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는 보기에 따라 '혁명'일 수도 있고, 그저 '데모'였을 수도 있다. 정말 학생들이 '건강하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기르기를 원한다면 그저 그때 어떤 일이 있었고, 그때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혹은 행동하지 않았는지,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나는 국사선생님이 두 명 있다. 먼저 중학교3학년 때, 수업내용과는 별도로 당시 군사정권의 권력자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지 열변을 토하던 선생님. 아이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독백처럼, 정말, 지금 되돌아보니, 관객 없는 연극의 배우처럼 스스로에게 도취된 모습으로 쉽게 흥분하곤 했었다. 그렇게 흥분 잘 하는 성격은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몽둥이질로 표현되기도 했고, 또 쉽게 도취되는 성격은 그런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이건 너희들의 장래를 위한 매야’ 라는 것을 전해주려는 듯 엄숙한 표정으로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 표정이 ‘가식’이었다는 건 내가 성인이 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또 한 명의 국사선생님, 이번에는 고등학교다. 매 수업시간 마다 칠판 가득 필기를 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판서를 하던 선생님.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이는 안경(KBS 이병순 사장이 취임 무렵 끼고 있던 안경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을 쓰고, ‘수업시간에 기침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며 감기 걸린 아이를 복도로 내쫓았던 선생님. 그 선생님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본인도 지루하고 학생들도 지루했던 수업을 매일 하고 사는 그 인생은 또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이었을까 안쓰러워진다.


역사, 우리 자신의 자아를 버려야

역사가 아주 재미있는 과목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두 선생님이 도움을 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역사교과서 논쟁을 생각해보면, 참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그 논의에 정작 그 교과서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는 것이고, 그런 배려 없음의 뿌리에 학생들의 역사관이 고작 교과서 하나에 좌우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음을 생각하면 답답해지기도 한다.

4.19는 보기에 따라 ‘혁명’일 수도 있고, 그저 ‘데모’였을 수도 있다. 그건 개인이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할 문제이지, 강요할 수 있는 것도, 강요를 한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정말 학생들이 ‘건강하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기르기를 원한다면 그저 그때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에 연관된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행동을 했던 것 아니겠냐고, 그것의 성격을 규정하기 전에 우선은 그 때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혹은 행동하지 않았는지)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목이 문제라면 그냥 ‘1960년 4월에 있었던 일‘이라고만 달면 될 테고... 그런 이해에 대한 관심은 없고 무조건 판단부터 하고 그것을 주입하고자 하는 싸움인 것 같아서, 지금의 역사교과서 논쟁이 불편하다.

독일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미완의 책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몇 세대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탐구하려면 우리는 자신의 자아를 버려야만 한다” 고 했다. 그는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라는 아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은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두 명의 국사선생님은 위선적이었거나, 무책임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학생들을 아껴주지 않았다. 2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위선과 무책임이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고, 여전히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말을 믿어야 하는 걸까?



김현우

필자 소개
김현우는 2002년도에 EBS에 입사하여 <시네마천국>, <애니토피아>, <인터뷰다큐 - 성장통> 등 연출을 맡아왔다. 현재는 <지식채널e>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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