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6월 2일, 인사미술공간에서《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우리는 ‘미디어버스’라는 이름으로 참여 작가가 되었고, 작가도 아니면서 ‘작가’로 데뷔한다는 농을 치기도 했다. 준비과정 내내 ‘역시 전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우리한테는 작가적 상상력이 부족해!’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고, 주변인들에게 우리는 작가가 아님을 토로했다. 거창한 작업도 아니었지만 설치를 마친 후 우리는 동네 선배를 불러 단출하게 술자리를 가졌다. 선배는 5년 정도 알고 지내던 사이라 거침없이 나의 활동에 대해 훈수 두는 걸 좋아한다. 고맙게도 나보다 더 내 앞길을 걱정하며 계획을 짜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대뜸 “사람들이 너보고 은근히 잘 버티고 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현재 나는 ‘미디어버스’라는 소규모 출판사와 오피스이자 서점인 ‘더 북 소사이어티’를 상수동에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알고 지낸 사람들이야 나를 에디터나 서점 주인으로 알겠지만, 명함에 남겨진 지난날의 나는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사무국장,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램 어시스턴트, 제로원디자인센터 큐레이터, 사무소 직원, 스페이스 크로프트 실장 등으로 길게는 4년, 짧게는 6개월 정도 일했으며 그외 한시적으로 참여한 몇몇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살아왔다. 심지어 프로젝트가 취소되어 한 장도 뿌려보지 못한 명함들이 수북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에디터라는 타이틀이었지.

「어반 드로잉스」(리슨투더시티 발행)출판기념 토크 더 북 소사이어티
미디어버스는 소규모 출판사로 소위 팔릴만한 컨텐츠를 뺀 나머지를 취급하고 대부분이 비공식적인 출판물이지만 때론 전문서적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그리고 더 북 소사이어티는 이런 책들과 출판문화를 소개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엄연히 미디어버스는 출판사로, 더 북 소사이어티는 서적 소매업으로 등록된 개인사업이다. 서점은 올해 3월에 개점했다. 2007년 미디어버스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처럼 사람들은 왜 서점을 만들었는지를 자주 묻는다. 뻔하디 뻔한 이유로는 ‘책이 좋아서’ ‘이런 소규모 출판물을 유통할 곳이 필요해서’ ‘미디어버스의 작업실이자 창고가 없어서’ 등이 있으나, 개인적으로 ‘미디어버스’와 ‘더 북 소사이어티’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던 두 파트너가 교차하는 접점이자 독립기획자들의 연대라고 생각한다. 3년 전 우리는 각각 디자인과 영화 쪽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었고, 미디어버스는 직장에서 해소되지 않는 욕구와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공통의 취미활동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에디터로 둔갑시켰고 출판업을 자주적이고 비전문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며 출판을 매개로 작은 사건을 조직하는 독립(때론 출판) 기획자가 되었다.

얼마 전 지하철을 기다리며 문득 스스로에게 ‘과연 난 잘 살고 있을까’란 질문을 던졌다. 독립기획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지원도, 소속도 없이 홀홀단신으로 세상에 버려진 기분? 물론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도 하지만 독립기획자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야만 한다. 나는 대안공간이나 갤러리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독립큐레이터가 되면서 활동이 뜸해지거나 홀연히 사라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더군다나 작금의 문화예술지원사업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독립기획자로 살아남기란 녹록치 않다. 물론 나 역시 변신술에 능하지도 않으면서 영화, 미술, 디자인, 출판 등 제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타이틀로 9년간 버텨왔다. 지금의 나는 앞서 말했듯이 기획자에서 에디터로, 그리고 서점 대표이자 자영업자로 변모하고 있다. 겨우 막 시작한 더 북 소사이어티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게 많은 곳이지만, 우리는 이곳이 미디어버스의 활동을 온전히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길 기대한다.

더 북 소사이어티 전경간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나는 인사말로 “잘 살고 있었어?”라고 묻기를 좋아한다. 다들 어떻게 무슨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가 정말 알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것은 매번 바뀌는 나의 좌표를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또 다른 변신을 거듭하며 어디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지를 상상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자신의 위치란 상대적으로 얻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와 같은 독립기획자들을 보면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다들 잘 살고 계십니까?”





구정연

필자소개
구정연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과정 미술이론과에 재학 중이다.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큐레이터로 일했고, 현재 소규모 출판사 ‘미디어버스’와 ‘더 북 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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