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를 위한 제도, 행정을 위한 행정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동시에 어느 일정 부분 정책으로서의 구획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는 현장과의 유연한 대입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 과정이 다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정책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단 한 나라의 수많은 정책들 가운데 문화가 차지하는 부분이 있을 테고 그 안에 문화정책이 위치해 있다.

올해로 개원 1주년을 맞은 국립예술자료원(원장 신일수)은 지난 3월,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개원기념 세미나와 예술사 구술 총서『예술인·生』 출판 기념회를 마련했다. 본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산하인 아르코예술정보관에서 독립해 예술정보수집 및 기록에 관한 전문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국립예술자료원은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본원이 있고, 동숭동에 분원이 있다. 분원에서는 연극 분야 중심의 서적과 영상물, 관련 잡지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번에 발간된 예술사 구술 총서『예술인·生』은 국립예술자료원이 2003년부터 추진해온 사업으로 공연 예술을 비롯해 문학과 조형, 건축을 아우르며 전 분야의 예술가들의 생애를 구술을 채록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예술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증언에 의한 현장성을 살리고 각 분야의 전문 편집자들이 참여해 방대한 주석을 덧붙였다. 예술관련 서적에 대한 국내 출판계의 관심과 수요층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예술 총서를 지속적으로 발행할 수 있는 창구는 국립예술자료원이 유일하다고 본다.

한편 현장 예술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예술사적 의미가 부여되는 방대한 양의 각종 정보와 자료들을 수집하고 축적하는 국립예술자료원의 역할은 제공되는 정보의 질과 양만을 제한해 놓고는 따질 수 없는 잠재적 의미와 가치가 깃들여 있다. 적어도 학술적 역량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포함해 예술 자체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품고 있지 않으면 예술정보에 대한 가치를 알아채기 힘들다. 국립예술자료원의 장미진 사무국장을 만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일찍이 공연예술행정가로 알려진 그녀가 예술계 현장인으로 자리했다. 연구와 정책에 이어 자신의 또 다른 전문영역을 계속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장미진 사무국장, 그녀의 터닝 포인트가 궁금하다.

문화예술계 입직 과정

장미신

예술계에 대한 관심은 십대서부터 있었다. 고등학생 때 본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월간〔레일로드〕에서 문화담당 기자로도 일했다. 그때 만난 여러 예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입직(?)을 고려하게 되었다. 극장 과 같은 공연계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예술의전당에 입사지원을 준비하기도 했다.

사실 친구가 이미 예술의전당 1기생으로 뽑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해는 입사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결국 한국문화관광연구원(구,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시험을 치르고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예술의전당에 가면 눈길이 머물고 현장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었다. 계속해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꿈이 이루어지질 않을까. 지금은 예술의전당 옆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원에서 근 10년을 일한 기반으로 예술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고 본다. 사실 예술을 좋아했지만 실제 예술계 현장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이후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문화예술계에 대한 나름의 객관적인 시선과 정책에 다가갈 수 있었다.

현장과 정책, 만족할만한 공존이 가능할까

사실 문화예술정책은 현장보다 앞서 예술가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지는 제안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간 많은 예술가들이 현장과 제도에 대한 여러 문제 제기들을 했지만 실제 대안을 창출하는 것은 정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술이 비정형화된 개인의 움직임에서 창출된다면 정책을 비롯한 행정은 일정한 틀 속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다만 이 틀이 탄력적일 필요는 있다.

일전의 어떤 강의에서 들은 말이다. 닫혀있는 제도와 완성되어지는 제도의 차이를 두고 성을 쌓는 사람과 정원을 만드는 사람의 예로 비유한 것이다. 성은 빨리 짓게 되고 그 형태를 통해 근사하게 보일 수 있는가 하면 한번 완성이 되면 그 형태를 바꾸기도 어렵고 확장하기도 힘들다. 반면 정원은 오랜 시간을 들여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야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이를 가꿔야지만 정원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정원을 넓히는 것은 가능하다.

제도를 위한 제도, 행정을 위한 행정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동시에 어느 일정 부분 정책으로서의 구획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는 현장과의 유연한 대입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 과정이 다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정책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단 한 나라의 수많은 정책들 가운데 문화가 차지하는 부분이 있을 테고 그 안에 문화정책이 위치해 있다. 그 전체 맥락에서 문화정책이 이해되었으면 한다.

정책과 예술가의 관계는 &lsquo;애증&rsquo;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다. 예술가가 있기에 정책이 자리할 수 있지만 정책에 대한 현장과의 논의과정은 소모적이며 비판적인 담론이 많다. 나 역시도 젊었을 때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젊은 사람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lsquo;비판한 만큼 닮아가며, 욕하면서 배운다&rsquo;에 동감한다. 이제는 비판은 적게 하려 한다. 대신 늙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노력한다.

자기충전에 인색하지 말자

20년 가까이 공연계에서 활동하면서 사실 진이 빠지고야 말았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정책보좌관으로 일할 때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11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결국 몸이 배겨나지 못했고 한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국립예술자료원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사실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자신의 템포감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 일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영역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예술가 구술 총서
예술가 구술 총서 예술가 구술 총서
예술가 구술 총서

하지만 30년간 공연을 볼 때마다 모아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도서관의 책들로 둘러쌓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새로운 영역을 통한 현장경험을 통해 살아있는 정책 구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래서 근무를 시작했고 무엇보다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일주일에 2권의 책은 완독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딱 2주 동안만 이를 실천했다. 여기서도 일이 많다 보니 책읽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최근에는 어려운 책들보다는 비교적 쉬운 책들을 보게 된다. 개중에는 경제 분야 서적이나 정치, 축구에 대한 책들도 있었다. 모두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분야였다. 이전보다도 더 다양한 영역을 들여다보면서 의도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지난 고민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만 내 머릿속의 용량을 비울 수 있고 새롭게 충전할 수가 있다. 정말이지 이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이 분야의 일을 재밌게 하려면 천천히, 긴 안목을 가지고 호흡했으면 하는 것이다. 100세까지 일한다는 계산이 필요하며 고여 있지 말고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때 뇌의 용량을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한다. 진이 빠지면 누구라도 별 수 없다.

20세기 예술경영인이 21세기를 살아나가는 방법

장미진

흔한 표현으로 예술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는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이 말을 다시 되짚어보고 있다. 우리 속담 중에 &lsquo;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rsquo;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참 듣기 거북하다. 나라면 사촌의 사촌이 땅을 사더라도 기뻐할 것 같은데 말이다. 정책과 예술가에 대한 논쟁이 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나마 이 분야에서는 하고 싶은 얘기를 표출할 수 있는 솔직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시대적 갈등 요소가 예술계도 적용이 된다고 본다. 이러한 예술계의 분위기도 바뀌었으면 한다. 지금보다 서로에 대한 입장을 양보하고 조정한다면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예술의 존재의미를 되묻게 되는 것은 예술 자체를 부정하고픈 마음에서라기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 이를테면 초심으로 돌아가 예술과 이에 대한 지원정책과의 역할과 관계 등을 생각하고 싶다.

사실 20세기를 살아온 예술경영인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시대변화의 속도감이나 인식의 차이 등이 그렇다. 나조차도 대학생인 딸 딸 딸 딸 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통 불가능한 지점에 와있다고 본다. 그럴수록 더더욱 냉철한 자기진단과 사회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예술만이 존재하는 사회는 의미가 없다. 예술과 사회의 공존이라는 맥락 속에서 예술 본연의 가치가 더욱 의미가 생길 것이다. 물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깊게 한 곳에 매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 속에 가라앉아 움직이는 잠수정의 세상에 갇혀있고 싶지는 않다. 변화무쌍한 바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T"자형의 전문가이고 싶다.

아이팟을 사용할 엄두는 안 나기에 대신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20세기 사람이다.



장미진: 독문학과 공연예술사를 공부했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한동안 근무했다. 대학에서 연극론과 공연예술법제정책 등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한국의 공연예술정책」이라는 단행본을 비롯해 관련 연구 논저를 출간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기관에서 지원사업과 정책에 대한 자문, 평가 등의 일을 했다. 최근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이제야 해야 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 외의 다른 영토가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낙향하면 제주도에 살고 싶어 한다.


염혜원 필자소개
염혜원은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지식ㆍ정보파트에서 웹진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byeyum@gokam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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