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에 대한 관심은 십대서부터 있었다. 고등학생 때 본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월간〔레일로드〕에서 문화담당 기자로도 일했다. 그때 만난 여러 예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입직(?)을 고려하게 되었다. 극장 과 같은 공연계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예술의전당에 입사지원을 준비하기도 했다.
사실 친구가 이미 예술의전당 1기생으로 뽑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해는 입사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결국 한국문화관광연구원(구,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시험을 치르고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예술의전당에 가면 눈길이 머물고 현장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었다. 계속해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꿈이 이루어지질 않을까. 지금은 예술의전당 옆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원에서 근 10년을 일한 기반으로 예술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고 본다. 사실 예술을 좋아했지만 실제 예술계 현장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이후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문화예술계에 대한 나름의 객관적인 시선과 정책에 다가갈 수 있었다.
현장과 정책, 만족할만한 공존이 가능할까
사실 문화예술정책은 현장보다 앞서 예술가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지는 제안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간 많은 예술가들이 현장과 제도에 대한 여러 문제 제기들을 했지만 실제 대안을 창출하는 것은 정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술이 비정형화된 개인의 움직임에서 창출된다면 정책을 비롯한 행정은 일정한 틀 속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다만 이 틀이 탄력적일 필요는 있다.
일전의 어떤 강의에서 들은 말이다. 닫혀있는 제도와 완성되어지는 제도의 차이를 두고 성을 쌓는 사람과 정원을 만드는 사람의 예로 비유한 것이다. 성은 빨리 짓게 되고 그 형태를 통해 근사하게 보일 수 있는가 하면 한번 완성이 되면 그 형태를 바꾸기도 어렵고 확장하기도 힘들다. 반면 정원은 오랜 시간을 들여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야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이를 가꿔야지만 정원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정원을 넓히는 것은 가능하다.
제도를 위한 제도, 행정을 위한 행정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동시에 어느 일정 부분 정책으로서의 구획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는 현장과의 유연한 대입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 과정이 다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정책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단 한 나라의 수많은 정책들 가운데 문화가 차지하는 부분이 있을 테고 그 안에 문화정책이 위치해 있다. 그 전체 맥락에서 문화정책이 이해되었으면 한다.
정책과 예술가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다. 예술가가 있기에 정책이 자리할 수 있지만 정책에 대한 현장과의 논의과정은 소모적이며 비판적인 담론이 많다. 나 역시도 젊었을 때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젊은 사람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판한 만큼 닮아가며, 욕하면서 배운다’에 동감한다. 이제는 비판은 적게 하려 한다. 대신 늙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노력한다.
자기충전에 인색하지 말자
20년 가까이 공연계에서 활동하면서 사실 진이 빠지고야 말았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정책보좌관으로 일할 때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11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결국 몸이 배겨나지 못했고 한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국립예술자료원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사실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자신의 템포감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 일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영역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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