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로열티 시스템 안에서 좋은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다음 작업을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그렇게 예술가들이 제 몫을 받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금 내가, 내가 속한 회사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황금연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잔뜩 찌푸리고 빗방울마저 오락가락하던 오전의 대학로, 예의 그 시원한 웃음과 함께 그녀가 등장했다. 주말 낀 3박 5일 이탈리아 출장의 유일한 추억이라는 스카프를 날리며. 오전에 인터뷰, 한시에 미팅이 줄줄이 잡혔다면서도 “오늘 휴가에요” 한다. 어버이날이었던 전날 저녁엔 당장 메일 확인하라는 회사의 연락을 받아, 삼겹살집 불판 앞에서 태블릿PC로 확인해 처리했다고, 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분명한 질문, 명확한 행보

그녀의 캐릭터상, 무대 위 배우를 지망했다거나, 사춘기 시절 처음 본 무대의 매력에 빠져서, 라는 좀 흔한 시작을 기대했지만, 대학 입학 전에는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다. “대학이라는 곳은 실용학문이 아닌 기초, 순수학문을 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문학과 철학에 근간을 두되, 성격에 잘 맞게 활동적인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하던 차, 입시 직전, 독서실 매점에서 실기시험이 없는 연극과에 대한 정보를 입수, 그 길로 연극에 입문하게 된다. 연극과에서 지내다 보니, 연출이나 예술가는 타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만 해도 공연기획,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조차 익숙하지 않았고, 관련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니 다른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했던 것이 기획일이었다.

박민선

졸업 후 바로 유씨어터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초짜가 극장 도면을 들고 뛰며 문화불모지였던,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청담동에 극장을 열고 기획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후 프리랜서로 <5월의 신부> 제작팀에서 제작수업을 받았고, 서울연극제, 의정부음악극축제 등의 축제와 대표가 예술가가 아니면서 대학로에서 유일하게 공채로 사람을 뽑던, 본인 표현에 따르면 &ldquo;꿈의 직장&rdquo;이었던 동숭아트센터까지, 공연계의 굵직굵직한 현장에서 7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내달리면서, 그녀가 갖게 된 고민은 한 가지. &ldquo;예술가에게 예술작업은 &lsquo;직업&rsquo;이니 수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수치나 예산 이야기를 하면 예술가들은 꺼려했다. 연출을 전공한 기획자로서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측면과 상업적이고 경영적인 측면을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을까&rdquo;였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영국으로 떠나 문화창조산업(Cultural & Creative Industries)을 공부했다. &ldquo;영국에서 공부하며 얻은 답은, &lsquo;정답은 없다.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될 수 없다&rsquo;는 것이었다. 문화산업에 대해 가장 먼저 고민하고 정책을 펼쳐온 영국에서조차, 예술과 산업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는, 각 영역-극단, 대기업, 비영리조직 등-마다 다르다는 결론을 내고 있었다. 이걸 모른다고 갑갑해할 문제가 아니구나, 어떤 면으로 굉장히 마음이 편해졌다.&rdquo; 그리고 &lsquo;공부&rsquo;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알고 있거나 애매모호한 부분에 대해 진단하는 과정이고, 접근법이나 관점을 넓히는 것이라는 나름의 정의도 얻고 돌아왔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곳은, 그녀가 보기에 공연, 문화를 산업으로서 바라보고 접근하는 유일한 곳이었던 CJ엔터테인먼트(현 CJ E&M)였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변변한 휴가도 없이, 주말을 출장과 회의에 기꺼이 양보하며 5년을 공연제작을 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성격만큼 시원하게 이야기를 들으니 그녀의 삶, 혹은 커리어는 어찌나 명확하고 분명한 목표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이렇게 주저함이 없어도 되나, 싶다.

콤플렉스와 불안을 이기다

&ldquo;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rdquo;

그녀는『보통의 존재』라는 에세이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ldquo;연극과에 진학하고부터 엄청난 자격지심과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오리엔테이션 첫날 밤, 모든 신입생들이 왜 연극을 전공하고 예술을 하려는 사람인지를 너무 잘 알겠더라. 나만 빼고. 그리고서는 첫 작업으로 부조리극 공연을 하는데 모두들 너무나 즐거워하는 거다.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조연출인 나뿐이었다. &lsquo;예술심리학&rsquo;이라는 수업을 듣는데, 나는 정말, 당최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는데, 나머지 학생들은 신나게 토론하고 질문하더라. 그 길로 학교를 나와 한 학기 가까이 자취방에 틀어박혀있었다.&rdquo;

박민선
박민선 박민선

아무 것도 할 일 없이, 오로지 콤플렉스와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시달리다가, &lsquo;어떻게든 졸업만 하자&rsquo;는 심산으로 학교로 돌아왔고, 이후 &lsquo;기획자&rsquo;라는 예술가와는 다른 능력을 요하는 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뜻한 바 있어 생업을 버리고 서른셋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떠난 영국이라는 타지에서, 아시아 여성이, 비자문제로 원하던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내일, 혹은 다가올 시간들과 마주해야 했을 때 역시, 막막함과 초조함에 휩싸여 있었다.

그때 그녀를 지지해준 유일한 것이, 그녀가 기획자의 길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멘토로 삼고 있는 선배다. &lsquo;빛나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고, 지금 헤매는 자,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rsquo;라는 말로, 충분히 헤매도 되는 때라고, 따뜻한 편지와 이메일로, 밑반찬으로, 담요로 그녀의 키다리아저씨 역할을 해줬다. 자신이 엉터리 초짜일 시절부터 막무가내로 준 &lsquo;믿음&rsquo;과 예술가를 서포트하는 방법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여주고, 기획에 있어서는 엄청난 내공을 가진 달인이면서도 결코 내색하지 않는 겸손이라는 덕목까지 일깨워준 멘토의 지지와 격려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평생을 두고 가져갈 자양분이 되었다.

&ldquo;예술가는 타고나야 하는 것이라는, 경험에서 오는 콤플렉스는,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lsquo;예술에 대한 로맨티시즘&rsquo;이라 정의하고,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쓰며 극복했다.&rdquo;

유씨어터 전경
컬처스페이스 엔유 전경 박민선 팀장이 개관작업에 참여한 두 극장

▲▲유씨어터 전경
▲컬처스페이스 엔유 전경
박민선 팀장이 개관작업에 참여한 두 극장

&ldquo;공연산업의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rdquo;

&ldquo;지금의 회사는 우리 공연이 산업화되기 위해 필수적인 시장의 확대를 위해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아시아에서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그런 부분이 내가 생각했던 문화산업에 대한 가치와 맞기 때문에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화산업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 기본이다. 열 개중 아홉 개가 실패해도 한 개가 크게 성공하면 나머지를 메울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시장규모로는 그렇게까지 큰 성공을 거둘 수가 없다. 그래서, 회사가 문을 닫지 않으려면, 살아남아 아홉 개의 프로덕션을 다시 시도해 보려면, 라이선스나 성공이 보장되는 작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라이선스가 관객 저변을 확대한 것 역시 사실 아닌가.

우리가 작업하는 작품들의 경우, 민간극단이나 소위 대학로 작품과 비교했을 때 예술적 성취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는 &lsquo;다른&rsquo;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rdquo;

대학로에서 오래 활동하던, 유능한 기획자가 대기업에 들어갔기 때문인지, 들어갈 당시부터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단다. 아쉬움이기도, 한탄이기도, 혹은 배신감이나 비난이었을지도 모를 그러한 얘기에 자신이 그간 경험하고 고민했던 긴 이야기를 한 명 한 명에게 해줄 수 없어 답답했던 모양이다. &ldquo;대기업에 들어갔으니 지원을 해 달라&rdquo;는 주변의 민원에 대한 답변도 이어진다.

&ldquo;각각의 조직이 할 수 있는 지원의 형태나 방식은 모두 다르다. 예술가를 선정해 지원금을 주는 것은 공공기관이나 비영리조직인 대기업의 문화재단의 미션이다. 내가 속한 회사는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역시 다른 형태의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공연의 경우, 수익모델의 핵심은 로열티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CJ가 만든 <김종욱 찾기>처럼, 합리적인 로열티 시스템 안에서 좋은 작품을 쓴 작가나 작곡가에게 장기적으로 로열티가 돌아가고, 그 예술가들이 이런저런 생계형 작업에 매달리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다음 작업을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그렇게 예술가들이 제 몫을 받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금 내가, 내가 속한 회사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가장 큰 역할이라는 생각이다.&rdquo;

회사에서 말하는 &lsquo;그쪽 출신&rsquo;으로서, 다른 사례가 없는 대기업의 공연사업부에 속한 직원이자 공연제작팀을 이끄는 팀장으로서 여전히 고민이 많다고. 기업 안에서 부서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비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팀이 갖춰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ldquo;성공적인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조직 안에서 선순환구조의 좋은 샘플을 만들어놓는 것, 다시 말해 좋은 작품을 개발해 선보이는 것이 여기 있는 동안의 내 꿈이다. <김종욱 찾기>의 경우 회사의 작품이지만, 내가 직접 관여한 작품은 아니니까. 그러한 선례를 만들면 한명의 프로듀서로 돌아가, 이번엔 프로듀서의 로열티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로 작업하고 싶다.&rdquo;

완벽하기보다 창의적이도록

극단과 축제 등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대리로 들어가 과장, 지금은 일곱 명의 직원을 이끄는 팀장이 되었다. 기업논리로 보면 당연한 절차지만, 공연계에서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포지션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실, 안타깝게도, 그리 흔하지는 않다. 기업에 들어가고, 팀의 리더가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

&ldquo;공연이 끝나고 쫑파티를 해도 다음날 무슨 일이 있어도 아홉시에 출근해야 한다는 점?(웃음) 그리고 엄청나게 보고가 많다. 모두의 공유와 합의를 거쳐 프로젝트가 결정되는데, 그렇게 되면 결정내용이 굉장히 무난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맞나 하는 고민이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팀원들이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보고하고 점검하고 회의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애초에 본인이 생각했던 아이디어에 대한 열정도, 책임감도 점점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열정과 책임감과 본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 있다는 건데, 이러한 행정적인 과정 때문에 그것을 퇴색시켜 버리면 모순되지 않나. 조직의 시스템과 창의성을 지켜줄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정말 고민이다. 완벽한 것보다 얼마나 창의적인가가 내게는 더 중요하다.&rdquo;

또 전화가 울린다. 휴가라면서 끊임없이 전화를 받고 업무지시를 받고 내린다.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ldquo;연극을 해서 그런지 그 사람 캐릭터를 이해하면, 그냥 이해되는 게 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rdquo;

햇볕 좋은 날 동네를 산책하고 차를 마시는 것이 취미고, 이것만큼은 절대 침해당하고 싶지 않은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ldquo;창의적인 사람들이 게으른 휴식을 좋아한대요.&rdquo; 그나마 오늘은 날이 흐려 모든 게 용서가 될 지도 모르겠다.



박민선: 대구 출신으로 중앙대 연극학과에서 연출을 전공했으며, 유씨어터(1997~2000), 서울변방연극제(1999~2000, 2003), 서울연극제(2000)에서 기획 및 홍보 등을 담당했으며, 2000년 의정부음악극축제의 사무국장을 지냈다. 2006년 영국 킹스칼리지(King's College Univ. of London)에서 문화창조산업(Cultural & Creative Industries)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CJ엔터테인먼트 (2011년 CJ E&M으로 통합)에 입사, 공연장 설립 및 연극, 뮤지컬, 발레 등의 기획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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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영 필자소개
고주영은 2006년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현재는 국제사업부 지식ㆍ정보 파트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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