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관에서 전시기획을 하는 큐레이터들에게 ‘독립권’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일까. 전시 주제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작가선정, 공간연출 계획, 디스플레이, 도록 구성 및 디자인, 옥내외 홍보물 제작 등에 이르는 세부사항을 진행하는 동안 큐레이터는 수없이 많은 결정의 순간을 맞게 되고, 그에 대한 노련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그 판단력은 개인 큐레이터의 선천적,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감각과 경험, 그리고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얻게 되는 노하우, 주변인들의 조언 등에 의해 차별화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미세한 감각의 차이들이 한 전시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 분위기, 관람자의 편이, 전시 기획의도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결정적 요인이 된다.

상황이 이쯤 되면, 전시기획자의 ‘독립권’ 내지는 ‘독재권’이 순순히 보장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기관을 대표하는 전시에 대해 조직 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생겨나고,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 또한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을 표명하는 때에는 마지막 순간 전시기획자가 자신의 계획을 일정 부분 수정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에 따른 개입은 심미적 가치 판단에 대한 다양한 헤게모니의 작용에 따른 것으로, 젊은 기획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난관이다.

기획자로서 신념을 지키는 일과 서로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연한 태도로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여 절충하는 일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문제는 기획전의 주제나 작가선정 리스트에 대해 외부로부터 크게 개입이 있을 경우, 전시의 전반적인 맥이 흐트러지며 그 전시는 긴장감을 잃게 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해지기 마련이다. 추천은 약이지만, 강요는 독이다.

전시에 참여하며 자신의 전력을 소모하는 작가들과 전시기획자 사이의 우정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속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최상의 경우 그들의 신뢰가 더 깊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반드시 프로젝트의 전체 완성도를 위하여 전문영역에 대해서는 서로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시를 진행해 나갔을 때 가능하다. 만일 서로의 영역에서 입장 차이를 확인하게 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전시의 더 낳은 결과를 위해서 편한 관계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작가가 큐레이터의 전문가적인 작업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개인적 관계가 존재하던 간에, 그것은 일방적이거나 또는 착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만큼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미묘한 헤게모니 싸움의 연속으로, 상당한 결단력과 유연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작업이다.

반대로, 그 어떤 조언에도 눈과 귀를 막고 있는 큐레이터의 기획이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일방적인 것일지 또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한 기획자와 일을 하게 되는 참여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그저 수동적으로 이끌려 전시기획 의도를 재해석할 의지조차 갖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관람객들에게 해석의 여지가 없는 소통 불가능한 전시로 전락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전시기획자는 영화감독처럼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공동으로 일을 하지만 모든 반대적인 압력이 있더라도 최종편집은 영화감독에게 맡겨지는 것과 유사한 위치에 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전시가 가능할 것이다.

<유클리드의 산책>, 'City_Net Asia 2009'한국세션<양날의 검> 필자가 기획한 전시 전경




조주현

필자소개
조주현은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Sotheby';s Institute of Art)에서 현대미술이론(Contemporary Art)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응노미술관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매니저를 역임하였고,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유클리드의 산책》《배를 타고 가다가 - 한강르네상스, 서울》《SeMA 2008 - 물로 쓴 슬로건》《반응하는 눈: 디지털 스펙트럼》《미술시네마: 감각의 몽타주》&lsquo;City_net Asia 2009&rsquo; 등을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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