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는 1900년에 설립된 꽤 명성 높은 교향악단이다. 그 이름도 쟁쟁한 유진 오만디, 리카르도 무티, 볼프강 자발리쉬,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를 거쳐 현재는 샤를르 뒤투아가 상임지휘를 맡고 있는, 소위 미국 5대 오케스트라 중의 하나다. 우리와도 인연이 많다. 우리 교민이 많이 사는 도시를 본거지로 하기도 하지만 내한연주도 잦았다. 가깝게는 지난 해 봄에 내한한 바 있다. 그런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가 파산보호신청을 내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우리 식으로 보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당연히 재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2009년 회계연도(2009년 8월 31일자로 종료되는 회계연도다) 기준으로 재정적자가 1천 7백만 불이 넘었다. 같은 해 지출 예산이 4천 7백만 불 정도니 약 36%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해에 비해 비용은 거의 그대로인데 수입이 줄었다. 외신 또는 외신을 인용한 국내 보도에 따르면 관객의 감소가 주원인이란다. 그러나 2009년까지 3년 동안 연주를 통해 번 돈은 크게 줄지 않았다. 불과 7% 정도가 줄었을 뿐이다. 전체비용에 비교하면 2% 정도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에 총수입이 40% 가까이 준 것과 비교하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케스트라의 주요 활동도 특별히 위축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정기연주회 100여회를 포함하여 230회가 넘는 연주활동을 벌였다. 전해와 비슷하다.

오케스트라측이 작성해서 미국 국세청에 제출한 재정보고서(소위 ‘990양식’에 따른 것이다)를 분석해보면 오케스트라 재정의 악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부금의 감소고 또 하나는 자산운용수입의 감소다. 기부금은 전해에 비해 반 토막이 났고 투자수입을 포함한 기타수입은 전해 실적의 6%에 불과했다. 두 해의 기타수입 차가 1천 3백만 불에 달했다. 이에 비해 정부보조금은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그 비중이 4~6%로 낮기 때문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파산보호신청 결정을 알리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홈페이지

파산보호신청 결정을 알리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홈페이지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은 미국의 다른 대형 예술단체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같은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뉴욕필하모닉이 기록한 적자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보다도 많은 1천 8백만 불 이상이었고,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는 1천 5백만 불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아마도 가장 큰 폭의 적자의 주인공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일 것이다. 무려 7천 1백만 불이다. 전해는 3천 5백만 불 흑자였으니 1년 만에 약 1억불이 줄었다. 엄청난 재정반전이다. 연간 지출은 3억불에 조금 모자라는 수준으로 조금 늘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프로그램 수입은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늘었다. 이에 반해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로 기부금 수입이 많이 줄었고 특히 자산운용에서 큰 손해를 보았다.

이처럼 미국의 대형 예술기관들 중에 일부가 갑작스럽고 급격한 재정 위기를 맞은 것은 2008년을 기점으로 세계를 위기로 몰았던 미국발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전반적인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레전드급에 해당하는 예술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경제 상황에 따라서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뒤를 따를 예술단체가 적지 않을 수 있다.

지난주 금요일 필자가 진행하는 토론수업(예술경영과의 학부 1학년 전공수업이다)에 한 학생이 이 이슈를 들고 왔다. 디트로이트심포니오케스트라가 6개월간의 파업을 끝내고 복귀한다는 뉴스와 함께였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지 토론하고 싶어 했다. 무려 6개월간 파업을 이어간 오케스트라가 있고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현실. 분명히 우리와 많이 다르다. 큰 공연단체 대부분이 공공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소위 기초예술로 분류되는 분야는 특히 그렇다. 미국과 한국의 공연단체가 사는 처지나 방식도 다르다.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최근 유럽 여러나라들에서도 공공부문 예산 감축으로 예술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대체로 유럽은 공연단체의 재원에서 재정지원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유럽과 미국의 중간쯤 되는 모델을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는 둘 다 신경이 쓰인다. 시장을 중시하고 자생력과 경쟁력을 강조해온 지난 몇 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재정은 사업과 운영의 기반이고 전제조건이다. 재정의 안정성은 우리에게도 큰 소망이고 영원한 고민거리다. 예술경영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펀드레이징(또 다른 주제로 관객개발 등이 있다) 아니던가.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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