정보경영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저서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영향력, 인플루언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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