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부는 광안리를 마주 보는 주택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날이 풀리는 즈음부터는 비치의자와 파라솔을 들고 모래사장에 앉아 책을 읽곤 한다. 해수욕장 개장 전인 6월, 빠르면 5월부터 볕 좋은 날은 그렇게 한다.

문제는 해수욕장이 개장한 다음날 생겼다. 해변에 일제히 노란색 파라솔이 일렬로 들어섰다. 관리 천막이 생기고 안전요원의 망루도 생겼다. 아이들을 위한 간이풀장도 생기고 놀이기구도 들어왔다. 물론 이 모든 시설들은 유료다.

우리 부부는 여느 날과 같이 비치의자와 파라솔을 펼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완장을 찬 남자가 다가와 개인 의자와 파라솔을 치워줄 것을 요구했다. 광안리 해변에 있는 유료시설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희,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게 있었는데요. 해변을 사들이신 것도 아니잖아요.” 라고 항의해도 소용없다. 무슨 단체인지, 수영구청으로부터 해변사용권한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대로 파라솔을 접고 유료 파라솔을 이용할 것인가 잠시 갈등하다가, “나는 노란색 파라솔이 싫어요.” 라고 말하고 버텼다. 완장을 찬 분은 우리가 파란색 파라솔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모두 노란색 파라솔인데, 하나만 파란색 파라솔이면 보기 좋지 않습니다. 돈을 받지 않을 테니 노란색 파라솔을 이용해 주세요.”

광안리 해변에서 치러진 필자의 결혼식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때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 전 해 영화제로부터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부산문화를 알려야 하니, PIFF광장에 [보일라]를 배치해 달라는 부탁을 (아마도 비공식적으로) 받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해 국제영화제 때는 미리 만부를 더 찍었다. 물론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그러나 그해 PIFF광장의 어떤 매대에도 [보일라]를 올려놓을 수 없었고, 사람들을 동원해서 직접 나눠주는 해프닝을 겪었다. 이유인즉슨 한 무료일간지에서 PIFF광장의 무가지 배부를 독점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무료일간지의 담당자가 걸어 온 한통의 전화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사람들이 [보일라]를 내가 돈을 주고 산 매대에 올려놓으니 ‘이 쓰레기들을 해결해 주거나 돈을 지불하시오’”라고 말했다.

해변으로 시작했으니 해변으로 마무리해 보자. 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광안리 해변에서 전통혼례로 치렀다. 매일 산책하는 해변에서, 시야가 트인 바다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고, 양가의 반대가 좀 있었으나 무사히 뜻을 관철시켰다. 그런데 또 문제는 해변사용에 관한 것이다. 구청의 허락이 더뎌서 청첩장을 들고 직접 구청을 찾아 허락을 받아내고 해변사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해운대구는 관광객 유치차원에서 해운대해변에서의 전통혼례를 무료로 지원한다.) 누구도 광안리 해변에서 결혼식을 올린 적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쩌면 위의 세 가지 사례가 모두 한 사람의 이상행동 탓일 수도 있겠다. 파라솔 사용은 보기 좋게(?) 노란색 파라솔 밑으로 들어가면 될 것이고, 축제에서 무가지를 뿌리는 행동은 돈만 드는 일이니([보일라]는 광고가 없는 잡지니 광고효과는 없다.) 안하면 되고, 결혼식은 남들처럼 식장에서 치루면 될 일이지 말이다. 그러나 [보일라]를 만들고 있는 나로서는 해변에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꽂히기 원하고, 지역축제에 지역잡지가 배부되길 바라며,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행사는 가까운 곳에서 치러지길 바란다. 그것이 바라보기 좋은 문화가 아닌 제대로 누릴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시민의 권리가 아닌가.

다시 광안리 해변으로 돌아가자면, 이곳은 관에서 지원하는 수많은 축제가 열리고 해변 곳곳에 세계작가들의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짐작컨대 전국적으로 가장 문화적인 명소다. 이런 문화적인 명소에 파란색 파라솔을 허하지 않는 것이 당최 말이 되는가.


강선제

필자소개
강선제는 [문화잡지 보일라VoiLa](무가지)의 발행인이다. 한 마리의 늙고 불쌍한 개와 네 마리의 능청스러운 고양이 그리고 관리하기 힘든 한 남자와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 있는 다락방이 달린 집에서 살고 있다. 거리축제 ‘재미난 복수’를 진행했었고, 이야기와 그림이 있는 《스토리전》 등의 전시기획을 가끔 한다. 생업으로 편집디자인을 하며 다수의 책과 잡지들을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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