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은 “드디어 봄이 끝났다”고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봄이면 봄(혹은 가을이면 가을), 좋은 계절에 열려야 하는 운명 탓에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한 시즌을 보내야 하는 축제 스태프들 말이다.

작년부터 ‘넌버벌 거리예술축제’를 표방하며 열리고 있는 하이서울페스티벌 역시 지난 5월 10일 올해 행사를 마쳤다. 그리고 조동희 서울문화재단 축제기획팀장은 본인의 일곱 번째 축제를 완수했다.

“축제요? 일곱 번밖에 안 했어요”

다섯 번의 축제는 ‘과천한마당축제’에서 보냈다. 조동희 팀장은 2005년 1월, 과천한마당축제로 공연계(정확히는 한국의 공연계)에 입문하고, 5년간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거리예술’이라는 장르를 알리는 데, 유럽의 좋은 거리예술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리고 우리나라의 거리예술가를 키우고, 거리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매진했다. 춘천마임축제와 공동으로 거리예술 작품의 공동공모를 통한 제작지원 프로그램도 안착시켰고(2004년 시범공모로 시작), 서울프린지네트워크에서 공연된 작품을 과천에 초청하는 신진거리예술가지원프로그램도 만들었다(2008). 거리예술에 대한 홍보, 조사연구도 지속적으로 펼쳤고, 국제공동제작(2006, 2007, 2009)을 통해 세 편의 거리극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본 축제를 과천에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리예술은 공간이나 관객성향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별로 없었던 표현방식을 한국관객에게 선보이고, 해가 거듭되면서 국내팀들도 그 영향을 받아 다양한 표현방식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볼 때는 뿌듯했다.”


조동희 조동희

그리고, 작년, 불현듯 과천을 떠나 서울문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흔히들 하는 입버릇처럼 “피곤하고 지루했다”고 농반 이야기를 꺼낸다.

“해왔던 프로젝트들을 더 발전시킬 수도 있겠지만, 일정정도 궤도에 올라섰으니 다른 사람이 해도 문제 없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한 기관이나 단체에 오래 머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개인적인 신념 같은 게 있다. 나 스스로나 조직을 위해서도, 3년에서 5년 정도의 간격으로 변화를 줘야, 서로 주고받을 내용이 있는 관계가 된다고 생각한다. 5년이 지나면 피곤하고 지칠 뿐이다. 그럴 즈음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이, 과천! 하이, 서울!

<레인보우 드롭스>

<레인보우 드롭스>

&ldquo;똑같이 시의 예산을 받아 열리는 축제지만, 과천과 서울에서 여러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유사한 축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하이서울페스티벌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대형공연만이 줄 수 있는 축제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올 개막작이었던 <레인보우 드롭스>(라 푸라 델 바우스, 스페인) 같은 작품은 규모면에서 하이서울에서만 가능한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과천한마당축제의 경우 축제만을 위한 조직인 반면 서울문화재단에서 축제는 재단의 다양한 역할 중 하나일 뿐이다. 서울문화재단의 다양한 사업들과 협업이 가능한 구조라는 점도 현재로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시민참여프로그램을 위한 워크숍을 서울시창작공간에서 하거나, 서울문화재단의 젊은예술가지원프로그램(NArT)을 통해 거리예술가를 성장시킬 수도 있다. 재단의 사업 대부분은 예술가 위주로 진행되는데, 그들이 관객과 만나도록 이끌어내는 역할을 축제가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관의 간섭이 몇 배로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rdquo;

올해 하이서울페스티벌의 폐막공연은 자원활동가들이 꾸몄다. 원래 예정되어있던 공연이 우천으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작곡을 하는 자원활동가가 &lsquo;봄짓송&rsquo;-올해 축제의 슬로건이 &lsquo;봄짓&rsquo;이었다-을 만들었고, 다른 자원활동가들이 안무를 짜 &lsquo;봄짓댄스&rsquo;를 만들었다. 기왕 만든 노래, 축제 측이 문래예술공장의 스튜디오에서 믹싱을 해줬더니, 자원활동가들이 축제 내내 여기저기서 노래하고 춤추는 퍼포먼스를 펼쳤고, 급기야는 취소된 폐막공연을 대신했다. 믹싱한 자작 축제송이 울려 퍼지고, 수많이 사람들이 봄짓댄스를 따라 추고, 폐막공연 때문에 준비했던 불꽃을 쏘아 올리니 작곡자가 감격해 눈물을 흘리더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도시마다의 특성, 혹은 축제마다의 지향 차이 때문에라도 과천에서는 쉽게 추진하지 못했던 시민들과의 교감에도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거리에서 발견한 소통의 방법

&ldquo;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대중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고, 직접 반응을 듣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광고, 방송이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 즈음 만나게 된 것이 거리예술이었다.&rdquo;

결국 마지막이 된 방송 프로그램이 공연예술축제에 관한 것이었는데, 실내공연들은 아무래도 영상적으로 재미가 적어 촬영에 적합한 재미있는 공연을 찾다보니 야외공연, 거리예술이었다. 그리고 촬영차 가게 된 오리악축제(Festival international du th&eacute;&acirc;tre de rue d';Aurillac참고글 보기)에 다녀온 후 다니던 방송사를 그만뒀다.

&ldquo;관객이 예술을 즐기는 모습이 대학로-그는 대학시절, 흔치않은 연극 마니아였다-나 한국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랐다. 거리공연인데도 완성도도 높고 표현양식도 다양했다. 오리악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던 것 같다.&rdquo;

무작정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지만, 프랑스라고 거리예술이 완전히 안착된 장르는 아니었다. 스무 명의 동기 중에 거리예술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은 물론 한 명뿐이었고, 교수도 &ldquo;그건 뭐하는 거니?&rdquo; 묻곤 했다. 「거리예술 축제와 지역문화정책」「거리예술 축제와 창작공간」의 두 논문과 샬롱거리예술축제(Chalon dans la rue참고글 보기)에서의 연수도 마쳤지만, 당장 뭘 해야 할지 막막했을 때, 그를 한국으로 불러온 것이 샬롱 거리에서 만났던 임수택 과천한마당축제 예술감독본지 35호 CEO인터뷰 보기이었다.

&ldquo;조심스러웠지만, 한국에 거리예술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한국 문화예술계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과천에 연착륙을 한 셈이다&rdquo;

&ldquo;불안과 긴장이 축제를 지탱한다&rdquo;

조동희
조동희

이후 7년 동안, 어린이날과 추석명절은 고스란히 거리에서 보냈다. 가족들의 원성이야 둘째치고 지칠 만도 하지 않은가. 특히나 도시, 의 거리, 라는 위험천만하고 돌발변수가 많은 환경에서야 심장이 버텨낼까 싶다.

&ldquo;긴장은 하지만 즐기니까 버틸 수 있다.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대규모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충 공중에 매달리거나 대충 불꽃을 터뜨릴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대부분의 공연을 직접 보고 선택하거나, 혹 보지 못할 경우, 그 공연을 초청한 적이 있는 해외의 축제 관계자들에게 충분한 자문을 받는다. 거리예술이 만들어지는 프로세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네트워크가 나를 확신하게 만든다.

그리고, 축제는 일정 정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거리공연이나 축제에 대한 본질적인 시각차가 있는 것 같다. 지나치게 안전성을 고려하다 보면 작품이 훼손된다. 어쩌면 안전에 대한 무지함이나 무관심, 무모함일지도 모르고(웃음).&rdquo;

좀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무모, 혹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거리예술 기획자로서 가져야할 소양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반대로 약점도 있다.

&ldquo;거리예술은 대부분 도시의 공공공간을 사용하고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행정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아직도 축제진행을 위한 행정적인 조율에 어려움을 느낀다. 다만 효율적인 행정력의 기반이 될 축제컨텐츠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는 중이다.

기획자들이 본인의 예술적 방향성이나 컨텐츠에 대한 고민보다는 다른 기획행정적인 측면에 치중하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본인이 지향하는 예술적 성취가 있어야 기획도 정교화되고, 커리어 역시 명확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 공연예술계 안의 선택지가 굉장히 적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rdquo;

거리예술에 전문성을 가진 기획자와 예술가를 키우고 거리예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인정을 받기 위해 그가 관여하고 있는 또 한가지 일이 한국거리예술센터 운영이다. 이 센터에서는 웹진 [거리예술] 발행사이트 가기, 거리예술작품 비평포럼이나 컨퍼런스본지 127호 &ldquo;도시축제와 거리예술 국제컨퍼런스 리뷰&rdquo; 보기와 리서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센터의 활동을 통해 프랑스의 거리예술제작소처럼 일 년 내내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거기서 만들어진 작품들로 축제를 여는 창작공간을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ldquo;거리에서 예술을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rdquo;

정확한 예술적 지향을 가진 거리예술 기획자가 보는 우리 거리예술의 현 주소는 어떨까.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던 답변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ldquo;거리예술은 실내공연에 대한 반감, 혹은 대항에서 시작되었다. 흔히들, 실내공연을 기준으로 삼아 그 틀로 평가하거나, 실외로의 공간 확장이라는 측면에 치중하는데, 실내공연과는 태생부터가 다른 장르다.

우리나라의 마당극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거리예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80년대에 정치적 이슈를 강조하며 각광을 받다가, 정치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어짐에 따라 쇠퇴하게 된 이유는, 이슈 이외에 마당극이 가진 대중성이나 공간성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럽의 거리예술은 태생부터 정치적 이슈와 미학적 실험이 결합된 형태였다. 반대로 지금 한국의 거리예술은 오히려 순수미학에 치중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그나마, 야외공연이라고 해도 조용하고 한적한 자연에서의 공연을 선호했던 이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크리에이티브 바키본지 79호 하우투 &ldquo;매커니즘에 대항하는 &lsquo;거리&rsquo;에서의 리스크 매니지먼트&rdquo; 참조, 열혈청년예술단과 같은 도심의 무질서, 소란 속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팀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거리예술의 다양성이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보인다. 일상의 공간을 바꾸는 시도들이 늘어나게 되면, 공연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dquo;



조동희: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광고와 방송 일을 하다가 프랑스 리움2 뤼미에르대학 문화기획석사과정과 부르고뉴대학 문화정책 고등전문연구과정(DESS)을 마쳤으며, 2005년부터 과천한마당축제의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2009년부터는 서울문화재단의 축제제작팀장으로서 하이서울페스티벌 기획, 가든파이브 운영 등을 총괄하고 있다.


고주영 필자소개
고주영은 2006년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재직했으며, 현재 국제사업부 지식․정보 파트장을 맡고 있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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