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은 접근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대중들에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덴마크의 작가 욘 쾨르너(John Kørner)는 “문제 제기와 그 해결법은 창조적인 과정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예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의 작업 을 통해 역설했다. 어느 날 갑작스레 도심의 광장을 차지한 이 12미터 높이의 거대한 조각 작업의 제목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던져진 문제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창조적인 과정에 과연 예술은 개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창조적 개입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우연찮은 기회에 방문했던 신생 연례행사 ‘코펜하겐 컨템포러리’(Kopenhagen Contemporary)는 이러한 고민들에 대해 다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욘 쾨르너(John Kerner)의 <The Big Problem>

&lsquo;세계적인 수준의 동시대 미술을 소개한다&rsquo;는 취지로 2008년부터 추진되어온 이 행사는 9월 중순 한 주말 동안 덴마크뿐만 아니라 북유럽의 동시대 미술을 집중적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 &lsquo;아트 코펜하겐&rsquo;(Art Copenhagen)이 열리던 시기에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함께 열렸던 &lsquo;코펜하겐 컨템포러리&rsquo;는 코펜하겐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공식 주관하는 관광국 원더풀 코펜하겐(Wonderful Copenhagen)이 코펜하겐 퍼블리싱(Kopenhagen Publishing)과 손잡고 2008년부터 추진해온 연례행사이다.

북유럽 동시대 미술을 널리 알리고 북유럽 출신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1998년에 설립된 북유럽 최고 권위의 미술상 &lsquo;카네기 아트 어워드&rsquo;(Carnegie Art Award)의 전시 개막행사와 시상식, 덴마크 코펜하겐 지역과 스웨덴 인근 도시 말뫼(Malm&ouml;)에 위치한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를 아우르는 다양한 시각과 관심사의 표출은 올해 행사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사의 이면에는 일군의 작가와 기획자들의 열정이 어김없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lsquo;코펜하겐 컨템포러리&rsquo;의 공동기획자이기도 한 토벤 센트(Torben Zenth)와 그가 운영하는 &lsquo;코펜하겐 퍼블리싱&rsquo;의 활동이다. 코펜하겐 퍼블리싱은 미술에 대한 정보접근이 쉽지 않았던 2000년에 설립되어 작가와 큐레이터의 인터뷰, 전시 등을 매주 발송되는 이메일 뉴스레터와 웹사이트를 통해 소개함으로써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러한 활동은 곧 전시가이드인 [아트 코펜하겐](Art Kopenhagen)과 덴마크 동시대 미술 연감인『뉴 대니시 아트』(New Danish Art)의 발간으로 이어졌다.

코펜하겐 퍼블리싱이 덴마크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소식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미술계와의 거리를 좁히고 동시대 미술계를 보다 더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lsquo;카리에르&rsquo;(Karriere)의 활동은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작가 예페 하인(Jeppe Hein)과 그의 동생이자 매니저인 레르케 하인(Laerke Hein)이 코펜하겐의 오래된 도축장 지역에 2007년에 오픈한 레스토랑ㆍ바(restaurantㆍbar) &lsquo;카리에르&rsquo;는 전 세계로부터 초청된 32명의 작가들이 레스토랑ㆍ바로서의 기능과 디자인을 재정의한 공간이다. 레스토랑ㆍ바 안에 있는 조명, 계산대, 화장실, 댄스 플로어, 테이블과 의자 등 모든 것을 작가들이 제작하고, &lsquo;카리에르&rsquo;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작업이자 예술 작품인 동시에 레스토레스토랑ㆍ바로 기능하며, [카리에르](Karriere)라는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고, 아티스트 토크, 영상 상영, 퍼포먼스를 개최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대중과의 소통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코펜하겐 미술계가 실험적이며 열정으로 가득 차있다는 견해에 힘을 실었고, &lsquo;코펜하겐 컨템포러리&rsquo;가 보여주고자 했던 덴마크 미술의 잠재력이 이러한 다양한 시도 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카리에르(Karriere) 외관과 내부

미술계 현장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가와 기획자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하여 일반 관람객 나아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소통하려는 코펜하겐 컨템포러리의 노력과 그들의 창의적인 방식은 AFI(Artist Forum International)의 활동을 떠올리게 했다. 2006년과 2007년에 주최했던 이 두 번의 행사는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히고 지층을 풍부하게 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대안공간들이 현대미술의 생산적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라는 연합체를 구성하고, 이러한 연대를 바탕으로 자생적이고 실험적인 토대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제안하기 위해 조직한 것이었다.

이 협의회는 AFI라는 복합적인 예술문화행사를 통해 &lsquo;미술계의 자기충족적인 활동을 넘어, 매년 구체적이고 비평적인 이슈를 제기하고 미술과 시민사회의 생산적인 연결을 도모하고, 특히 다양한 논의 공간의 창출로 미술과 대화를 통해 대안공간 본연의 실험성과 대안성을 되살려낸다&rsquo;는 취지를 표명했고, 동시대 미술의 주요 이슈를 열린 포럼의 형식으로 이끌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 행사는 단 두 번의 시도를 끝으로 아쉬움만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 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더라면 이 행사는 우리 사회에 활력소가 될 &lsquo;Big Problem&rsquo;을 끊임없이 던져줄 수 있었을까? 이 행사가 지속되었다면,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창조적인 해결책으로 드러날 수 있었을까? 사소한 문제들에 잠식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 그리고 미술계에도 &lsquo;Big Problem&rsquo;이 절실한 것은 아닐까?





필자소개
김윤경은 서울과 뉴욕에서 잠시 현대미술사를 공부한 후, 미술관 큐레이터와 독립 전시기획자로 활동했으며, 2007년부터는 몽인아트센터(Mongin Art Center)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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