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미술시장의 호황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확대된 미술시장을 바라보며 미술계에 입문한 젊은 세대들에게, 최근의 시장 변동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장 확대에 따라 시작된 직업군의 분화가 주춤거리고 호황기 젊은 작가들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지금 가장 먼저 거두어지고 있다. [weeekly@예술경영]은 시장변동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젊은 미술가들의 진단과 모색을 싣는다./편집자 주 연재순서: ④ 공공미술
공공미술이 하나의 제도적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분배' 불균형의 문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는 공공미술의 진정한 힘을 알고 있고 그 장을 통해 모종의 사회적 기획을 실천하려는 미술가들의 열망을 좌절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공미술이 미술판의 화두가 된 것도 몇 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 화두는 여전히 화두로, 모색의 과정에 놓여있다. 공공미술은 예술가들의 예술에 대한 의식을 변하게 하고 있으며 고독한 작업실 바깥으로 나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미술이 개인적 산물, 즉 사유와 이익의 원리에서 사회적 상호소통의 영토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도시, 재개발, 유휴 공간, 커뮤니티 등등이 공공미술의 주요한 의제로 간주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물론 작금의 공공미술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특정한 문제설정에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변주 혹은 진화하고 있고 또 현실적으로 다양한 시도들로 이행되고 있기 때문에 공공미술을 특정한 규정을 통해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공공미술은 일종의 ‘제도적(혹은 정책적) 형식’으로 주어지는 순간의 양식이라거나, ‘스펙터클’을 위한 시각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라 치부하는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국가 및 지자체의 공공미술 정책


‘아트인시티’(Art in city)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문화관광부, 복권기금의 후원 아래 2006년 10개 지역, 2007년 16개 지역에서 공모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전국 각지의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이 대거 참가했고 필자 또한 두 번의 공모에 선정되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트인시티’ 사업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공공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역민과의 소통 부재와 경험 부족을 노출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또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장 자체의 전환에 대한 열정과 희망의 메시지가 펼쳐진 것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아트인시티’ 사업 이후 액티비스트를 자처하는 예술가(예술가 모임)가 형성되었다. 이들의 활동들은 적어도 그동안 한국미술에서 거의 질문되지 않았던 ‘지역’과 ‘미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한국미술의 쟁점으로 만들었으며, 담론 안에서 추상적으로 논의되었던 미술의 공공성 문제를 현실적인 장소와 공간으로 전환하여 진정한 상호소통의 예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1. 대구광역시 성서공단 2. 부천시 원종동 3. 대전광역시 홈리스센터 4. 광명시 철산동 2006 아트인시티 프로젝트


현재 진행 중인 공공미술 정책들은 다음과 같다.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마을미술 프로젝트’, 국토해양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각 지자체의 소규모 지원 사업이 진행 중이며 그곳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들이 제도적 안정화를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역에 대한 애정과 실천들이 적극적으로 개진될 수 있는 안정적인 정책연구가 무엇보다 절실할 수 있다. 가령, 공공미술에 대한 지속가능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업이 1년 단위의 공모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공모 준비와 결산에 절반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나면 실제로 이 기간 동안 공공미술의 괄목할 성과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지원과 정책들이 마련되어야만, 지역 단위에서 장기적 플랜을 통해 공공미술의 역할이 더욱 굳건히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예술가들의 고용창출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되고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 확보와 가치를 증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공모 사업을 위한 공공미술, 즉 기금수혜를 위한 사업으로 그 본질이 변질되는 위험 역시 내장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이는 ‘사업 기간’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일회성’ 이벤트처럼 여겨져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단위의 사업들은 단기적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더욱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보수와 새로운 담론의 두께를 담을 수 있는 제도적 창치가 장기적 방식으로 구현될 필요가 있다. 그리할 때 새로운 공공미술의 한국적 색깔들이 녹아날 것이다. 또한 담론의 장과 타 사례 연구 및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공미술의 현 단계를 성찰할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분명한 것은 아직도 공공미술의 영역에서 표류하고 있는 소위 ‘1% 미술(미술장식품)’이 시민의 것이 아닌 건물주의 소유물처럼 여겨지는 우리 현실에서 공공미술의 도약은 새로운 미술시장으로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미술시장으로서의 공공미술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작업 모습

연간 수십억의 지원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미술계에서는 이미 공공미술이 새로운 미술시장의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년 수많은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각종 공모와 제안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여 현장으로 나가고 있다. 숱한 밤을 붓과 씨름하기보단 기획서 만들기에 몰두하는 기이한 풍경들이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공공미술 시장의 규모가 이미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공공미술이 하나의 제도적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분배’ 불균형의 문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는 공공미술의 진정한 힘을 알고 있고 그 장을 통해 모종의 사회적 기획을 실천하려는 미술가들의 열망을 좌절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심지어 작가들이 사업자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절차 그리고 단체의 자격을 갖추어야만 하는 공모가 많아지면서 예술가들이 정책적으로 구조화된 시장에 따라가고 있다. 갑작스런 상황에 작가들은 미처 대처하지 못해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일들까지 일어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허드레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하는 이들에게, 이 사업이 또 다른 아르바이트로 전락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개별 미술가의 기획들이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결합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건강한 공공미술 ‘시장’을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정책을 위한 지원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될 것임은 당연하다. 다양한 선진사례와 철저한 준비로 실현되어야 한다.


공공미술이 어느 개인의 집 벽에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사회의 공공재라면 이 재화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시장을 보다 철저히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화랑’을 통해 형성되었던 미술시장이 작품을 유통/소비하는 구조와 달리 공공미술은 각종 공모 기획서를 통해, 또는 기획자를 통해 구체적 장소나 공간에 실현되는 구조라는 점을 단순하게 볼 수 없다. 즉, 국내 각종 공모 예산안 지침에 따르면 예술적 가치의 작품 해석보단 단순 근로자 기준의 계량적 가치로 해석하는 사례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계량적 수치화는 기왕의 미술시장의 논리를 반복하고 변주한 것에 불과하다. 이 지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아니, 공공미술의 노동투쟁을 기획하여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역 커뮤니티와 공공미술


미국의 행동주의 미술가 수잔 레이시(Suzanne Lacy)는 1995년 「새로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라는 저서를 통해 공공미술을 “삶의 쟁점들을 갖고 관객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참여의 미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각기 공공미술을 바라보고 있는 이해의 폭이 다양할 것이다. 공공미술이 무엇이냐고 필자에게 물어오면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라고 짤막하게 답하곤 한다. 예술적 과정이 곧 사회적 소통이고 익명의 타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진정 예술이 꿈꾸는 세상 아닐까?

부산지역 공공미술 '안창고 프로젝트'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 자체는 상당히 진취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제안과 젊은 생각들이 국내에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사례들을 볼 수 있으며 기금 수혜 여부를 떠나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인천의 ‘우각로 프로젝트’, 부산의 ‘안창고 프로젝트’ 등은 공공기금이 중단되었음에도 기 참여 작가들의 협업으로 매년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지속성은 공공미술의 중요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은 담론들을 끝없이 생산하고, 현장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 공공미술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 지역 주민들이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공공미술의 중요한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미술의 기능은 스펙터클한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다. 미술 언어는 지극히 개인적 산물이지만, 공공이라는 의미가 포개지면서 협업과 담론을 통해 커뮤니티를 향하게 된다.



공공미술의 진전을 기다리며


이미 지역 활동가들은 지역문화 창달이라는 거창함이 아니라 스스로 지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행동들을 실행해오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전 지구적 글로벌리즘에의 추수가 아니라 지역의 깊이와 소중함을 힘든 환경에서도 지켜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안창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작가와 예비작가(대학생)들의 목소리에서 이를 감각적으로 이해한 바 있다. 그들의 표현 방법은 서툴었지만 ‘동네’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신명나게 부딪히며 즐겁게 작업했다. 그것은 나아가 또 다른 동네와 장소를 사랑할 방법들을 익혀나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더 많은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그 놀이터에서 예술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하나씩 얻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한국 공공미술의 진전을 기다려야 한다. 명품 문화도시 만들기에 온 나라가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을 보라. 예술이 사회와 소통하고 그래서 공공미술이 사회적 기능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러니 그 많은 요소들과 소통해야 하는 공공미술을 쉬이 생각할 것이 아니다. 공공미술이 공공의 적이 될까 두렵다.






서상호

필자소개
서상호는 7번의 개인전과《오늘의작가상 수상 기념전》과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등 다수의 전시회를 가졌다. 프로젝트 기획으로 ‘안창마을-안.창.고 프로젝트’ ‘수정동 희망 프로젝트’의 예술감독과 ‘AFI 2006-과정으로써 공공’ ‘2007 기억의 더께를 넘어서’ 등을 진행했다. 현재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비영리 전시공간과 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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