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17일 간 열렸던 축제의 여운을 기대했던 것일까.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이하 프린지) 사무실은, 예상했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폐막 후의 헛헛함보다는 개막 전의 긴장감과 분주함이 확 끼쳐온다. 축제 직전에 출산을 했다는 오성화 공동대표는 말 그대로 갓난아기를 안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대체 휴가도 없이 일하냐는 물음에 축제 정리하고 (주말을 껴서) 사흘 쉬었단다. 축제가 끝나고 곧바로 이어지는 두산아트센터와의 공동제작 ‘빅보이프로젝트’가 코앞이다. 빅보이프로젝트는 일종의 ‘애프터 프린지’라 할 수 있는데,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한 공연들 중 세 팀을 선정해서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첫 시도인 만큼 2007, 2008, 2009 참여 공연 중 하나씩을 선정했다.

개막 전의 긴장이 맞긴 한데, 그러나 또 그것만은 아니다. 물론 작품선정에서 제작, 홍보, 마케팅까지 한 달이 넘게 적지 않은 규모의 첫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만만찮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말이다. “축제는 우리의 가장 큰 사업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축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한 50의 비중이라면 같은 비중의 또 다른 일들이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나머지 50의 비중의 일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고 보니 분주함에는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띠게 많아진 것도 있다. 올해 프린지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상근 인원이 (상대적으로) 대폭 늘었다. 축제를 움직이는 것은 자원봉사자들인 인디스트들이고 상근 인원들은 프린지의 ‘일상적’ 사업들을 보완하고 확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문패
홍대를 중심으로 한 마포구 일대의 지역문화 프로그램이라든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한국마임협회가 주최하는 ‘마임페스티벌’ 등의 공연기획, 사무실 앞마당에서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벌이는 ‘F+놀이터 프로젝트’ 등의 공연 기획, 프린지 스튜디오 운영, 예술가 워크숍, 아시아 독립예술 네트워크, 독립예술 웹진 [인디안밥] 발행, 한집에 동거(?)하고 있는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사무실은 주택가 이층집이다- 일상예술창작센터와의 공동사업 등등의 일이 계속되고 있다.

90년대 대표적인 문화적 사건이었던 98년 제1회 독립예술제는 그로부터 12년이 흐르는 동안 대학로에서 예술의전당을 거처 인디문화의 대표적 장소인 홍대 앞에 자리 잡았다. 축제의 이름도 서울프린지페스티벌로 바뀌었고 축제의 규모도 커졌다. 제도나 관습에서 자유로운 무서운 아이들의 난장이라는 독립예술제의 정신은 장르, 젊은 ‘세대’, 프로와 아마추어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지형의 양상을 복합적으로 포괄하는 ‘비주류’로 확장되었다.

변화한 것은 축제만이 아니다. 축제 기획과 운영을 위한 한시적인 기획자 그룹도 축제의 변화의 과정에서 ‘서울프린지네트워크’라는 하나의 틀을 구성했다. 90년대 문화론의 열기 속에서 탄생해서 2000년대 새로운 문화예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재정비하면서 꾸준히 성장해온, 여전히 문화활동가와 공연기획제작 집단 어딘가에 위치하는, 프린지의 오성화, 최순화 공동대표와 2년차 새내기로 이번 축제에서 각각 실내공연예술제와 거리예술제를 진행한 김도희, 김선미 그녀들을 만났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 그리고 20대들과 접속하기

오성화 대표, 최순화 대표, 김도희, 김선미

막 축제가 끝났다. 올해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우선 거리예술제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를 포기하고 365골목길처럼 홍대 앞 구석구석의 새로운 공간을 찾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흥미로운 공연도 있었는데, 축제 홍보나 ‘집객’ 등에 (부정적) 영향이 있지 않나.

김선미(이하 선미)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놀이터, 관광안내소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도 공연이 있었다. 거리예술제만이 아니라 실내공연에서도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에 맞는 공간을 발굴하는 ';브링 유어 오운 베뉴';(BYOV, Bring Your Own Venue)를 도입하면서 365골목길 같은 새로운 공간이 다양하게 생겼다.

최순화(이하 최) (아직 정확한 정산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티켓 판매액은 늘었다. 공연회수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당 관객수도 소폭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티켓 수입이 300만 원 이상 되는 공연 편수도 늘었다.

오성화(이하 오) 드림플레이처럼 프린지페스티벌에 꾸준히 참여한 극단들은 찾아보는 관객층이 있다. 그런가 하면 대학로에서 활동해온 단체들 중에 티켓수입이 현저히 낮은 경우도 종종 있다. 반면 동호회 성격이 강한 팀들이 최다 판매를 하기도 한다. 개별 팀들이 얼마나 홍보 마케팅에 힘썼는가의 영향이 크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는 기획공연 이외에는 개별 공연에 대한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는다.) 한편 대학로 등 기존 공연계의 관객층과 프린지페스티벌 관객층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올해 축제의 또 다른 변화를 꼽는다면?

예술사회를 말하다, 배달공연 등 기획공연들을 시도했다. 그리고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개막공연의 변화가 가장 컸다. 그간 축제 개막공연은 프린지 갈라쇼였다. 일종의 대표 선수 보여주기 이다. 이번에는 인디스트, 아티스트, 그리고 축제 사무국인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협업으로 퍼레이드를 구성했다. 어느 축제나 자원봉사자 조직이 중요하지만 프린지에서는 인디스트의 활동이 정말 중요하다. 열정을 쏟아 붓는데 이것이 그냥 개인의 경험으로 남는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 20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프린지에서 인디스트들과 함께 20대 문화에 대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부족한 점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축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사업들

서울프린지네트워크라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찬찬히 보지 않으면 둘을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축제 프로그램북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봐도 그렇고 언뜻언뜻 지켜보기에도 그렇고 축제 이외에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축제는 장을 여는 것이다. 축제라는 장에서 예술가들이 교류하고 또 관객들이 찾아오는 것. 그런데 축제는 이러한 장이 특정 기간에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집중성의 매력이 있지만. 그래서 그러한 장을 어떻게 하면 다양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하나하나의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독립예술의 일상적 거점이 필요해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F+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독립예술에 대한 담론 축적과 비평이라는 교류의 장이 필요해서 독립예술 웹진 [인디언밥]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인디언밥]은 점차 프린지로부터 독립해 독자적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도희(이하 도희) 축제를 진행하면서 안타까운 점이 프린지가 공연공간을 만드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린지에서 예술가들이 성장하는 데에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가작을 줄이는 방법도 생각해봤다. (오 : 여러번 검토하고 기획안가지 다 만들었다가 폐기했다. 예술가들이 공연을 자정에 해도 좋으니 개방성을 버리지 말라고 하더라.)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개방성이 축제의 중요한 정체성이라면 예술가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축제 밖에서 찾는 것이 필요하다.

축제에서 비롯된 고민을 축제 기획만이 아닌 다양한 활동,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는 프린지네트워크 애뉴얼리포트를 꼭 내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프린지는? 축제사무국, 공연기획사, 그리고 엔지오!

김도희, 최순화사업의 내용도 그렇고 사업이 구상되고 전개되는 방식도 그렇고 참 독특하다. 그래서 프린지네트워크라는 조직의 성격이 뭔가? 축제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일년 내내 축제사무국의 역할을 해도 부족할 것 같고 또 공연기획사도 점점 전문성이 고도화되고 있다. 전문화 시대에 성격이 모호한 것 아닌가.

도희/선미 축제를 정말 잘 만들고 싶고 그러려면 일년 내내 축제 준비만 해도 모자란다.

축제사무국, 공연기획사 모두 우리의 주요한 성격이다. 거기에 엔지오의 성격도 있다. 축제사무국이 50이라면 기획사가 20, 엔지오가 30쯤이랄까?

기획사와 엔지오 비중을 바꿔야 하지 않나?


엔지오의 성격이란 건 뭔가? 프린지가 운동단체는 아니지 않나.

오성화, 김선미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일반 회사나 문화재단, 극장 등과는 다른 태도와 가치관 방식이 있다. 그걸 말하는 거다. 엔지오의 성격이 30이라고 한 것은 현재 내가 대표로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오면 또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개되는 현실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개입하는 방식과 태도는 프린지의 중요한 성격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선미 확실히 프린지는 좀 다르다. ‘나 지금 회사야’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내가 뭔가 만들어내고 도전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일반 회사에 다녀본 적은 없지만, 적응 못 할 것 같다. 프린지에서 일하는 것은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축제를 한번 할 때마다 (이번이 두 번째지만) 수명이 단축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

도희 프린지를 ‘직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열심히 일하는 곳은 맞는데 그런데 직장은 아니다.

‘직장’이라고 봤을 때 프린지는 매우 열악하다. 공공극장은 물론이고 다른 축제 사무국과도 적잖이 차이가 있다. 그런데 프린지를 찾아오고 또 일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충족되는 지점은 좀 다르다. 프린지는 함께 일할 사람을 찾을 때 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워크샵을 함께 하고 그런 과정을 함께 하고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사무실



당신의 꿈은?
“예술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잘 나눌 수 있는 기획자”

프린지에서 일한지는 얼마나 되었나?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도희 2년차이다. 선미와 같이 시작했다. 둘 다 프린지에서 인디스트 활동을 했다. 나는 2007년에 선미는 2006년에. 대학 다니면서 극단 활동도 했는데 졸업과 함께 정리하게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지금 학업과 프린지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선미 졸업 후 휴식과 방황을 겸한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프린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스트 활동도 했었고 워낙 인디밴드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프린지에서는 인디밴드들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90년대 학번이다. 대학생활을 5년 하면서 (웃음) 뭔가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여러 대학의 친구들이 모여서 기획도 하고 직접 공연을 다니기도 하고 또 극단에서 기획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프린지를 만났다. 나는 운이 참 좋다. 프린지를 막 시작했을 때는 대학 때 머리 아프다고 밀쳐놨던 문화론들을 직접 축제를 운영하면서 다시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 찼었다. 그런 단계가 막 지나가고 있을 때 이규석 대표가 프린지를 정리하면서 대표를 맡게 되었고 또 다른 역할이 주어졌다.

나는 80년대 끝 학번이다. 졸업하고 7년 간 출판사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서른이 되었을 때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한겨레신문 아카데미에서 문화기획을 공부했다. 공부를 하는 중에 프린지를 알게 돼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는 축제기획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다. 기획은 물론이고 공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그래서 참 많이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다. 그런데 벌써 출판보다 이쪽에서 일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필자 김소연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세대별로 문화예술 기획 분야에 접속하는 다양한 통로를 보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당신의 희망은?

단체운영에서 내실을 갖고 싶다. 또 문화기획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소통, 매개, 커뮤니케이션 방법 개발에 관심이 많다.

선미 작품을 보는 시각을 넓히고 싶다. 또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싶다. 그들의 작업에 부합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도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예술, 창작 이외에는 서투른 예술가들이 많다. 그들의 참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고 또 그들의 작업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기획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밀도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또 관계맺기를 잘하고 싶다.

가깝게는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활동의 물적 토대를 갖추고 싶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도 그에 대한 공부의 과정이다. 먹고 놀면서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호주 아들레이드의 20대 행정감독을 보면서 생각한 건데 프린지를 20대 대표가 이끄는 것이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 편집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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