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화랑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다양한 전시회의 열기는 사회 전반적인 불황의 기운을 무색하게 한다. 인기 있는 몇몇 대관 전시장은 대기 수요가 만만치 않다. 반면 대관 수요가 거의 없어 유지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공간들도 여럿 본다. 화랑가의 전시장들도 ‘빈익빈, 부익부’ ‘쏠림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유명 시인은,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현대인이 시집을 사지 않고 심지어 시를 읽지도 않을수록 더욱 더 시를 써야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최근 화랑가의 열기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희망적이라 하겠다. 현명한 자는 ‘∼때문에’라기보다는 ‘∼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 개막한 수많은 전시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전시가 있다. 조용히 개막하여 폐막을 앞둔, 《인터날래》(inter-nale, 2월 9일-3월 7일, 성곡미술관 별관 전관)가 그것이다. 정치·제도화된 전시의 전형인 비엔날레를 패러디한 타이틀의 이 전시는 미술관 인턴십을 마친 인턴들에 기획된 이색(?) 전시로, 이른바 현장실습 보고전 성격의 인턴 기획전이다. 《인터날래》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인턴들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혹은 불합리한 인턴 제도와 억압기제로부터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어 하는 이들의 바람이 단적으로 드러난 제목으로 이해된다.

<인터날래>전 메인 이미지
《인터날래》전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행해지는 미술관, 경력인정대상기관에서의 인턴십, 인턴프로그램, 인턴십 문화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어느새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고, 잊고 있었던 그들의 애환을, 인턴들을 둘러싼 왜곡된 기제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현행 인턴십에 대한 개선과 제도화 작업이 필요함을 여러 창구를 통해 꾸준하게 지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변화는 없어 보인다. 근무 여건과 처우 등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각 경력인정대상기관 모집 공고에는 뜨거운 지원 열기로 넘쳐난다. &lsquo;&sim;에도 불구하고&rsquo;라는 적극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거쳐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비장한 현실이다. 미래의 대한민국 미술(관)문화를 이끌고 나갈 동량들이기에 이들에 대한, 프로그램에 대한 제도적 관심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미술관 인턴십은 미술관에서 미술관 실무와 현장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갖춰 나가는 대표적인 전문 현장실습프로그램이다. 미술관이라는 전문기관에서 ';museum profession';, 즉 전문가들로부터 전문성을 익히고 확인하는 특별한 기회이다. 자신의 적성과 인내도 스스로 확인해보는 기간이다. 그러나 나름의 전공과 학위, 인성, 경험 등을 갖춘, 이른바 고급인력인 이들은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구직, 실업의 상태로 돌아간다. 대상 기관, 즉 교육자 및 피교육자들이 현장교육프로그램의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인턴십에 대한 몇몇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공적인 차원의 인건비 지원과 각 미술관별로 마련한 개별 지원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앞서 말한 인턴기획전의 경우가 대상기관이 마련하고 지원하는 개별 프로그램 중 하나일 것이다. 미술관 현장실습을 마친 인턴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실습한 각 부문, 예를 들면, 전시, 교육 등의 성과를 시각적으로, 물리적으로 확인하고, 미술관에, 관람객들에게, 스스로에게 보고하는 일종의 현장실습 결과보고 프로그램이다. 졸업논문 내지는 졸업전시인 셈이다. 미술관은 이들 결과보고프로그램을 위한 일정 비용을 실비로 지급한다. 전시기획인 경우, 인턴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장에서 익힌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전시개념 도출에서부터 예산편성, 결과보고에 이르기까지 전시기획 전 과정을 직접 치러낸다. 물론 전시 이외에도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 개막, 홍보, 작가와의 대화 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동료와 함께 치러낸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을 가진 자들이 지속적으로 현장에서 실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제도적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구직, 실업 상태의 일정 기간 유예에 불과하다.

유쥬쥬<쥬쥬의 봄>(2010) 제공 성곡미술관현재 기관별 1인에 한하여 지원되고 있는 청년인턴제도, 즉 공적 인턴 지원프로그램을, 인턴이 아닌, 인턴십을 수료한 수료생 중에서 정규 큐레이터로 선발된 사람에게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현재의 청년인턴 지원책은 비슷한 자격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나머지 인턴들과의 급여에 있어 심한 불균형을 보인다. 그리고 각 대상인정기관들의 운영 일정과 엇박자를 내는 경우도 있어 아쉽게도 대상기관이 청년인턴제도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인턴십이 끝나면 끝나버리는 한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미술관이 정규 큐레이터로 채용한 인턴에 한해 미술관의 추가 지원을 전제로 급여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국공립미술관이 큐레이터를 전문계약직으로 일정 기간 채용하는 것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가령 3년으로 정하면 인턴에서 정규 큐레이터로 일하게 된 사람은 최소 3년 동안 공적 지원과 미술관의 추가 지원을 받아 근무를 하게 된다. 업무의 연속성과 인턴십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업무 참여를 이끌고 미래 비전을 심어줄 수 있다.

미술관 입장에서는 인턴십을 통해 전문성과 인성이 검증된 인력을 최소의 비용으로 확보하여 업무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매 기수마다 채용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꼭 필요한 일정 인력을 큰 부담 없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그 경력으로 다른 기관으로의 이직을 고려할 수 있다. 아니면 해당 미술관에 정식 입사를 하고 또 후배 인턴에게 그 기회를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 허점은 보완하여 나가면 될 것이다. 공적 지원의 명분을, 미술관의 업무 효율을, 인턴들의 비전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턴들에게도 &lsquo;희망&rsquo;이라는 단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자.

<인터날래>전, 박자현 작 제공 성곡미술관



박천남

필자소개
박천남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동 대학원 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을 거쳐 현재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 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술관문화연구소 소장, 한국큐레이터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6년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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