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미술시장의 호황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확대된 미술시장을 바라보며 미술계에 입문한 젊은 세대들에게, 최근의 시장 변동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장 확대에 따라 시작된 직업군의 분화가 주춤거리고 호황기 젊은 작가들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지금 가장 먼저 거두어지고 있다. [weeekly@예술경영]은 시장변동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젊은 미술가들의 진단과 모색을 싣는다./편집자 주 연재순서: ③ 국제시장
세계경제의 몰락과 함께 우려했던 중국미술의 거품론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급격히 상승했던 중국미술품을 비롯한 현대미술은 가격 조저에 들어가고 좀더 가격 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작가군, 특히 한국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런던은 뉴욕과 함께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시장으로서뿐 아니라 ';젋은 영국 작가';(Young British Artists, 이하 YBA)로 대표되어왔던 영국현대미술은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의 런던이 현대미술계의 중심에 놓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문화적 기반과 그 문화적 인프라를 뒷받침해주는 정부기관의 미술정책, 공공미술관의 짜임새 있는 전시와 체계화된 컬렉션, 아트페어의 성공, 작가들과 상업갤러리와의 유대관계를 통한 건전한 시장형성 등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정책, 아트페어, 상업갤러리가 쌓아온 인프라


먼저 예술위원회(Art Council)의 경우를 보자. 예술위원회는 복권기금을 이용하여 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공공 뮤지엄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일반인의 미술품 구입 장려를 위해 미술품을 구입할 경우 이자 없이 대출할 수 있는 ‘오운아트’(Own Art, 미술품 소장의 의미) 시행, 미술관과 갤러리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컬렉션을 도와주는 독립적 비영리 기관인 디 아트펀드(The Art Fund) 운영 등을 볼 수 있다.


2008 프리츠아트페어 행사장


미술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아트페어에서는 프리츠아트페어(Frieze Art Fair)가 주목된다. 프리츠아트페어는 2003년 처음 시작하여 올해 10월 7회를 맞는다. 겨우 7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프리츠아트페어는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와 견줄 만한 세계적인 메이저 아트페어로 이미 성장하였다. 프리츠아트페어가 짧은 시간 내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메이저 아트페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명 작가의 마스터 피스보다는 현대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실험적이고도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작품들을 보여주는 다양한 프로젝트, 기획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 프리츠아트페어 참여작가 Jarbas Lopes의 작품프리츠아트페어 오프닝에는 유명 연예인을 비롯한 각국의 컬렉터들의 방문한다. 세계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참석은 이제 당연한 일이다. 특히 오프닝이 있었던 다음날 신문지면에는 영국 제일의 공공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의 디렉터와 큐레이팅 팀이 방문하여 어느 갤러리에서 어떤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였다는 기사가 게재된다. 이들의 구입 작품은 제3국가의 작가들이거나 실험적이고 아이디어가 뛰어난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상업 갤러리들이 다루기 힘든 작품들을 구입해줌으로써 작가들로 하여금 창의적인 작품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이스트엔드, YBA의 탄생지

시장 형성의 기본이 되는 런던의 상업 갤러리들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몇몇 지역으로 나뉘어서 집중되어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지역은 웨스트엔드와 이스트엔드이다. 웨스트엔드는 세계적으로 수위에 꼽히는 유명 갤러리들과 크리스티, 소더비와 같은 유명 옥션하우스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갤러리들에는 수억대의 마스터 피스들이 갤러리 월을 장식하고 있다. 반면 이스트엔드는 젊은 작가들을 프로모트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갤러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작가들의 작업실과 젊은 감각의 갤러리들이 차차 자리를 잡으면서 현재 런던에서 첨단 유행을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스트엔드는 영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YBA를 탄생시킨 지역이기도 하다. 데미안 허스트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딜러였던 조슈아 컴스튼(Joshua Compston),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그리고 큐레이터 칼 프리드만(Carl Freedman) 등의 활동 무대였다. 현재 와이비에이 작가군의 친구이자 딜러인 제이 조플링(Jay Jopling)이 운영하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는 혹스톤 스퀘어(Hoxton Square)에, 큐레이터 칼 프리드만이 운영하는 칼 프리드만 갤러리는 살롯 로드(Charlotte Road)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의 갤러리들은 런던 거리의 특성상 네온사인이나 간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처음 이 때문에 런던 갤러리 투어를 하는 이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간판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문이 닫혀 있어 벨을 누른 후 안에서 문을 열어주어야만 방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지라 일반인의 방문이 너무 어려운 게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갤러리 지도가 너무나도 상세하게 잘 되어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 입구
특히 이스트 런던에 소재한 공공미술관중의 하나인 화이트채플(White Chapel) 갤러리는 이스트 런던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지도를 매월 업데이트하여 발행하고 있다. 이 지도는 ‘첫 번째 목요일’(First Thursdays)이라는 이름으로 매거진 [타임아웃]([Time-out])에 부착되어 판매되는데, [타임아웃]은 런던의 패션, 음악, 미술, 공연 등 다양한 문화뿐 아니라 레스토랑, 바, 클럽 등 런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잡지이다. 매월 첫 주 목요일, 이날은 이스트 런던 갤러리들이 밤9시까지 오픈하여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 오프닝들이 함께 이루어져 이 지역 갤러리 홍보 역할을 한다.


갤러리가 위치한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나타내지만 갤러리들은 작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프로모트를 통해 작가들의 성장을 이끌어 내고 있다.




가격 조정기,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관심


2007년을 정점으로 하여 국내 미술시장뿐 아니라 런던을 포함한 세계미술시장은 특히 컨템포러리 아트의 호황기였다. 세계적으로 이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신흥개발 국가들, 즉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성장으로 신흥 부자들이 생겨나면서 이들이 현대미술계 입문, 새로운 미술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경제적 성장은 중국미술시장의 급격한 확대를 불러왔다. 특히 중국 컨템포러리 아트의 급격한 성장은 세계미술시장의 이슈가 되면서 큰 관심을 모았는데, 이는 중국의 경제적 발전과 함께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 평론가들의 아카데믹한 논평과 국제적 수준의 기획전이 같이 이루어짐으로써 그 기반을 다지는데 도움을 주었다. 세계적인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런던, 뉴욕을 비롯하여 홍콩에 중국현대미술판매를 단독으로 실시할 만큼 중국현대미술은 미술시장의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미술의 고속성장은 한국 미술시장의 확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으며 세계미술계에서 한국미술을 포함한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중국현대미술의 급격한 성장은 소수의 스타 작가들을 배출하게 되고 그런 스타작가들의 작품가격이 순식간에 몇 배로 상승하면서 중국현대미술작품가의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8년, 급기야는 세계경제의 몰락과 함께 우려했던 중국미술의 거품론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급격히 상승했던 중국미술품을 비롯한 현대미술은 가격 조정에 들어가고 좀더 가격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작가군, 특히 한국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Korean Eye: Moon Generation> 전시 모습(사치갤러리, 런던)
2009년 4월 런던에서는 아트마켓 리서치 기관인 미술전략(Art Tactic)에서 주관하는 한국 미술에 대한 세미나가 아시아 하우스에서 열렸으며, 7월에는 서울에서도 프리뷰를 가졌던, 《코리안 아이》(Korean Eye, 이 전시 창설자인 데이비드 시클리트라(David Ciclitira)는 템즈 강변에 위치한 런던아이(런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구)를 보고 제목을 코리안 아이라고 짓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가 최근 첼시에 오픈한 뮤지엄인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 3층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해외에서의 지속적인 전시와 세미나 등을 통한 한국미술의 소개는 불경기의 틈을 타고 더욱 경쟁력 있는 작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ldquo;수많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rdquo;


2009년 4월 영국 미술관의 컬렉션 자문을 맡고 있는 비영리 독립 기관인 미술기금은 흥미로운 조사발표를 하였다. 조사에 따르면 영국 300여 개의 뮤지엄은 &ldquo;불황에 감사를 표한다&rdquo;(thanks to the recession)는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할인율로 좋은 작품을 구입할 수 있고 실제 일 년 예산의 절반의 구입을 마쳤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뮤지엄은 같은 예산으로 좋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고, 불황기 어려움을 겪는 갤러리와 작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경기침체로 세계 경제가 놀란 것은 사실이다. 미술시장 역시 급속도로 경직되면서 많은 갤러리들이 문을 닫고 옥션하우스의 판매 결과는 형편없는 낙찰률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도 불경기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미술사조가 생겨나고 더 창조적인 예술품이 나왔듯이 지금이야 말로 작가들이 작품에만 몰두하여 창조적인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세계는 지금 불황기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국의 한 딜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ldquo;불황은 예술에 있어서 좋은 것이다. 현재의 불황에 대항하여 수많은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지난 4~5년 동안은 현상유지 상태였다. 지금이야 말로 예술계가 움직이고 흥미진진한 일들이 펼쳐질 때이다&rdquo;. 지금이 바로 좀 더 창의적이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한국 미술의 역량을 보여줄 때라는 것이다.







임정애

필자소개
임정애는 런던의 소더비 인스티튜트(Sotheby&rsquo;s Institute of Art)에서 아트 비즈니스 석사를 마치고 현재 런던에서 아이뮤프로젝트(I-MYU Projects)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뮤프로젝트는 런던의 유일한 아시아계 갤러리로서 특히 한국작가를 세계시장에 소개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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