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전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이 열리는 6월로 들어섰습니다. 하긴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공연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휩쓸었던 신종플루, 화창한 축제의 봄을 앞두고 터진 천안함 침몰 사고와 그 이후 한반도 위기설, 하도 많이 찍어야 해서 공부가 필요했던 선거까지.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 4년마다 전 세계를 축구로 이어주는 2010 월드컵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올 대한민국 상반기에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아내야 하는 공연기획자들에게는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상황들의 풀세트라 할 만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와 한국의 4강 진출은 도로 교통까지 마비될 정도로 전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거리마다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붉은 악마들이 질주하였고 모든 매체들은 월드컵과 관련된 우리의 일상을 발굴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몇몇 공연장들은 월드컵 경기중계를 함께 관람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공연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저 또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진행하면서 크게 감소한 공연장 관객을 점검하고 밤에는 승리에 취한 축구관객들로부터 밤새 야외무대를 지켜야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식사하는 식당에서나 라디오로부터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 정보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막연한 공포와 좌절감은 있었지만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즐기는 공간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0년, 7시간 정도의 시차가 나는 남아공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앞두고 저는 2002년 월드컵의 기억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6월 공연을 피하라, 하다 못해 우리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 만큼은 절대로 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경기 일정이 나오기 전, 이미 대부분의 6월 공연은 세팅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7시간의 시차를 믿고 방심했었지만, 현지시간으로 낮 경기 일정이 잡히면서 공연시간과의 중복으로 한 회 공연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따져 보면 월드컵뿐만이 아닙니다. 2002년의 기억이 너무 큰 나머지 월드컵에 자동 경계를 하는 것이지, 월드컵과 올림픽은 2년마다 번갈아 열립니다. 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의 스포츠 이벤트를 비롯해 올 상반기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들로 늘 경계경보가 발령됩니다. 이런 상황마다 경계하고 어떻게 잘 피해갈 것인지 또 같은 고민을 합니다. 매번 고민의 결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왜 공연은 그러한 축제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요? 왜 매번 예기치 않은 상황마다 심하게 흔들릴까요?

뿌리 깊은 나무니 샘이 깊은 물이니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긴 너무 귀에 익고 익어서 굳은살이 생겨날 지경이니까요. 제가 일하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는 기획공연의 브랜드를 영문(AnSan Arts Center) 이니셜을 따서 ‘아삭’(ASAC)으로 했습니다. 6월의 열정에 취한 우리들에게 삶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아삭한 공연, 올 6월에는 ‘ASAC 비타민 4종 세트’로 월드컵 축제에 동참하려 합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공연이 관객들에게 어떠한 가치로 자리매김하느냐는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레저와 휴식의 가치로만 한정되기에 공연예술의 역할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공연의 가치를 어떻게 획득하고 자리매김 시킬까에 대한 고민과 소통. 이것이 6월 월드컵에 대처하는 공연기획자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직 약간은 수동적이고 보완적인 위치인 비타민보다 한 단계 필요불가결한 가치를 우리 삶 안에서 획득해 나가기 위해 이번 6월을 즐기면서 배워보렵니다. 그리고 4년 후 월드컵, 아니 시시때때로 툭툭 등장하는 여러 가지 악재를 함께 품고 풀 수 있는 건강한 공연예술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 광장에 대거 모인 사람들




조형준

필자소개
조형준은 대학 연극반 활동을 계기로 극단 아리랑에서 공연일을 시작했다. 이후 다수의 연극과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등을 기획, 제작했고,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지원팀장으로 일한 바 있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기획공연 관련 업무를 거쳐 현재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사업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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