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극단 중에는 순회공연을 위해 창립된 극단이 있다. ‘웅가 릭스’가 그것이다. 이 극단은 유엔과 유네스코에서 선언한 문화다양성 선언이 있기도 훨씬 이전에 ‘누구나 공연을 보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스웨덴 정부는 그것을 정부의 이름으로 지원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 만들어진 국립극단이다. 그야말로 이 극단은 스웨덴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공연을 한다. 공연장이 아니어도, 학교 강당, 지역 공동체의 작은 공간 어디서든 공연 보따리를 풀어놓고 공연을 한다. 복지국가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스웨덴이라지만 참으로 멋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점차 그 의식이 생겨나고 국가의 지원도 많아지고 있다. 많은 공연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순회공연을 (기금이나 국가의 보조 없이) 하고 있다는 반갑고 기분 좋은 소식도 많이 들린다. 필자가 소속된 극단도 해마나 봉고차에 짐을 싸들고 어디든 달려간다. 운이 좋아 기금을 받으면 더 많은 곳으로 좀 더 편하게, 혹 기금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딱 5군데를 선정하여 그 지역의 지인들에게서 숙소와 식사를 빌어먹으며 그렇게 해마나 순회공연을 다닌다.

순회공연을 다니다보면 정말 가슴 벅찬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한번은 경남 합천에서 야외 공연을 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극단이 와서 공연을 한다니까 그 궁금증이 산 너머까지 펴져서 농민들이 경운기와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달려오시던 풍경이 기억난다. 또,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문화단체와 여러 사람들과 만나서 오붓한 이야기도 나누고 술잔도 돌리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참 많았다. 올해도 그런 기분 좋은 기억을 가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에서 주최하는 ‘2009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문화순회(사계절문화나눔)사업’에 공모하였다. 그리고 운이 좋아 사업주체로 선정되어 순회공연을 좀 더 편하고 의미 있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극단 북새통의 소회지역 순회공연



누구나 공연을 볼 수 있는 권리!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사업설명회에서부터 난항이 시작되었다. 먼저 선정된 단체들과 정산과 관련한 설명회가 있던 날이었다. 모든 서류를 인터넷과 컴퓨터로 올려야하며, 공연하는 동안에 문화나눔사이트에 접속하여 사진을 직접 업로드하고 홍보활동에 주력하라는 등의 여러 가지 행정적 주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공연단체들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상으로 올려야하는 행정서식과 정산 절차와 방식은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젊은 세대인 나조차도 어렵다고 여겨졌다. 급기야,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연단체 한 분이 책임자 대면을 요청했고 마침 나왔던 담당부서 책임자에게 직접 실연해 보도록 했다. 책임자는 대답을 회피했고, 사후 개별적 연락을 통해 절차들이 수정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연수혜 단체 선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본래 이 사업은 농어촌 이장이나 농어촌 단체로부터 신청을 받아 공연지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집행이 늦춰지면서 애초의 계획 대신 각 단위 농협을 통해 공연을 배분하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순회공연을 갈 때는 모든 것을 극단에서 스스로 해야 했다. 지역을 선정하고 혹은 신청 받은 지역에 답사를 통해서 이곳에 우리가 순회공연을 가야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아내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지역 사람들도 공연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공연의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배분된 공연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시키니까 하는 공연으로 전락하였다. 해당 단위 농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공연을 배분하는 예술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술위 또한 선정한 공연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검토 없이 공연을 배분하여 해당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수 없는 장소적 한계에서도 공연을 강행하라고 하는가 하면, 해당 농협에서는 공연은 조합원들과 농협 주거래 고객을 대상을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였다. 순간 순회공연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은 사라지고 관변예술단체가 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공연을 다니면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의 많은 문제점들이 극복되었다. 더구나 우리 극단은 운이 좋았다. 배분된 농협 중에서 신종인플루엔자와 공연장 섭외 불능을 이유로 공연을 포기하면서 두 군데를 자발적으로 선정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충북 보은에서는 마을 이장님의 신청으로 마을 회관에서 묵으면서 주민들과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었고 충북 괴산에서는 지역에서 귀농을 실천하시는 분들의 신청을 받아 마을주민과 진정한 마을잔치를 준비할 수 있었다.

둘째는 마을잔치 비용 및 부대행사다. 모두 좋은 의도이고 취지이다. 그러나 우리 극단이 순회공연 할 당시 공교롭게도 두 단위 농협에서 농협장을 선발하는 지역선거기간이었다. 한번은 공연 전 사전 부대행사에서 함께 진행을 맡은 단위 농협 담당자가 “사전 불법선거에 해당하지만 ○○○을 소개한다” 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마치 국가에서 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 한명의 정치적 실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열정과 꿈은 예술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늘 시행착오가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열정이 없는 시행착오는 발전은 실패일 뿐이다. 정책이 수립될 때도 열정으로 그리고 그 사업을 진행할 때도 열정으로 그리고 평가는 냉정하게 해야 실패가 아닌 성공적인 실험과 도전이 될 수 있다. 소외지역 순회공연 사업이 이러저러한 이름으로 계속되는 것을 보면 ‘누구나 공연을 볼 수 있는 권리’는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가치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가치들이 그렇듯이, 많은 이들의 열정과 도전이 필요하다. 열정과 도전은 예술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순회공연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행정가들의 열정과 도전을 꿈꿔본다.





남인우

필자소개
남인우는 극단 북새통의 대표를 맡아 고전분투하고 있다. <가믄장아기>를 통해 삼천리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다가 우연히 해외에까지 나가 보따리 공연을 하고 있다. 3년 전부터 &lsquo;판소리만들기 자';의 상임연출도 겸하면서 전통의 현대적 수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연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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