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유일한 인문예술서점인 &lsquo;이음아트&rsquo;와 한상준 대표님과의 인연은 2005년 늦가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언제나처럼 초보 연극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문학과 연극에 대한 작은 고민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른 선배님들의 공연도 찾아보고, 내 작품도 준비하면서, 늦가을 한자락을 지내고 있던 터에 발견한 이음아트는 내 상상력의 자극제였다. 특히, 대학시절을 회상하면서 공연을 준비하던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구상 중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국문학을 전공하던 학부시절, 지방출신의 가난한 자취생이 돈 걱정 없이 사람을 만나고 책을 접할 수 있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내 영혼의 쉼터였던 인문사회과학서점 &lsquo;오늘의 책&rsquo;은 나의 대학시절 절반 이상을 보낸 삶의 보금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나는 &lsquo;문학&rsquo;과 &lsquo;연극&rsquo;이라는 내 인생의 작은 꿈을 소리 없이 키워나갔다. 그러나 그 무렵 신촌의 대학가는 &lsquo;문화지구&rsquo;라는 이상한 반문화적 행정지구로 선포되면서, 대학가의 주인인 학생들의 문화에 관한 의지와는 무관하게 값비싼 포장이 된 거대한 유흥지구처럼 바뀌어갔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키워갔던 학생들이 즐겨 찾던 소통처는 하나 둘씩 문을 닫고, &lsquo;먹고 마시고 놀자&rsquo; 판에 경쟁적으로 편승하는 상업주의적인 변화의 흐름은 &lsquo;오늘의 책&rsquo; 같은 소박한 서점이 더 이상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삐삐도 없던 시절, 서점의 게시판에 붙은 메모를 찾아 약속장소를 찾아다녔던 바로 그 공간이 지금은 대기업의 휴대 전화기 판매점이 되어 있다. 대학시절 소중한 꿈의 아지트가 자본의 힘과 행정가들의 몰이해 속에서 무참히 문을 닫아버렸고, 신촌에서의 청춘기도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그런 나에게 대학로에서 &lsquo;이음아트&rsquo;라는 새로운 아지트의 발견은 그만큼 반갑고도 애틋했던 것이다.

<이음아트> 외관그런 반가움과 애틋함으로 시작된 &lsquo;이음아트&rsquo;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후,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으신 한상준 대표님(특히, 한 대표님의 인문학과 공연예술, 미술과 사진에 대한 특별하고도 인간적인 애정은 존경의 대상이다.)과의 인연으로 발전하였고, 우리 극단의 모든 배우들과 함께 &lsquo;이음아트&rsquo;와 가족 같은 특별한 애정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07년 한 해 동안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펼쳐진 책 읽는 시민들을 위한 이음아트 무료공연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문화공간으로서 서점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만들었고, 특히 대학로에 반드시 있어야할 공간으로서 &lsquo;이음아트&rsquo;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lsquo;이음아트&rsquo;는 대학로 중심의 공연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시인과 소설가, 화가와 사진작가, 인문학자와 문화비평가,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일반 시민들과 젊은 학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단지 원하는 책을 찾아볼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연극공연과 희곡낭독공연, 연주회와 출판기념회, 작가와 독자와의 대화, 테마가 있는 사진전, 회화를 비롯한 조각, 공예 등 다양한 미술작품 전시회가 이루어지고 있다. &lsquo;이음(異音)&rsquo;이라는 이름처럼 다른 소리들이 모여 다양한 예술세계를 경험해 보는 작업들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서점의 일부공간이 정식 갤러리 공간으로 변모해서 상시적으로 전시회가 이루어지고 있고, 자그만 카페공간을 만들어 커피 한 잔과 함께 편안한 대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렇듯 &lsquo;이음아트&rsquo;는 지금 대학로를 중심으로 문화를 만들어가고 체험해가는 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움직임에 어울리게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한 이음아트 내 갤러리와 카페

하지만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듯이 우리 시대의 예술가와 인문주의자들은 항상 자본과 권위의 힘에 맞서야 하고, 소시민적인 우울함과 생활의 고달픔을 이겨내야 한다. &lsquo;이음아트&rsquo;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제 지식을 소비하는 대중들에게 책이란 직접 서점에 들러서 만져보고 구입하는 즐거움보다는 사이버공간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능통한 장사치들이 만연해있는 대학로라는 유흥지구에서 값나가는 자릿세를 감당해가며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기에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은 누구든 예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lsquo;이음아트&rsquo; 또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학로를 사랑하고 대학로를 텃밭으로 자신의 예술행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은 &lsquo;이음아트&rsquo;의 소중함에 대해서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lsquo;이음아트&rsquo;는 대학로에서 얼마 안 되는, &lsquo;문화와 예술을 사유할 수 있는&rsquo;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그 공간 또한 공적인 의무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이 모여지고 있다. 사진을 사랑하고, 문학과 예술을, 그리고 특히, 책을 지극히 사랑하는 한 인문주의자의 오래된 꿈에서 시작된 &lsquo;이음아트&rsquo;는 대학로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들을 사유하게 만들었으며, 다양한 문화적인 활동 속에서 &lsquo;이음아트&rsquo;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대학로에 나와 꼭 한번 발길을 닿고 싶은, 이 소박하고 친절한 공간이 한 두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기에 대학로에 주둔하고 있는 예술경영인들 또한 &lsquo;이음아트&rsquo;의 경영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서점 한 켠의 중고책 코너
예술의 바탕이 인문학이라는 당연한 진리는 인문학 가운데서 가장 기본인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서점에 꽂힌 무수한 철학서들의 대부분은 서양의 철학자들의 저작들이고, 우리에게는 그들에 필적할 만한 동시대의 철학자들이 많지 않다. 대학에서도 철학과는 문을 닫는 형국이다. 무엇이든 먹고 살기와 관련 없는 것들은 폐기처분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끔찍한 자본주의는 도무지 철학할 시간과 공간조차 아까운 모양이다. 그러나 철학과 교수님들이 하시는 얘기들은 조금 다르다. 대학에서 철학자를 키워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 철학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유할 공간,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이미 고시생들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점령당했고, 캠퍼스는 빈터만 있으면 공장처럼 건물을 지어대는 바람에 걸으면서 사유할 수 있는 한가한 땅은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색이 문화와 공연예술의 메카라고 불리는 대학로, 혹은 한때는 그랬었던 대학로, 그러나 지금은 어수선한 관광지구로 변해버린 대학로에서 &lsquo;문학과 연극과 예술을 사유할 수 있는 공간&rsquo;을 지켜내는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예술경영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뛰어난 경영자 한 사람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그 공간을 문화나눔의 정신에 입각한 공공의 이름으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문화 예술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예술경영인지도 모른다.





김재엽

필자소개
김재엽은 1973년 대구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한양대 대학원 연극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극단 드림플레이 대표로 극작과 연출을 맡고 있으며, 혜화동1번지 4기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장석조네 사람들> <조선형사 홍윤식> <유령을 기다리며>등이 있다. 2008년부터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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