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가 대부분 관주도로 이루어지거나 관의 지원금이 재정구조의 결정적인 요소가 되면서 축제는 점차 원님의 하사품이거나 지방정부의 꽃이요, 민간주도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나 방향은 관의 평가에 대하여 해바라기가 되어간다. 그리하여 민은 거의 축제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서 축제의 덕목은 참여가 아닌 행정이 되었다.

얼마 전 부산문화도시네트워크가 주최한 ‘시민참여형 지역문화축제를!’이라는 제하의 공개워크숍이 있었다. 역시 ‘참여’가 문제였다. 아니 소망이었다. 여러 사례가 제시되었으나 모두가 아슬아슬하다. 무엇이 참여를 만드는가? 아니 무엇이 참여를 가로막고 있는가? 난 축제의 원형인 굿의 구조를 살피자고 했다. 어찌해야 굿이 성공하는지가 아니라, 어찌해야 굿이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기층문화로서 굿의 구조는 풀이와 놀이의 절묘한 결합에 있다1). 풀이는 문제풀이(solution)이다. 원형으로 돌아가 신화를 이야기하고, 신탁을 전한다. 그리고 놀이는 이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 놀이가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지금 이 순간 그 신탁 또는 풀이의 내용을 몸으로 누리게 한다. 놀이는 우리의 몸이 직면하는 현실을 들어올려(昇華) 신적 세계와 만나게 한다. 그러니 놀이는 단순한 쾌락의 추구를 넘어 정교한 방식을 요구한다.

굿이 풀이와 놀이의 절묘한 결합이라면 축제는 그 중에서 놀이의 요소가 강조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도 오랜 시간 문제풀이에 함몰되어 축제와 같은 놀이조차도 행정이라는 풀이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관은 물론 민조차도 놀이의 자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서 돈이라는 자원이 놀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참여는 실종된 것이다. 문제는 이제 생존에 목마른 풀이의 시대를 넘어 삶의 풍요를 맛보고자하는 욕망의 시대, 곧 놀이의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도 많은 축제가 만들어진 데는 지자체가 지니는 정치적, 행정적 필요만큼이나 놀이의 시대가 품고 있는 욕망의 반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대는 놀이의 경험을 잃어버린 시대이기도 하다. 이 이율배반적인 진공을 메우는 절묘한 길을 찾아야한다.

놀이의 문화는 갑작스럽게 준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크게 구분하면 놀이에는 규칙성과 환상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규칙의 정교함은 특히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환상성을 만드는 일은 예술가들의 참여에 의해 가능한 영역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장소성이다. 우리의 생활공간에 환상을 부여하는 것이다. 마을굿의 장소 역시 ‘동네의 거리’라는 생활의 기억이 충만한 곳이었다. 마을굿의 여러 장치는 일하러 나가고, 빨래하고, 악다구니를 쓰기도 하던 일상의 공간을 신이 임재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삼덕동인형마임축제

내가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삼덕동인형마임축제는 동네의 구석구석을 극장으로 만드는 놀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을축제다. 우리집 마당이나, 주민자치센터, 동네 초등학교 연못이 극장이 되고, 골목과 도심과 연결되는 길은 퍼레이드 공간이 된다. 주제 설치가 한옥 지붕에 올라가거나 큰 느티나무에 걸린다.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문예회관이나 백화점 같은 데 안 가도 되요. 우리 동네가 극장이니까요.” 이 아이들이 커서 정주할 곳을 선택할 나이가 되면 ‘생활공간이 곧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도 당연하게 지니게 되리라. 내 기억이 충만한 공간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는 오늘의 지역축제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주민을 축제의 주인으로 만드는 절묘한 길이다.


조성진

필자소개
조성진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하고 부천, 평택, 대구 등지에서 지역문화운동을 펼쳤다. 대구시민생명축제, 대구거리마임축제, 다무포고래맞이축제 등을 디자인하고 추진했으며 현재도 삼덕동인형마임축제의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적인 몸짓을 지향하는 마임극단 빈탕노리의 대표이자 사회적기업 희망자전거제작소의 바이크씨어터 단장이기도하다. 한국마임협의회장과 지역문화네트워크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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