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은 미래의 관객들에게 투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유지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오케스트라 자체가 지역 사회의 일부로서 가지는 시민의 의무라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교육부서 총 디렉터인 테오도르 위프러드(Theodore Wiprud)씨가 내한하여 &lsquo;예술교육, 음악으로 다가가기&rsquo;라는 주제로 지난 11월 4일 문호아트홀에서 강연을 펼쳤다. 이 행사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한 <제2회 해외 문화예술분야 교수인력 초빙 연수>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는데, 100여 명이 넘는 공연예술 및 음악분야 관련 기관, 단체 실무자들이 참여하여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되었다.

<뉴욕필 교육부서 총디렉터 테오도르 위프러드 강연> 현장

20년 이상 음악교육계에서 활동해 왔으며, 현재 작곡가이자 음악회 해설자, 교육자, 음악행정가로서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위프러드 씨는 &ldquo;누구나 창의적이며 음악을 좋아 한다&rdquo;는 확고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뉴욕필 오케스트라 철학의 원천, 1년에 3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뉴욕필 오케스트라 교육활동의 역할, 티칭 아티스트(teaching artist) 및 인터렉티브 콘서트의 의미, 예술교육을 위한 다차원 파트너십의 중요성 등을 차례로 짚어나갔다.


뉴욕필 음악교육의 근간 - 레너드 번스타인, 하버드 프로젝트 제로, 링컨센터

우선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역할 외에 왜 오케스트라가 &lsquo;교육&rsquo;이라는 만만치 않은 짐을 기꺼이 짊어져야할까. 위프러드씨는 네 가지 차원에서 교육자로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찾는다.

예술교육은 미래의 관객들에게 투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유지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오케스트라 자체가 지역 사회의 일부로서 가지는 시민의 의무라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rdquo;

미국의 오케스트라 중 가장 먼저 교육부서를 만든 뉴욕필 오케스트라답게 그 정신적 근간은 꽤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부터 10여 년 동안 뉴욕필을 이끌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어린 세대들이 음악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일찍부터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항상 재미있고 흥미롭게 음악 아이디어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진행된 〈young people';s concert〉는 현재까지도 뉴욕필 오케스트라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전설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욕필 오케스트라의 정신적 근간이라면,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으로 대표되는 &lsquo;하버드 프로젝트 제로&rsquo;(1965년)와 티칭 아티스트 개념을 개발한 &lsquo;링컨센터&rsquo;(1975년)는 뉴욕필 오케스트라 교육활동의 든든한 이론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티칭 아티스트, 음악인의 개념적 지평을 넓혀

위프러드씨는 교육자로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에 이어 오늘날 음악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재 뉴욕필 오케스트라 106명의 단원 중 연주에만 전념하고 있는 단원들이 50%에 그치는 게 현실이라면, 음악인을 단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라고 좁게 정의내리기가 좀 주저된다. 바로 여기서 자연스럽게 &lsquo;티칭 아티스트&rsquo; 개념이 개입하게 된다.

&ldquo;티칭 아티스트는 뛰어난 기량을 가진 예술가이자 교육자이다. 이들은 그저 잠시 스치는 인생의 정류장으로서 교육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미션으로서 차별화된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다. 뉴욕필에는 현재 20명의 티칭 아티스트가 있는데, 단원들과는 별도로 워크숍을 통해 선발 후 양성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 통해 얻은 연대감과 결속력으로 티칭 아티스트들은 미국 전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rdquo;.&rdquo;

탁월한 예술가이자 교육자인 티칭 아티스트의 선발 및 양성, 활동이 가능한 것은 뉴욕필 오케스트라 자체의 양성 시스템 외에 음악원 교육과정 내에 티칭 아티스트 양성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링컨센터-뉴욕필 오케스트라 간의 유기적 연계는 어린 세대들이 학교에서 양질의 예술교육을 누리는 바탕이 되고, 또한 이러한 교육활동은 전반적인 예술계의 토양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선순환 모델을 이뤄가고 있다..&rdquo;

그러나 이 모든 성과들이 처음부터 마술처럼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ldquo;1975년 뉴욕의 재정 상태는 무척 좋지 않아서 많은 학교들에서 예술과 체육 프로그램을 축소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1970년대 말 예술단체들이 학교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뉴욕필의 경우 94년 스쿨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에 나간 티칭 아티스트들의 존재에 대해 교사들이 잘 모르고 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떠한 프로그램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초기 과정에는 작지만 멋진 목표를 가지고 출발하는 게 바람직합니다.&rdquo;


즐겁게 가르칠 것인가, 교육적으로 즐길 것인가

사실 &lsquo;교육&rsquo;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계몽적이고 억압적인 어감에서 누구나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끊임없이 정착하려는 &lsquo;교육&rsquo;과 자유로운 영혼을 쉼 없이 갈구하는 &lsquo;예술&rsquo; 사이의 간극이 분명한 만큼, 그 거리를 좁혀보려는 도전 역시 다양하게 있어 왔다.

뉴욕필 오케스트라의 대표적 교육활동으로서 <인터렉티브 콘서트>를 논할 때 접근 방법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엔터테이너적 방법으로 가르칠 것인가(Teaching in an entertaining way) 아니면 교육적 방법으로 즐길 것인가(Entertaining in an educational way)라는 서로 다른 방법론 중 그들이 찾은 해법은 &lsquo;즐겁게 가르치기&rsquo; 쪽이다. 예를 들어, 〈young people';s concert〉에 참여한 아이들 중 연주회 당일 생일을 맞은 어린 관객을 위해 과장된 바로크 스타일의 생일 축가를 들려주는 색다르고 강렬한 경험을 전해줄 수도 있다. 또한, ';Kidzone Live'; 라는 작곡워크숍에서 어린이들이 이미 벽에 그려진 오선지에 마음 가는대로 음표를 그리면 그것을 음악가가 직접 그 자리에서 연주로 들려줌으로써 작곡의 원리를 재미있게 익히도록 한다. 3-6세 아동 대상의 실내악 콘서트인 〈Very Young People';s Concert〉에서는 스토리텔링과 게임 등을 활용하여 집중력이 약한 어린이들이 편하고 친근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배려한다.

';In-School Concert Teaching Artists Ensemble';의 경우 티칭 아티스트 앙상블이 학교 안에서 콘서트를 펼치는 형태인데, 티칭 아티스트들의 상호학습을 통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교실에 적용해 보는 기회가 된다. 실제로 뉴욕필의 사례 동영상을 확인해 보니, 작은 교실에서 실내악 앙상블 연주 과정 중 학생이 리모콘으로 실제 연주하는 한 연주자(악기)를 가리키면 연주자가 자신의 악기 소리를 키우기도 하고 아예 연주를 멈추기도 하는 일종의 게임을 한다. 학생들은 각 악기의 소리와 앙상블의 구성을 즐겁게 익혀간다.

한국의 학교 내 정규 교과과정에서도 지켜야 할 과정이라는 게 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또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교육 활동에 별다른 관심도 동기도 없는 현실인데 마냥 행복해 보이는 뉴욕필 오케스트라 사례를 여기 지금 이 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 않나 하고 볼멘소리들이 나올 법도 하다.

&ldquo;뉴욕필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도 티칭 아티스트가 활동하는 지역과 학교에 따라, 그리고 같은 학교라 하더라도 학년과 반마다 모두 상황이 다르다. 개발된 프로그램도 현실의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 역시 역사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접목해야 한다.&rdquo;


예술교육, 연속성과 맥락이 전제되어야

위프러드씨는 현장에서의 유연한 적용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예술교육이 영향력과 효과를 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연속성과 맥락을 들었다. 〈young people';s concert〉의 경우에도 시즌마다 시대별, 장르별 맥락 하에 음악을 구성하고, 커리큘럼은 해당 콘서트별 가이드북과 CD자료를 연속성을 가지고 꾸준히 만들어 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위프러드씨는 교육을 위한 오케스트라의 파트너십이 지역적 차원, 학교 차원, 학급 차원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지역적 차원에서 볼 때, 뉴욕필이 문화예술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짐에 따라 뉴욕시의 의뢰를 받아 커리큘럼(Blueprint for teaching and learning in the Arts)을 개발하고 이를 교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연수를 시행하는 동시에 학교 내 음악교육의 중요성을 옹호하는 활동 역시 펼치고 있다. 학교 차원에서는 각 학교 상황에 맞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맞춤 적용하면서 학교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미세 단위인 학급 차원에서는 공동의 기획과 교수활동, 학부모 참여 유도 등의 파트너십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다차원적 파트너십이 가능했던 원천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뉴욕필 오케스트라 조직 내부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합의과정이었다고 한다. &lsquo;교육&rsquo;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려 1년 동안 상향식(bottom-up)으로 조직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토론하고 정의내림으로써 합의점을 찾아내고, 이로부터 인력과 예산 확충이 가능했다는 점이야말로 뉴욕필 오케스트라의 흔들리지 않는 힘의 원천인 듯하다. 결국 일의 수준은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간의 합의 수준이라는 교훈을 확인한 셈이다.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선옥필자 소개
이선옥은 축제적 삶, 문화예술과 교육을 키워드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하자센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에서 일해 왔다. 최근 숨고르기를 위한 휴식 및 재충전모드로 전환 중이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