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에는 언제나 ‘돌발 변수’가 있다. 미리 짜놓은 판을 흔드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축제기획자에게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축제의 ‘진맛’은 오히려 이런 돌발 사건에서 우러나지 않을까? 사회학자 로제 카이와는 ‘놀이라는 것은 규칙 설정과 규칙 일탈이라는 상반된 에너지로 이뤄진다’고 했다. 그럼 이들을 융합해 신나는 놀이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예술축제도 비슷할 것이다.

첫째 사례. 필자는 지난해 가을 ‘제1회 부산걷기축제’의 프로그래머를 맡았다. 항도 부산을 상징하는 옛 중앙부두에서 출발해 ‘원도심’을 거쳐 송도해변에 이르는 경로로 구성했다. 12km가 넘는 길 곳곳에 각 장소의 특성을 살리는 음악, 연극, 춤 공연과 시각작품들을 배치했다. 이른바 장소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 개념을 도입한 셈이다. 걷기축제라는 취지에 따라 상설무대를 만들지 않았다. 대여섯 시간에 걸친 이동에 맞춰 그때그때 공연을 열고 해체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였다. 시민들은 너무 빨리 걸었다. 지나가는 버스가 느리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예상보다 2시간 일찍 종착지에 닿았다. 원래 해질 무렵 해변을 배경으로 썰물중창단 공연을 계획했는데, 날이 너무 밝았다. 프로그래머로서는 정말 난처한 일이었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달랐다. 오히려 11월 중순이 봄날 같다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중창단과 함께 노래하고, 오카리나 연주에 거듭 앙코르를 외치며, 전통 놀이패와 더불어 춤을 추며 해변을 누볐다.

2010 부산국제무용제 BIDF 카페둘째 사례. 필자는 지난 6월 부산국제무용제(BIDF)에서 ‘BIDF 카페’를 기획·진행했다. 11개 나라에서 온 춤꾼들과 관객의 대화 프로그램인데, 올해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회의적이었다. 공연준비에 바쁜 춤꾼들이 무슨 시간이 있겠냐고. 또 공연을 보러 온 시민들이 대화를 좋아할 턱이 있겠냐고. 하지만 의외였다. 해외팀들이 모두 찾아와 시민들과 질펀하게 얘기를 나눈 것이다. 시민들은 “춤이란 이런 거구나” “얘기를 듣고 나니 춤이 뭔지를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는 규칙과 일탈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축제의 의미와 재미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예술축제가 예술 공연만으로 그친다면, 축제로서는 불완전하다. 규칙 일탈의 요소가 필요한데, 그것은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시민참여를 가리킨다. 보통 예술축제에는 이런 요소가 적다. 그래서 재미가 적은 것이다. 그럼 예술축제는 어떻게 일탈을 ‘조장’할 수 있을까? 일단 마당을 마련하자. 그 다음 일은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무책임한 얘기라고? 먼저 걷기축제의 규칙은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역사, 예술, 자연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반면 이 규칙에서의 일탈은 도시생활 자체에서 벗어나 생생한 존재감을 즐기는 것, 또 고정된 경로나 장소특정 예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예술을 누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위한 마당이 마련되자 즉각 새로운 예술적 향유가 발생한 것이다.

한편 무용제의 규칙은 좋은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국제무용제의 폐막식에는 춤꾼과 관객들이 모두 한국가요에 맞춰 함께 춤을 췄다. 거기서 돌발적인 소통이 일어났다. 춤 예술가들이 ';막춤';을 따라 추기도 했으니까. 앞으로 예술축제의 본마당 곁에 이런 난장들이 많이 열리면 좋겠다. 예술의 일상화와 일상의 예술화라는 창조적인 순환은 여기서 태어날지도 모른다.




이지훈

필자소개
이지훈은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부산대학교 강사이자 철학과 미학을 융합하는 예술비평ㆍ기획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존재의 미학』(이학사, 2008), 『가까운 문화 멀어진 미학』(도서출판 물레, 2007), 『예술과 연금술』(창비, 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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