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니? 그때 우리는 이 건물 지하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지. 이곳의 이름은 서교예술실험센터야. 멋지지 않니? ‘서교동’에 ‘예술’과 관련된, 그것도 마음껏 ‘실험’해 볼 수 있는, ‘센터’가 생긴 거야. 그런데 그거 알아? 어떤 사람이 이름은 정말 예쁜데, 생긴 모습이나 성격이 그 이름과 어울리지 않을 때 상대방은 적지 않게 당황한다는 거? 여기에서 살기 시작한 후 3개월 남짓 동안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았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해.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야. 어떤 독립예술웹진에 이곳이 문을 열 당시의 이야기를 조금 한 적이 있었어. 솔직히 ‘깐데 또 까는 것만 같아서’ 약간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얘길 들어봐.)

…잊히지가 않아. 너무나 매끌매끌하게 잘 닦아놓은 것만 같은 (시멘트인지 석고인지) 베이지색 벽. 여러 가지 조명효과나 시각적인 집중도를 위해서는 빛을 반사하는 베이지색 같은 밝은 톤보다 검은색이 낫지 않을까? 아니면 차라리 아예 흰색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플로어처럼 깔린 마룻바닥의 색깔도 검게 칠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혹시 바닥에 광택제가 발라져 있는 건가? 칠하려면 다시 벗겨야겠군.) 야구장의 야간경기를 연상시키듯 무수하게 달려있는 형광등 … 이렇게 무수한 형광등이 달려있는 공간 자체를 본 적이 없어. 저 자리에 전시용이든 공연용이든 제대로 된 조명기들을 달았으면 한다구! 그리고 컴퓨터용 스피커보다 조금, 아주 조금 우수한 퀄리티를 자랑할 것만 같은, 그러면서도 딴에는 모든 공간을 커버하겠다고 설치되어 있던 앰프와 스피커들. 난 음향이나 음악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음향콘솔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물론, 콘솔을 따로 가지고 올 수야 있겠지. 근데, 자체적으로 콘솔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오, 여기 전동식 스크린도 설치되어 있어! 그런데 프로젝터는? 한참을 천장을 살펴봤지. 나중에 들은 얘긴데, 일이 있을 때마다 2층에 보관되어 있는 프로젝터를 가져와서 갖다놓기를 반복해야 한다더군. 솔직히 천장의 높이는 답이 안 나와. 3미터는커녕 2.3미터도 안 돼. 흔히 우리가 ‘무대’라는 것을 세울 때, 그러니까 세트벽 같은 것을 세울 때에 쓰는 스탠다드 플랫(standard flat)의 높이를 2.44미터로 잡는다고. 그 높이가 사람이 들어가서 그 무대 앞에 섰을 때에 시각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 그래서 거의 모든 공연장들은 (특히 연극을 위한 곳은) 가로 1.22l미터, 세로 2.44미터의 플랫을 수용하게끔 지어져 있어! 어, 그런데 천정을 가로지르고 있는 저 무수한 관들은 뭐지? 공연하는 내내 물 흐르는 소리가 나서 관객들은 마치 계곡에 피서 온 듯한 느낌으로 비극을 관극해야만 했어.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보고 나간 것은 일종의 희비극이 아니었을까’하는 자포자기의 심정까지 들었지. 아, 얘기하고 나니까 왠지 울고 싶어져.

지하공간, 옥상


계속 나오는 말이지만 여기서 ‘실험’을 하려면 공간의 리모델링이 반드시 필요해. 게다가 그 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감독도 있어야 한다고. 만약 그런 인원을 배치하기가 힘들다면, 아예 예술가들에게 맡겨보던가. 애매한 조건에서 애매한 통제를 하면서 결국 애매한 공연을 만들게 하는 건 좀 아니다 싶어. 아, 그리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들은 이제 좀 짜증이 나. 애초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설계를 했다면 이렇게 다시 예산이 필요할 일도 없었을 거야. 도대체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게다가 여기서 자유로운 실험을 하길 원하면서 공간에 대한 투자는 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약간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문제 있는 공간이 지하만은 아니라는 건 굳이 얘기 안 해도 알지? 몇 주 전에 페스티벌 기념행사가 이 곳 옥상에서 진행되다가 이 지역 주민에게 거의 인간취급을 못 받다시피 하면서 시끄럽다고 욕을 얻어먹는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어. 속으로 매우 울컥했다구. 서교동에 예술실험센터를 지어놨는데, 그 센터에서 하는 것들은 서교동 주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뭔가 아이러니하지 않아? 물론 모든 주민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것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줬으면 좋겠어.

센터 내 디렉팅 스튜디오 작업실
다행히 오픈할 때에 비해, 이곳을 운영하는 분들과 우리가 정기적인 ‘입주자 반상회’를 통해 나름 대화하는 횟수가 잦아졌어. (하긴 거의 모든 문제는 사람보다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문득 드는 생각이 그 분들과 우리가 대화를 하는 이런 상황자체가 ‘실험’이 아닌가 싶어. 일종의 관(關)과 예술가의 대화라고나 할까. 흠,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잖아? 그런데 서로의 언어가 너무 다르긴 해. (그렇다고 단순히 친해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거 같고, 고민이 많이 되는 지점이야.) 중요한 건 이분들도 ‘힘이 없다’는 사실이야. 결국 힘이 필요하다는 결론밖에는 없다는 건가?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 홍대 앞은 정책입안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다른 거리들과는 그 형성배경에서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기 바란다고 말이야. 오해를 할까봐 얘기하는 건데, 나는 누군가에게 이 모든 것들의 책임을 지라고 할 생각은 없어. 단지 둘 중 하나는 선택했으면 좋겠어. 여기서 뭐든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놔두시던지(방목형 관리라고나 할까?) 아니면 공간개선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던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나도 알아.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거.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지켜보고 있다는 거. 솔직히 가끔 신경 쓰이기도 해. 어쨌든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지.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또 보자구.




유용석

필자소개
유용석은 연극연출가로 예술창작집단 디렉팅스튜디오 대표이자 한양대학교 강사이다. 대학로의 극단에서 7년가량 활동하다가 홍대 앞으로 거점을 옮겨 활동하고 있다. 연극공연만이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며, 요즘 들어 몇몇 사람들에게 ‘홍대빠박이’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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