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네덜란드에서 왔습니다. ‘네덜란드’ 하면 많은 분들이 무엇을 떠올리실지 상상이 됩니다. 아마도 독일과 북해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땅이나 서부 유럽에 있는 나라를 연상하시겠죠. 네덜란드는 고작 천칠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뛰어난 예술가를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나 렘브란트 판 레인, 피에트 몬드리안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지요. 서울대학교 미술관인 MOA나 리움 미술관을 디자인한 건축가 렘 쿨하스도 여러분들께는 친숙한 이름일 겁니다. 네덜란드 댄스씨어터(NDT)나 안무가 에미오 그레코(Emio Greco), 갈릴리 무용단(Galili Dance) 등도 한국에서 잘 알려진 네덜란드 출신의 공연예술 단체로 꼽힐 수 있을 겁니다. 한국 내에서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듯 네덜란드의 공연예술도 점차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작년 한 해 네덜란드의 공연작품수 증가율은 315%나 되니까요!

저는 3년 전 정동극장에서 본 전통공연에 매료된 후 한국 공연예술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다른 외국인들처럼 <난타>나 비보이 공연 등을 접했지만, 짧은 한국 체류는 한국 공연예술에 대해 더욱 큰 호기심을 갖게 했고, 더 정확히 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2년 전 저는 한국으로 건너와 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는 대로 타국에서 살게 되면 개인적인 삶이나 일에서 여러 가지 문화 차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2년 가까이 한국 공연예술 국제교류 분야에서 일한 후에야 저는 두 문화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과 익숙하지 않은 현장과 사람들에게 적응하며 일하는 것은 확실히 큰 모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언어를 익히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한국은 영어 상용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를 익히는 일이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에미오 그레코 안무<Hell>

저는 한국의 경제와 공연예술시장의 엄청난 성장 속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풍요롭지만 복잡하기도 합니다. 예전의 가난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한국의 예술은 건강한 시스템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예술단체가 존재하고 매우 제한된 예산이지만 공연단체들 안에서도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은 지금까지 해온 것 이상으로 더 나은 공연예술 기반 조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죠. 이에 반해 네덜란드의 공연예술계에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거나 성장하기 어려울 정도의 규제가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등 다른 여러 국가에서 정부와 예술계 사이에는 예술분야에 대한 공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 지원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은 공연예술이 더 나은 환경에서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lsquo;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전에는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다&rsquo;고 말합니다. 이것이 제가 기꺼이 어떻게 문화교류를 증대하고, 이동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현대공연예술국제네트워크(IETM)의 사무국장인 마리 안 드빌(Mary Ann DeVlieg)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ldquo;세계화 및 그로 인한 교류와 이동현상은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상품으로서의 예술에 투자하려고 하지만 예술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프로세스이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수단이다. 단순한 상업적인 교환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예술가들과 예술경영인들이 만나야 한다. 즉 만나고, 연구하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환경을 살펴보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방식도 관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호 이해를 증진시켜야 한다.&rdquo;

한국공연단체의 매니저로 참여한 2008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서로에 대한 이해 증진을 통해 우리는 예술작품,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에 더욱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투쟁(A human struggle)에 대한 열정 때문에 저는 인적 네트워크, 경영, 컨설팅을 다루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투쟁은 누군가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과 타인의 정치적 자유를 찾고, 외부 환경과 싸우는 등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합니다. 예술이 사회를 반영하는 것처럼 인간적인 투쟁은 규범이나 가치, 욕구, 상상, 신화, 편견, 통상 사회가 &lsquo;평범하지 않은&rsquo; 사건들로 간주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이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삶에서 늘 이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삶은 언제나 비극을 포함하고 있고, 다행히도 우리는 비극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죠. 그것이 제가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을 통해 상호간의 이해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저의 &lsquo;인간적인 투쟁&rsquo;의 대상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그러나 저는 이것을 &lsquo;다문화 경험&rsquo;이라 부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는 외국인인 동시에 한국인이기도 합니다. 문화적으로 저는 한국적(한국인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식의)이지 않지만, 외양은 한국적입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볼 때 지금의 경험은 저에게 분명 &lsquo;다문화 경험&rsquo;입니다. 이 경험들은 때론 흥분을, 때론 좌절을 주기도 하지만, 제게 유머와 즐거움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주겠죠.





롤링 케흠

필자소개
롤링 케흠(Roling Keum, 한국명 김금동)은 네덜란드에서 성장했으며 네덜란드의 공연예술단체와 조직에서 일한 후 2007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프리랜서로 한국 공연의 국제교류 매니저와 프로듀서로 일했고, 현재는 공연예술 네트워크, 매니지먼트, 컨설팅 회사인 Creative Initiatives의 아트 콜라보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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