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투입형 경제 모델로 산업화를 시작한 우리나라는 효율주도형 단계를 거쳐 이제는 혁신창출형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의 정체성으로 무장한 채 투입 요소를 늘리거나 경영 효율화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이끌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선도자(first mover)로서 창조성에 기반한 혁신을 추동하는 경제발전 모델이 우리나라의 핵심적인 성장 전략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창조성과 혁신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문맥에 의존하는 ‘새로움’과 문제에 의존하는 ‘유용함’이 결합해 새롭고도 유용한(new and useful) 생각이나 과정, 작품을 빚어내는 능력을 창조성(creativity)이라고 한다면, 그 결과물이 현장의 치열한 검증을 거쳐서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진 결과물이 바로 혁신(innovation)이다.
이번 호는 이와 같은 ‘혁신’, 그중에서도 ‘개방형 혁신’이라고 번역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주제로 다룬다. ‘개방형 혁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그것은 여타의 혁신들과 무엇이 다른가?’, 무엇보다도 ‘동시대의 예술은 개방형 혁신과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번 호의 출발점에 자리하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바, 우리 시대 최고의 르네상스맨 중 한 분인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혁신의 어원에서부터 시작해 슘페터의 ‘기술 혁신’, 마이클 영의 ‘사회 혁신’, 체스브로의 ‘개방형 혁신’, 크리스텐슨의 ‘파열형 혁신’ 등을 대별하며 전체적인 맥을 짚어준다. “사실 개방적 혁신은 기술보다 예술에서 더 유용하다.“라는 그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박물관 3.0 시대’라는 주제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중앙대 이보아 교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한 요소인 ‘오픈소스 활용’과 관련한 흥미로운 관점과 사례를 제공해준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오픈 액세스 이니셔티브’와 ‘인공지능 + 해커톤’ 프로젝트는 꼼꼼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대기업 사무국장, 공공기관 본부장, 창작그룹 대표, 미디어 아티스트 등 다양한 정체성과 관점을 지닌 이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하는 좌담회는 어떠한 지점에서 서로 간의 충돌과 화합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면서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현대자동차 그룹 산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인 제로원(ZERO1NE)의 권영진 책임매니저는 베일에 싸여 있는 제로원의 구조와 지향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해주었다. 다방면의 분야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창작자들이 스타트업과 연계해 현대차의 문제 해결 및 새로운 기회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 많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와월당의 이무열 대표는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예술 프로젝트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의 가치를 접목해 한 단계 더 탄탄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과 예술이 서로에게 닫힌 구조를 벗어던졌을 때, 비로소 작동하게 되는 ‘예술가들의 초능력’을 한 번 확인해 보시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를 책임지고 있는 양혜원 본부장은 본인이 처음으로 연구했던 ‘아트코리아랩’의 개관 현장을 방문했다. ‘묘하면서도 뿌듯한’ 느낌과 함께 진한 애정을 담고 있는 참관기의 결론부처럼, ‘아트코리아랩’이 이 땅의 예술인과 예술기업의 ‘우산’과 같은 곳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필자 소개

    정종은 편집장은 학부에서 미학과 종교학을, 석사과정에서 사회미학과 미디어경영학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산업 정책을 전공했다. ㈜메타기획컨설팅의 부소장을 역임했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운영위원, 장애인정책 조정위원, 문화도시 컨설턴트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자체평가위원, 정부미술품 운영위원, 문화영향평가 전문위원, 한국예술경영학회 연구기획위원장, 원주 유네스코 창의도시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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