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기사를 보면 자신의 애정을 맨살 그대로 드러내 놓지는 않는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성실함. 그의 기사에는 항상 작가, 연출, 배우만이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소품, 분장, 그래픽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공연에 참여한 스태프들을 꼼꼼히 적어 놓는다. 드러난 것의 '이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연합뉴스 강일중 기자(연합뉴스 논설위원실 고문)는 지난 여름『공연예술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2005년에 나온『뉴욕 문화가 산책』에 이어 (공연예술 관련) 두 번째 저서이다. 물론 앞의 책도 뉴욕통신원 시절 송고했던 기사를 바탕으로 자료를 다시 조사하고 정리한 것이었지만 이번 책은 좀 더 남다르다. 1년 내에 마칠 줄 알았던 일이 3년으로 늘어났던 데에는 그 스스로 말하기를 ‘무모함’ 때문이란다. 책의 구성만을 보더라도 ‘무모함’(?)이 전해지는데, 이 책은 공연예술 축제에 대한 사적 고찰부터, 국내외 주요 축제들의 전개와 예술감독 집행위원장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축제 기획과 운영의 실제까지, 공연예술 축제와 관련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눈에 띠었던 것은 그런 광범위한 주제 때문은 아니다. 세계의 다양한 축제에 대한 소개부터 직접 축제를 운영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세세한 실무지침까지, 2000년을 전후로 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서적들이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다. 또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 축제 정보들도 접근이 어렵지 않은 시절이다. 그럼에도 제목에서부터 도드라지는 ‘공연예술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육성은 이 책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제3장 축제경영Ⅱ: 내가 만난 축제인’에는 거창국제연극제, 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 제주국제관악제 등 10개의 국내 주요 공연예술축제 예술감독과 집행위원장 그리고 김영순 뉴욕 덤보무용축제 예술감독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마임을 접고 소 키우러 춘천에 내려왔다는 유진규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춘천을 마임의 도시라 부를 만큼 대표적인 한국 공연예술 축제로 성장한 춘천마임축제의 화려한 명성 뒤안에 놓여있는 한국마임의 현실과 축제가 그러한 열악한 공연예술계에서 어떠한 생산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이 인터뷰이의 육성에서 배어나온다. 자신의 관점과 시선을 드러내기보다는 인터뷰이의 육성에 녹여내는 인터뷰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강일중’이라는 저자 때문이다. 뉴스의 생명은 현장감이라고 하지만 쏟아지는 ‘팩트’들을 일일이 현장에서 취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공연 보도자료가 그대로 기사가 되어 있는 경우도 간혹 (또는 종종) 만나게 된다. 반면 강일중 기자의 기사에서는 항상 현장의 생생한 느낌이 담겨있다. 게다가 뉴스의 선택에서도 연극계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발품이 담겨 있다. 작품의 선택에서도 그렇고, 인터뷰이를 선택하는 데서도 그렇다.

강일중



기자가 해야 할 일, 전문가가 해야 할 일

강일중 기자는 77년 연합통신 전신인 동양통신에 입사하여 줄곧 산업 분야를 취재해왔다. 2000년 뉴욕특파원, 2003년 경제국장을 지낸 경제통 기자이다. (그는『산업뉴스의 실제』라는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뉴욕특파원 시절 시큰둥한 데스크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경제뉴스를 쓰는 틈틈이 문화 관련 기사를 써 송고했단다. 문화 분야, 공연예술 분야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그리고 경제국장을 마치고 난 후 2006년 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테이지2010’이라는 공연예술 고정칼럼을 쓰고 있다. 공연예술 분야만을 놓고 보자면 늦깎이인 셈이다.

뒤늦은 입문(?)에 대한 이유를 묻자 “이 좋은 걸 혼자 보기 아까워서”란다. 경제국장까지 지낸 베테랑 기자의 대답으로는 너무 싱거운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그의 기사에는 날선 비판이나 공연예술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너무 넘치는 사랑이 아닐까.

“사람들은 기사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을 원한다. 그것도 기자의 역할이겠지만 우선 기자가 해야 할 일, 기사가 전해야 할 것은 ‘사실’이다.”

그는 기자의 글과 전문가의 글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사실 한 분야를 10년 가까이 취재해왔다면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갖추었다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라고 선을 긋는 것은, 한편 겸손함이기도 하겠지만, 기자의 역할에 대한 단단한 신념이기도 할 것이다. 또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의도와 상관없이 글이 칼이 되는 경우를 보았다면서 글쓰기의 신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것도 맞다. 그는 고고학자인 친구가 공연보기를 즐겨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고고학은 상상력이 중요하다. 뼛조각 하나로 시대를 구성해내야 하지 않나. 네가 공연을 좋아하는 것은 그런 상상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냐 했더니 맞다고 하더라.”


공연의 이면이 공연을 풍성하게 만든다

강일중그러나 그의 기사를 보면 자신의 애정을 맨살 그대로 드러내 놓지는 않는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성실함. 그의 기사에는 항상 작가, 연출, 배우만이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소품, 분장, 그래픽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공연에 참여한 스태프들을 꼼꼼히 적어 놓는다. 앞서 언급한 각 축제의 예술감독 집행위원장에 대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은 기사로 이미 발행된 것들인데, 축제 프로그램이 아닌 축제를 만드는 사람에 대해 이만큼 주목한 글을 찾기 어렵다. 이처럼 그는 무대 위에 드러난 이들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 하니) 전문가가 아니고는 눈길을 주기 쉽지 않고 또 대중적 소재가 아니다보니 기사 가치가 떨어지는 소재가 아닐까.

“지면의 제한을 받지 않는 ‘통신’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공연을 소개할 때는 만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꼭 담는다. 한편의 공연은 단지 무대 위에 드러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과 재능으로 만들어진다. 또 스태프들에 대한 이야기는 공연의 이면을 보여주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그 이면이 공연과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드러난 것의 ‘이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7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이고 보니 당시 청년세대들처럼 그도 꽤나 열심히 음반을 사 모았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빽판’이라 불리던 복사본으로 음악을 듣던 때이지만 백방으로 뛰어서 원판 음반을 구했는데, 어렵게 구한 음반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특별히 스태프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음반 재킷의 깨알 같은 글씨를 모두 읽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나중에는 프로듀서라든가 엔지니어와 같은 제작자들의 이름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게 되고, 음반을 들으면서 그들의 특별한 손길이 느껴지니 음악을 듣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기더라는 것. 그런 습관(?)은 지금도 여전해서 오페라 공연 비디오 디렉터인 브라이언 리주의 영상은 특별히 훌륭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축제의 가능성

늦깎이 이지만 그는 공부가 열심이다. 이번 책을 준비하는 중에 그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공연예술단체의 가격전략에 관한 사례연구」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전작인『뉴욕 문화가 산책』도 이미 발행된 기사에 자료를 보충하여 새로 썼지만, 이번 책은 아예 장을 새롭게 구성하고 별도로 준비했다. ‘공연예술 축제의 원형과 진화’가 공연예술사의 맥락에서 공연예술 장르분화와 축제의 역사적 흐름을 개괄한다면 나머지 장들은 축제경영의 측면에서 ‘유럽 북미의 축제와 축제인’ ‘내가 만난 축제인’ ‘기획과 운영의 실제’를 다루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연예술축제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이렇게 주제가 광범위해진 데 대해 그는 공연예술축제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정돈된 자료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2000년대 전후만 해도 공연기획에 입문하는 이들 대부분이 축제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이즈음은 축제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는, 공연기획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런가? 축제의 가능성은 매우 크다. 춘천마임축제의 경우 마임 자체는 여전히 비주류 장르이지만 춘천마임축제가 마임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지 않나. 좋은 작품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당연히 대중들의 관심도 큰 것이다. 또 그러한 프로그래밍이나 에너지에서 축제의 마켓 기능이 발생한다. 물론 그동안 수많은 축제들이 생겨났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안정화 되어 가고 있는 축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공연예술에서 축제의 역할은 점점 커질 것이다.”

강일중그가 진단하는 축제의 변화양상은 점차 제작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규모 있는 국제 공연예술 축제들의 경우 초기에는 국제적 트렌드를 소개하는 데에 프로그램의 방점이 놓여있었다면 근래에는 점점 국내 창작자와 작품 발굴과 개발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그의 진단은 지난 달 열렸던 서울아트마켓의 ‘창작에서 유통까지’라는 주제포럼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공연 기획자들에게도 축제는 흥미로운 도전의 장이라고 말한다. 국내 다수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고 국제 규모의 경우에는 그 범위가 해외로까지 넓어진다. 당연히 국제 교류를 위한 언어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축제기획은 프로그래밍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해외 공연단체의 입출국 등의 절차에서 비롯되는 문제들만이 아니라 다중이 모이는 행사장에서의 사건 사고와 민원 등 각종 리스크에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축제는 예술가들과 관객들만이 아니라 경찰이라든가 구청, 시청 등 행정기관과의 협력작업이기도 하다.


“나는 준비된 A+ 자원봉사자”

뉴욕 특파원 시절 공연예술 기사에 대해 데스크의 반응이 시큰둥했다는 말이 생각나 요즘은 어떠냐 물었다. 사진, 동영상, 기사 작성까지 혼자서 다 하니 (비용절감 차원에서도) 회사에서 좋아한단다.

“나는 준비된 A+ 자원봉사자다. 영어되고 운전할 줄 아니 해외 공연단 공항 마중 나가는 일도 할 수 있고 좋은 카메라도 있으니 영상기록도 할 수 있다.(웃음)”

한 지인은 이제 돌아오는 1월이면 정년을 맞는 그에게 그날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내년이면 기자 강일중이 아니라 자원봉사자 강일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간 대학로를 드나들며 지켜본 소극장에 대해서도 정리해보고 싶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기도 하고. 정년을 앞둔 그의 생각들을 들고 있자니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을 앞둔 이의 설렘이 느껴진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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