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3년 교토에서 <바다와 양산>이라는 한일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있어 한국 연극인과 함께한 최초의 작업이었습니다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프로젝트가 그 후로 지금까지 한국과 해온 다양한 작업의 &lsquo;싹&rsquo;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다양한 사업으로 발전되어 왔으니까요. 또한 그러한 작업들이 놀랄 만큼 달라진 한일관계를 반영해 왔던 것 같습니다.

<바다와 양산> 프로젝트는 교토를 근거로 활동하는 극작가 마츠다 마사타카의 대표작을 일본인 스태프, 캐스트에 의한 일본버전과 한국인 스태프, 캐스트에 의한 한국버전, 두 가지로 제작하여 연속 공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2000년 오픈한 교토아트센터교토시가 운영하는 시설로 초등학교였던 건물을 신진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의 공방과 연습실로 재활용하는 문화예술 창조거점의 &lsquo;확산하는 아시아&rsquo;라는 기획사업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런데, &lsquo;아시아&rsquo;라는 키워드 안에서 왜 &lsquo;한국&rsquo;과의 작업을 선택했을까요. 계획을 가다듬고 있던 2001년은 아직 월드컵 한일공동개최 전이었고, 일본의 한류붐도 일기 전이었습니다. 한일관계가 더욱 가까워지리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두 나라는 지금보다는 훨씬 먼 존재였죠. 연극 쪽에서는 월드컵 공동개최에 발 맞춰 한일 공동제작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즈음으로 연극으로 양국의 이해증진에 일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바다와 양산>은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기획됐던 거죠.

하지만 문화교류가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전개되면서 많은 연극인이 이미 다양한 교류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lsquo;시도해 본다&rsquo;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는 단계에 와 있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희가 택한 목표는 두 나라의 관객들이 &lsquo;재미있다&rsquo;고 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lsquo;공동제작&rsquo;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lsquo;일본문화&rsquo;나 &lsquo;한국연극의 지금&rsquo;을 강조하는 작업은 이제 그만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나라 국민이 납득할 만한 질 높은 텍스트를 고르고, 각국의 스태프, 캐스트에 의해 기본적으로는 자국 관객이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을 제작하고 일본판과 한국판을 연속공연하여 양국의 &lsquo;지금&rsquo;을 느끼게 하자고 생각했죠.

예상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잘 진행됐습니다. 작품을 통해 양국 연극의 &lsquo;지금&rsquo;이 보인 것은 물론이요, &lsquo;흥미로운 기획&rsquo;으로 작품 자체가 평가를 받았던 점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습니다. (한국버전은 그 후 서울에서 2회 공연되고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7년 후인 2010년, 라는 교토 극작가 다나베 츠요시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다시 공동제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lsquo;진정한 의미의 공동제작&rsquo;을 중심 컨셉으로 잡았습니다. 이 컨셉은 <바다와 양산> 때보다 어려운 과제였던 것 같습니다.

공동제작의 파트너인 극단 노뜰은 우연히도 2003년 <바다와 양산> 초연 때 교토예술센터에서 &lsquo;확산하는 아시아&rsquo;의 다른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그 때는 노뜰이 지향하는 바와 제가 생각하는 연극 사이에 거리감을 느꼈지만, 우연히 교류가 재개됐던 2008년, 노뜰의 활동에 굉장히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노뜰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 아티스트와도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작품을 키워왔고 저 역시 2003년 이후 다양한 사업을 통해 신체표현의 중요성과 아시아적 가치관과 철학, 관점을 새롭게 돌아봤고, 그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왔던 거죠. 전에는 상당히 벌어져있던 거리가 세월이 쌓이면서 줄어들더니 운명적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연습장면, 작업에 참여한 양국의 스태프와 배우들<Someone on a Journey> 사진제공 극단 노뜰

한일 관계도 7년 동안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서로를 알자는 차원에서 어떻게 연계, 협력할까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저는 양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서로 통할 수 있는 공통적인 무언가를 함께 찾는 작업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바다와 양산>에서는 일본팀과 한국팀이 별도였지만 이번에는 혼성팀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과 한국 파트너인 노뜰이 가진 것을 잘 끌어내 시너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한 융합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공통인식-아직 막연해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기는 어렵지만-과 가치관을 서양적 가치관이 중심인 세계에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서로의 국가에 스태프, 배우가 한 달 남짓 장기체류하며 리허설과 공연을 가졌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어려웠지만 언어나 문화를 뛰어넘어 공동작업은, 특히 일본에서 참가한 젊은 배우나 스태프에게는,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유한 시간이 아직은 짧았던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이번 작업은 첫걸음일 뿐 앞으로가 관계를 더욱 성숙시키고 강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 세상에 내보일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은 마이너한 표현수단이지만, 전파를 통하는 미디어와 달리 자유와 기동력이 있습니다. &lsquo;국민&rsquo;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죠. 언젠가 세계에 내보일 수 있는 강도(强度)의 &lsquo;아시아적&rsquo; 작품, 물론 아시아의 가치관이나 아이덴티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이곳,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lsquo;좋은 점&rsquo;을 냉정하게 제시하는 작품을 만들어 세계에 선보이는 꿈을 꾸어 봅니다.




번역 _ 고주영



스기야마 준

필자소개
스기야마 준은 배우 출신으로 1994년부터 연극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며 정기적 연극시연회 모임인 C.T.T.를 창설, 연 6-11회 정도의 공연을 올리고 있다. 2000년 문화청 지원으로 프랑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교토의 소극장 &lsquo;아틀리에 게켄&rsquo;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아틀리에 게켄을 운영하는 NPO법인 게켄의 부이사장 겸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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