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바다 풍경

오키나와의 바다는 참 푸르고 맑다. 아열대 기후에 속한 이 섬의 풍경은 얼핏 보면 평화롭고 한가하기 그지없다. 자연의 혜택 속에서 풍요롭고 낙천적인 섬마을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바람결에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는 기지의 섬, 오키나와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오키나와의 산과 바다 곳곳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시가지 중심에서나 산간 마을의 깊은 산골에서도 어김없이 미군부대의 경계선을 가르는 철조망을 쉽게 볼 수 있다. 군부대 앞에 차려진 커다란 스테이크를 파는 레스토랑, 부대에서 사용한 중고차를 판매하는 상점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이것이 섬 전체를 관통하는 오키나와의 또 다른 얼굴이다.


패전의 증거

오키나와는 일본 전후사를 포함해 현대사 맥락 속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곳이다. 1972년 미국으로부터 일본 본토에 오키나와가 반환되었지만 이 지역의 정치적 역사적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원래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무관한 비무장 교역국가인 류큐왕국이 통치하던 곳이다. 오키나와는 ‘우치나구치’라는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했을 만큼 근대국가 일본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가 있었다.

오키나와 미군부대

하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은 일본의 ‘대동아 전선’의 과정에서 무너졌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본토에서 치러진 유일한 지상전으로 인해 민간인들의 막대한 희생이 발생한 곳이다. 당시 일본 정부군보다 2배가 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징집의 형태로 전쟁에 동원되었고 민간인들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은 전쟁기간 내내 자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집단자결’이라는 강압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학살은 아직까지도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패전국인 일본이 미국과의 안보조약과 동맹을 받아내기 위해 오키나와를 저당으로 삼으면서 이곳은 여전히 무장지대 속에 놓여 있다.


평화의 실천, 착한 도깨비 축제

그래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바라는 평화는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들이 바라는 삶의 조건은 과거의 향수나 그리움을 되찾고자 하는 바람에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들을 위한 치열한 생존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본토의 경제력과 안락함으로 인해 은폐된 오키나와의 일상은 뜨거운 황무지의 척박함과도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키나와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시작된 키지무나 페스타(Kijimuna Festa, 오키나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의 풍경이 감동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없었다고 본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총검과 불도저에서 비롯된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다음 세대들을 위한 필연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터. 1994년 지금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어린이축제로 시작된 이 축제의 이념은 아직도 한결같다. &lsquo;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세계를 향하기 위한&rsquo; 어른들의 노력과 마음이 만들어낸 이 자리가 절실해진다. 일 년 중 가장 습하고 더운 이 시기에 9일 동안 세계 각국에서 초청된 50여 편의 작품들과 심포지엄, 워크숍 등이 오키나와 중부의 시민회관과 유치원, 상가 등에서 &lsquo;키지무나 페스타 2009&rsquo;의 이름으로 태풍 속에서도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올해는 초청작품들 중 한국의 공연들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시계 멈춘 어느 날>(극단 사다리), <그건 도깨비 마음이야>(극단 인천), <오늘이>(국립국악원), <달래 이야기>(예술무대 산), <마당을 나온 암탉>(극단 민들레) 등 다섯 편의 국내 작품과 한ㆍ영ㆍ일 합작작품인 <요거트를 찾아서>도 초청되었다.

키지무나 페스타의 주행사장인 오키나와 시민회관, 키지무나 페스타 2009 축제 센터

오키나와는 어쩔 수 없는 본토와의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이 손꼽는 휴양지이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한국(특히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 국한된 사안만은 절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이 부분은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과도 동일한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평택의 미군기지 확산 때문에 발생한 대추리 주민들의 이주문제나 의정부에서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의 죽음 등을 기억에서 상기하면 오키나와에서 비롯된 그 일상들은 우리와 겹쳐진다.

축제의 규모와 질적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이들로부터 다시 재발견하게 되는 것은 키지무나 페스타, 즉 순수한 어린이들에게만 보인다는 착한 도깨비 축제가 바라는 &lsquo;세계의 창&rsquo;은 힘들지만 필연적인 과정의 하나라는 것이다. 교육적 예술적 차원의 아동극은 필요하다. 하지만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공연장에 찾아온 어린이 관객들은 착한 도깨비를 만나기 힘들 것 같다. 키지무나 페스타를 스치듯 경험하면서도 이 풍경이 강렬하게 남는 것은 우리에게도 별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염혜원

필자소개
염혜원은 연극학을 전공했고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월간 [한국연극] 편집팀장으로 근무했으며 최근에는 공연, 미술, 건축 분야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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