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환경의 변화에 따라 공연예술 시장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통구조만을 보더라도 불과 십 수 년 간 극장 이외에 축제, 국제적 견본시 등 새로운 역할이 대두되고 그 비중이 변화하고 있다. 또한 제작자본의 다변화, 공동제작 등 제작환경의 변화와 시장변화가 맞물려 있기도 하다. [weekly@예술경영]은 제작, 유통을 중심으로 공연예술시장의 움직임을 살핀다. 연재순서: ①유통
우리 예술시장은 당분간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다. 경쟁은 영리부문뿐만 아니라 비영리부문에서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경쟁은 콘텐츠와 운영에 대해 고민하게 할 것이다. 산업적 또는 상업적 성격이 강한 공연부문은 더욱 대형화하고 국제화할 것이다. 한편 특히 비영리부문을 중심으로 협업과 네트워킹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기 떄문이다.




순환 고리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공연시장은 창작(생산)-매개(유통)-향유(소비)로 이어지는 순환운동을 하는 유기체다. 창작단계는 예술가들이 주도한다. 매개 또는 유통단계는 공연장 또는 매개자가 주도한다. 관객은 향유 또는 소비단계에 집중된다. 그림은 이런 과정이 서로 연관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된다는 점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예술지원정책의 이슈로 창작단계에 지원할 것인지 매개 또는 향유단계에 집중할 것인지 하는 고민거리가 있다. 이 고민은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 어떤 부분을 강화하는 것이 (또는 지원하는 것이) 전체 순환을 활성화하느냐의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창작과 생산은 매개와 유통으로, 매개와 유통은 향유와 소비로, 향유와 소비는 다시 창작과 생산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나타낸 이미지


그동안 우리의 관심사는 창작에서 향유로, 이제는 유통으로 옮겨가는 느낌이다. 향유에 대한 관심은 예술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공감대에서 출발한다.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복지나 교육 등으로부터 소외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향유에 대한 관심은 향유를 넘어 누구나 예술에 직접 참여하자는 데까지 나아간다. 예술을 특별한 계급이나 특수한 기능을 가진 예술 엘리트에 한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매개는 향유에 대한 관심과 함께 주목받는다. 매개의 주요한 고리가 예술작품과 관객이기 때문이다. 이 웹진의 타이틀이기도 한 ‘예술경영’은 이 매개를 본령으로 간주한다. 예술경영이란 학문이 우리나라에 급속도로 확대된 것은 1990년 후반 이후부터다. 이 시기는 시장의 확대와 향유에 대한 관심, 공공부문의 비중 확대 등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예술경영은, 내가 좋아하는 한 정의처럼, ‘관객과 예술작품이 미학적 계약을 체결하도록 돕는’(존 픽이라는 영국의 예술경영학자의 말이다) 일이다. 창작과 향유가 균형을 꾀하는 지점에서 매개는 그 역할이 돋보인다.




변화


매개 또는 유통이 핫이슈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역동적인 우리 사회의 변화를 파악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 공연시장의 변화를 몇 가지 현상으로 파악해본다.


첫째, 시장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우리나라 공연시장은 4~5년마다 2배가량 확대되고 있다. 시장의 확대는 여러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외부적 환경 변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혹은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는 예술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양과 질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공연시장 내부에서는 뮤지컬 등 상업적 장르가 대두된 점과 공공부문이 지원규모를 크게 늘린 점 등이 꼽힌다. 언뜻 보면 서로 아무 관련이 없거나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 시장 확대는 아래의 다른 변화들과 함께 가거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둘째, 양극화가 고착화되었다. 소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공연시장이 확대되는 초기에 대두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정착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 공연시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거론되던 이 현상이 요즘에는 논란조차 시들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크고 화려한 공연에 관객, 자본, 인력, 예술가, 관심 등 모든 것이 몰리는 현상인 양극화는 이제 우리 공연시장의 한 단면이다.


창작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파파프로덕션 제작) 공연 제작 및 전국문예회관 네트워크를 통한 유통을 지원하는 '창작팩토리사업'의 2008년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셋째, &lsquo;공공부문&rsquo;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앞에서 공연시장 확대의 원인으로도 설명했지만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확대는 그 속도나 규모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다. 이제 공공부문이 우리 공연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현상은 1970년대 초반 예술에 공공지원을 시작한 이후 특히 살림이 좀 넉넉해지고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1990년대 이후에 두드러진다. 예술과 공공재원은 분리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넷째,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전문화와 세분화 그리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시장이 커지고 참여주체가 확대되면서 시장 내부에서 역할과 기능에서 세분화가 이루어진다. 공연제작은 물론 홍보, 마케팅, 재원조성 등에서도 전문성이 요구된다. 개별 공연장이나 예술단체는 차별적 포지셔닝을 지향한다. 공연시장의 주체들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공연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소위 문화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더라도 우리 예술시장은 당분간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경쟁은 영리부문뿐만 아니라 비영리부문에서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경쟁은 콘텐츠와 운영에 대해 고민하게 할 것이다. 공공부문이 공연시장을 선도하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갖추고 있는 공공부문의 하드웨어 네트워크가 강력하고 하드웨어의 특성상 빠른 시간에 뒤집기 힘든 추세이기 때문이다. 산업적 또는 상업적 성격이 강한 공연부문은 더욱 대형화하고 국제화할 것이다. 한편 특히 비영리부문을 중심으로 협업과 네트워킹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즈


2007년 가을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공연시장의 유통을 주제로 한 포럼이 열렸었다. 공연예술부문의 유통에 관여하고 있는 주체들이 대부분 공동주최자로 이름을 올린 이 포럼은 보기 드문 관심을 끌었다. 내용이 그다지 전문적이지 않았고 잘 조직되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사회자로 이 포럼을 리드한 사람으로서 좀 민망하다) 적어도 시기적으로는 매우 시의 적절했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유통에 관심이 많을까? 이에 대한 필자의 진단은 다음과 같다.

2007 서울아트마켓 사전행사로 열린 공연예술 유통 활성화 포럼
첫 번째는 유통의 실질적 필요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연시장에서 유통의 주요한 주체이자 객체인 공연장과 축제 등에서 유통에 대한 니즈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연장은 자체적으로 공연제작 기능이 없는 프리젠팅 씨어터다. 공연장 내부에 전속단체 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역량을 공연장 바깥에 의존해야 한다. 축제 또한 생산기능보다는 소비기능이 강한 단계다. 공연제작 능력을 갖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우리 공연시장의 구성이나 추세로 볼 때 시간이 걸려도 달성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수는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극장이다. 2008년 말 현재 전국에 165개의 문예회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의 비중은 공연장 수로는 전체의 30%에 조금 못 미치고 객석규모로 따지면 35% 정도다. 그러나 특히 지역에서 문예회관은 거의 절대적이다. 이러한 큰 그릇 묶음이 유통의 주체로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예회관이 유통에서 중요한 주체 또는 파트너로 등장한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두 번째는 공연시장의 물리적, 지역적 한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시장도 이제 우리 공연단체들에는 멀고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서울이나 한 지역에서 성공한 공연이 다른 지역을 순회하면서 공연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 공연 견본시나 그 역할을 하는 국제축제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공연단체가 부쩍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4년 전부터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이라는 이름으로 공연 견본시를 개최하고 있다.


2008 서울아트마켓


세 번째는 공연단체의 입장에서 공연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을 조달하는 방안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승하지만 공공지원 등 지금까지의 수입으로는 상승폭을 감당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작업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진다. 테크놀로지의 도입 등 제작에 필요한 비용은 높아지고 필요에 따라 큰 규모의 야심찬 공연을 준비하자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예산서를 짜야한다. 이러한 비용 조달의 희망이 유통으로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공동제작 방식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보편화된 공동제작은 비용은 물론 리스크도 분담하면서 공연의 질은 담보하는 효과가 있다. 최근 국내외 파트너들과 함께 공동제작에 나서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의 대형 문예회관을 비롯한 전국의 선도적 문예회관들도 전문적인 콘텐츠를 직접 확보하기 위해 공동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상업적인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자와 수익의 피 마르는 전망 속에서 공연상품을 제작하면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막대한 비용을 영세한 제작자가 대기도 벅차다. 얼마 전 큰 제작비가 든 뮤지컬이 큰 손해를 보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제작사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반대로 큰 이익을 봤더라도 제작사가 돈방석에 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통 또는 매개를 예술작업의 일부로 간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케팅이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의 진통과 같은 어색함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작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많은 경우 필수불가결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어떤 목표시장의 고객을 설정하는지와 같은 전략적 선택이 제작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공연에서 연출을 20세기적 직분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공연 스태프로 인정받는 연출이라는 기능이 실제 독립된 직분으로 등장하는 것은 19세기말이라는 얘기다. 이와 비교하여 예술경영자, 기획자라는 역할은 21세기적인 직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축제형 마켓인 에든버러프린지에 참가한 한국공연단체들의 공동 프로모션 행사 주관 예술경영지원센터


전략


2000년을 전후한 한국영화 제2의 전성기를 이끈 힘의 하나로 멀티플렉스의 등장을 꼽는다. 멀티플렉스는 영화 유통 체제를 혁신한 새로운 극장 시스템이다. 유통이 강해지면서 제작과 소비로 이어지는 순환운동이 활발해져서 시장 전체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그것이 영화 생태계를 훼손한다든지, 제작과 유통을 관통하는 수직화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시장의 건전성을 해친다든지 하는 반론도 있다.


되도록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롱런하는 공연 하나쯤 (또는 그 이상) 갖는 소망도 공유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공연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모든 공연이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공연이 그에 맞는 관객과 적합한 환경에서 만나는 것이다. 유통은 그래서 &lsquo;가능한 한 많이, 오래&rsquo; 공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작품에 맞는 유통시스템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막 유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마당에 그 다음을 우려하는 것은 좀 오버하는 것 같긴 하다.



관련자료
「공연예술 유통 활성화 포럼 자료집」(예술경영지원센터, 2007)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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