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한심스럽다. 지지난주 다녀온 휴가를 증명하는 카드명세서를 들고 드는 생각이다. 뻔한 수입에 걸맞지 않은 숫자들이 즐비한 그 종이쪼가리는 무리하게 떠났던 유럽여행을 증명한다. 어차피 숫자 ‘0’ 들의 나열이 주는 압박을 예감하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한심스러운 건 그 여행 기간 동안 고작 간 곳이 비엔날레 현장들이었다는 것이다. 직업병이 도진 게다. 어렵게 떠난 여행에 전시만 보러 다녀온 셈이 되어 버렸다.

베니스와 이스탄불, 이름만 들어도 이국적인 풍취와 오랜 전통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두 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무리한 비행 일정에 몸을 맡기며 다녀온 보람은 물론 있다. 수많은 도시들이 도시를 프로모션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일환으로 이용한다고 존재 자체로 비판받는 비엔날레이지만 전시들은 나름의 존재감을 가지고 그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베니스 도시 풍경흥미로운 건 이 두 도시가 완전히 대조적인 전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베니스는 오랜 명성, 그리고 제국의 도시에 걸맞게 국제적인 미술 올림픽이라도 펼치는 듯 여유 있게 국가 파빌리온마다 미적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면 이스탄불은 유럽과 동양이 만나는 도시답게, 그리고 온갖 정치적 이슈의 현장답게 선명한 정치적 선언을 외치는 선 굵은 전시를 만들었다.

사실 베니스의 전시는 16세기 도시의 삶을 보존하여 그것을 관광으로 팔아 먹고사는 도시의 영악함을 닮았고 그만큼 안일했다. 다니엘 번바움 총감독이 심혈을 다한 ‘아르세날레’의 시각적 쾌감은 순간순간 행복했지만 작품에 발길을 멈추도록 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며, ‘비엔날레 전문작가들’-예를 들어 작년 미디어아트비엔날레와 요코하마트리엔날레에서도 만났던 폴 챈과 같은 작가들-은 역시 자신의 전문적인 기량을 충분히 뽐냈지만 그만큼 진부했다.

<Sade for Sade> 폴 챈, 3채널 애니메이션, 2009. 2009 베니스비엔날레

이스탄불은 마치 들끓는 솥단지 같은 도시였다. 탁심 광장에서 호텔까지 트렁크를 끌고 걸으며 목격한 도시는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개발과 오랜 과거의 현장이 공존하는 도시의 뒷골목은 지저분했지만 이국적인 열기가 있었고 곳곳에 보이는 자미는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곳의 전시는 기본적이지만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lsquo;예술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rsquo; 라는.

이스탄불비엔날레 전시장

올해의 이스탄불비엔날레는 일찍부터 미술관계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었다. 그건 그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집단 ';WAHW';(What, How & for Whom) 때문이었다. 자그레브에서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여성 네 명은 일찍부터 자신들의 전시에 아주 첨예한 정치적 이슈를 내걸었고, 자신들의 큐레이토리얼십을 정의하는 단어로 &lsquo;당파성(partisanship)&rsquo;이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내세웠다.

이런 급진적인 큐레이터가 비엔날레라는 대규모 행사의 감독이 된 적이 있었나? 게다가 남성이 아닌 중년에 접어든 여성 네 명이라니. 사실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키는 요소는 충분했다. 게다가 ';WAHW';가 내세운 이번 전시의 주제는 &lsquo;무엇이 인류를 생존케 하는가?&rsquo;(What keeps mankind Alive?)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의 마지막 구절이라는 이 질문의 대답은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전시는 심장과 뇌가 동시에 반응하게 하는 전시였다. 러시아 연방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 터키의 작가들이 주축이 된 이번 전시 작품들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이 낳은 뒤틀리고 왜곡된 기형적 삶의 형태들과 여전히 전통적 제도 속에 속박되어 있는 여성, 그리고 가난과 전쟁이라는 인류가 짊어지고 있는 근본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자신이 처한 사회에 눈을 떼지 않고 면밀한 관찰과 비판을 개진한 작가들의 명민한 작품들은 아주 근본적이지만 무거운 질문,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되새기게 했다.

<Igor Grubic, East Side Story> 2채널 비디오, 2006-7. 2009 이스탄불비엔날레

전시 오프닝엔 전시 성격에 걸맞은 해프닝도 벌어졌다. 공식 개막행사에 입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에선 10월에 이스탄불에서 열릴 예정인 &lsquo;IMF 국제회의&rsquo;에 반대하는 작은 시위가 열렸고 타악기로 구호를 맞추는 그들에게 관람객들은 박수로 연호했다. 그 속에서 문득 베니스비엔날레의 매끈하고 우아한 파빌리온들이 떠올랐다. 각자의 일상적 세계에 대한 존중과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 베니스와 그 일상을 구성하는 객관적 세계가 지닌 추악하고 고통스러운 진실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이스탄불의 전시가 주는 대비. 문화기획자로서 예술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가 얼마나 중요하며 그것을 통해 뿜어 나올 수 있는 힘의 범위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그러나 다시 일상, 카드 대금을 걱정하는 소시민 문화기획자는 과연 그 깨달음을 어떤 방법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을지. 휴가의 후유증이 길기만 하다.




이채영

필자소개
이채영은 홍익대학교 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디어아트센터인 일주아트하우스의 개관과 함께 5년의 세월을 보냈으며 2008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영상 매체가 지닌 잠재력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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