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파브릭(UFA Fabrik)’은 국내에는 대안공동체, 생태마을, 친환경에너지, 대안학교 등으로 더 많이 알려진 마을이다. 하지만 우파 파브릭은 생태공동체나 대안학교이기 이전에 예술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예술가 공동체다.
우파 파브릭 전경
우파 파브릭 전경
출처 www.ufafabrik.de
태양열 지붕
짚풀 지붕
ⓒ 경기창작센터
우파파브릭 국제문화센터 / NUSZ의 프로그램 안내 게시판
▲▲ 우파파브릭 국제문화센터
▲ NUSZ의 프로그램 안내 게시판
ⓒ 경기창작센터
ⓒ 경기창작센터
ⓒ 경기창작센터

독일의 베를린 남쪽 시내 중심가 포츠담 템펠호프(Potsdam Tempelhof)에 생태적이며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우파 파브릭(UFA Fabrik)’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은 국내에는 대안공동체, 생태마을, 친환경에너지, 대안학교 등으로 더 많이 알려진 마을이다. 하지만 우파 파브릭은 생태공동체나 대안학교이기 이전에 예술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예술가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1979년 우니베르줌영화사(Universum Film Aktien Gesellschaft, UFA)의 촬영소를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독일영화의 본거지였던 우파 파브릭이 문을 닫게 된 것은 베를린 장벽의 설치 때문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체제가 구축되면서 촬영소로 사용되던 서베를린의 우파 파브릭과 현상소로 사용되던 동베를린이 서로 나뉘면서 공동작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30년 가까이 버려져 냉전체제의 주요한 상징이 된 이 공간에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된 배경은 동독 영토 내에 섬처럼 고립된 베를린에 거주자를 확보하려는 서독 정부의 노력과도 맞물린다. 당시 서베를린에 거주하면 징집의무를 면제해주는 제도 덕분에 당시 68혁명 이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다르게 생각하고 삶을 변화시켜라”(To think another way and change life)라는 선언과 함께 “우파의 두 번째 삶”(Das Zweite Leben der UFA)를 기치로 내세웠던 그들은 유럽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삶과 노동의 프로젝트 ‘베를린 우파 파브릭 국제 문화센터’(Internationale Kulturcentrum ufaFabrik Berlin)로 문을 열었다.

도심 속 오아시스, 삶과 노동의 프로젝트

현재 30명의 거주자와 160명의 협력자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 공동체가 독일의 킬 하쎄(Kiel Hasse)와 함께 생태마을 공동체1)로 불리는 데에는 이들의 거주공간이 태양열 및 지력을 활용한 대체에너지, 천연 재료를 활용한 건축, 자연 발효 화장실, 태양열 목욕탕, 수초를 이용한 폐수 정화 시스템, 쓰레기 재활용, 빗물을 활용한 식수 시스템, 옥상정원 등을 도입해서 운영하는 문화생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생태마을 공동체가 정부와 시의 에너지, 식수, 폐수 시스템에서 독립하여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들은 도심 한 가운데서 꿋꿋하게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국내 생태 마을 공동체가 전원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사람들은 우파 파브릭을 ‘도심 속의 오아시스’라 부른다. 이와 같은 표현은 단순히 그들이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도시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안적인 삶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보기 드문 공동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4년에는 유엔이 '최고의 생활환경 개선 실천프로젝트'(Best Practice Project for improving the Living Environment)로 우파 파브릭을 지정하기도 했다. 우파 파브릭에는 연간 20~30만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정치인, 기업인,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 청소년들이 포함되는데, 방문객들은 대안적인 삶을 배우기 위한 워크숍에 참여하거나 공연 및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석해서 우파 파브릭의 운영철학을 배우고 새로운 삶의 공동체적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생활문화프로그램부터 예술가 협업까지

지난 30년간 우파 파브릭에는 다양한 조직들이 결성되었다. 공동체자립센터(NUSZ), 국제문화센터(IKC), 자유학교(die Freie Schule), 빵집과 신형화목오븐 제과점, 유기농가게, 게스트하우스, 어린이서커스학교, 삼바학교 테라 브라질(Terra Brasilis), 올레 카페(Das Cafe Ole) 등이다. 이와 같은 조직의 구성형태를 보면 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공동체 자립센터(NUSZ)는 이웃들을 대상으로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건강, 가정문제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가족 지원 서비스, 탁아소와 학교, 상담과 갈등중재 등을 진행하며, 지역 커뮤니티와 다른 지역들을 위한 정기적인 마켓과 축제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 시설에서는 유아와 청소년, 노령 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들에게 동양의 무예를 배우거나 요가 같은 스포츠, 명상, 성악, 미술, 요리 등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전문예술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이해하고 수행하기 위한 생활문화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국제문화센터(IKC)는 문화와 문화교류를 지원한다. 그리고 국제교류 및 지역교류를 바탕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 축제 등을 개발한다. 그래서 우파 파브릭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데, 공연 또한 어떤 계층의 문화적 취향을 특별히 반영하지 않는다. 무대에 올려지는 공연은 연극, 카바레쇼, 바리에떼Variete, 서커스, 음악 등의 공연이 제공되던 일종의 버라이어티 극장쇼, 음악, 어린이 서커스와 가족 프로그램 등 매우 다양하다. 공연장은 객석 180석, 300석 규모의 다목적 홀을 갖추고 있고 야외에 펼쳐진 노천극장에도 400석 규모로 식사나 만찬을 함께하는 행사들도 기획하고 있다. 우파 파브릭의 게스트하우스에는 전 세계에서 방문한 예술가들, 워크숍 참석자들이 머문다.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파 파브릭 공동체와 관계 맺은 다양한 부류의 방문객들이 늘 끊이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이곳에는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창작공간, 연습실, 조명 및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공연기획자, 안무가 등의 협업을 위한 전문 스태프들이 상주하고 있어 언제든지 원활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국제문화센터에서는 국제적인 교육과 페스티벌, 문화행사와 문화예술 관련기관들과 교류하고 있는데, 젊은 예술가들의 경우, 빠른 시일 내에 국제적인 무대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술의 혁신과 도시에 대한 사고의 전환

자유학교(die Freie Schule)는 어린이 농장(Kinderbauernhof)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삶을 배우고 자율적으로 실천한다. 어린이 농장에는 말, 돼지, 오리, 토끼 등 총 40여 종의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다. 어린이 농장에서는 1년에 두 번 300~400여명 어린이가 참석하는 가족 페스티벌과 200~300여 명이 참석하는 연등축제 행사를 진행한다.


또한 우파 파브릭은 기술학교도 운영하고 있는데, 생태건축 전문과정과 크노벨 도르프 학교(Knobeldorff Schule)에서는 다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동안 500명이 넘는 청년들이 벽돌공, 목수, 미장공, 난방설비, 냉방기술, 구조기술, 전기기술 등을 습득하고 졸업하였다. 이 학교에서는 그동안 우파 파브릭 공동체가 고민해 왔던 생태적 거주의 문제를 교육하고 여러 곳에서 자신의 형편에 맞게 발전시키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파 파브릭은 2010년 올 한 해 동안 ‘도시속의 볏짚’(Stroh in der Stadt)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볏짚과 진흙을 활용한 벽돌에 관한 워크숍과 이와 같은 재료를 활용한 생태건축 심포지엄이 계획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우 구체적이며 전문적이고 학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발제를 진행할 뿐 아니라, 생태적 건축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업체들도 참가하고 있다. 볏짚을 활용한 건축 기술의 혁신을 유도하고 있는 이 심포지엄에는 콘크리트 블록의 도시에 길들어져 있는 우리의 경직된 사고를 전환하도록 요청한다.

삶을 견인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예술

우파 파브릭은 30년간의 시간을 통해서 형성된 문화예술 생활공동체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은 도시화하고 있는 지금의 추세에 역행해 산업화 이전의 전통적인 삶으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유토피아적인 예술가 공동체는 우리에게 ‘지금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문명의 토대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이것이 지속될 때,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화와 예술이 관조적이고 유미적인 상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견인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주목하게 한다.

1) 스코틀랜드 핀드흔에서 1995년 결성된 GEN(Global Eco-Village Network)는 전 세계 40개국 160여개 생태마을 공동체가 연결되어 있다.



백기영

필자소개
백기영은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을 전공하였다. 영상미디어 작가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으며,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거쳐,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디렉터를 역임하였고, 현재 경기창작센터 학예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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