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이미 수두룩하게 나와 있다. 부동산 임대업과 다를 바 없는 국가관의 남발, 돈만 내면 붙일 수 있는 베니스비엔날레 공식행사 로고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36개의 전시를 보고 베니스를 떠났다. 차라리 '예술을 팝니다'라고 내건 아트페어나 옥션이 더 솔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만에 다시 베니스다. 올해로 54회를 맞는 베니스비엔날레는 무려 84개국의 국가들이 참여했고, 특별전시까지 합치면 100개가 넘는 전시가 열린다면 자랑했다. 하지만 걱정스럽다. 과연 몇 전시나 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좋은 전시를 놓치면 어쩌나. 올해의 총감독은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의 디렉터이자 저명한 미술잡지 [파켓]의 편집장 비체 쿠리거다. 그간 세계적인 미술잡지를 만들어오면서 세계적인 작가와 세계적인 작업들을 보아 온, 그녀가 선택한 전시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왔을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지면을 다루는 일과 큐레이터가 주제를 잡아 전시를 만드는 것은 많이 다른 일이니까.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쿤스트하우스의 디렉터이니 전시를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개 기관에서의 전시운영과 세계적인 비엔날레의 운영은 분명 다른 이야기이니. 어디 한번 두고 볼까나?


이탈리아관과 전시장 내부
이탈리아관과 전시장 내부

이탈리아관과 전시장 내부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일루미네이션즈’(ILLUMInations). 역시, 미술이론에 밝고 잡지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 다르다고 해야 할까. ‘웬 계몽?’이라 생각할 텐데, 재치(?)있게도 빛을 뜻하는 ‘일루미’(ILLUMI)와 국가를 뜻하는 ‘네이션즈’(nations)를 구분했다. 덕분에 전시를 풀어낼 수 있는 주제의 층위는 넓어졌다. 빛, 국가, 계몽. 새로운 세기가 열리고도 10년이 넘은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계몽을 말할 수 있을까. 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설마 빛을 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 물음표들은 영 가시지를 않는다.

자르디니 공원에 자리한 이탈리아관은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의 역량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물론 지난 몇 회를 돌이켜 보건데, 본 전시가 가슴 떨리게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덕분에 별 큰 기대 없이 전시장 앞에 섰다. 전시장 외벽이 온통 비둘기로 덮여 있다. 순간, 머릿속에 스쳐가는, 양아치 작가의 작업? 물론, 아니었다. 마우리지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관광객>(Turisti). 아무튼 본 전시에 대한 평을 좀 과장해서 요약하자면, &ldquo;그 시작은 장대했으나, 그 끝은 별로 할 말이 없었다&rdquo;. 게다가 파격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인 틴토렌토(Tintoretto)가 전시 도입부를 열며, 시대를 넘나드는 야심찬 기획의도를 엿볼 수 있었지만, 이어지는 작업들과 전시방식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떤 맥락에 와 있는지를 종종 잊어버리게 했다. 이례적으로 아르세날레 특별전까지 기획한 총감독 비체 쿠리거의 전시는 보면 볼수록 기획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했다.

근래 자르디니에 있는 전시관(pavilion)에서 두드러지는 상황은 &lsquo;국가관&rsquo;이라는 개념이 점점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은 각 국가별 전시관 개념을 떠나 연대하여 노르딕 전시관을 선보였고, 덴마크 역시《콜렉터스》(collectors)라는 제목으로 기획력을 더욱 강조한 전시로 큰 인기를 몰았었다. 그러나 이번 국가관들에서는 어떤 이슈도, 뛰어나게 돋보이는 큐레이터의 역량도, 가슴 설레게 하는 작품도 만날 수 없었다. 그저 예쁘게 잘 빠진 전시가 아니라, 혹은 거대하게 자본을 투자하여 빵빵하게 만들어낸 거대한 설치물이 아니라, 커미셔너와 작가(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lsquo;의미 있고, 새로운&rsquo; 큐레이토리얼십과 전시를 꿈꾼다면 여전히 너무 미술세계를 모르기 때문인 것일까.

이번 비엔날레에는 무려 84개국이 참여했다고 한다. 물론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안에 전시관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베니스 곳곳으로 흩어져 전시를 열었다. 덕분에 국가관만 다 보려고 치더라도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원 없이 타고 다닐 정도로 전시장 전체의 반경은 만만치 않았다. 운동경기도 아닌데 예술에 대해서 어디가 어디보다 낫다느니 하는 평가를 하기가 조금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어이없는 상황에 전시관을 만들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루머인지 사실인지 확인할 길 없지만, 전시관 임대료가 내려가 새로운 전시관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들도 들었다. 그렇다면 비엔날레는 베니스를 살리기 위한 부동산 정책의 일환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결국은 &lsquo;장사&rsquo;인 것을 &lsquo;예술&rsquo;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모두가 덩달아 덩실거리는 것인지. 머릿속에 먹구름이 자꾸 밀려온다.


스페인관 미국관
스페인관 미국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이미 수두룩하게 나와 있다. 부동산 임대업과 다를 바 없는 국가관의 남발, 돈만 내면 붙일 수 있는 베니스비엔날레 공식행사 로고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36개의 전시를 보고 베니스를 떠났다. 차라리 &lsquo;예술을 팝니다&rsquo;라고 내건 아트페어나 옥션이 더 솔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벌거벗고 내앉은 예술잔치를 차마 벌거벗었다고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제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는 아닐지. 어쩜 다시는 베니스비엔날레를 찾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 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났다.



신보슬 필자소개
신보슬은 이화여대 철학과, 홍익대 미학과 석사를 거쳐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7년부터 전시기획을 시작해, 아트센터 나비의 창립멤버(2000-2002),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서울) 전시팀장(2003-5), 의정부디지털아트페스티벌 큐레이터(2005), 대안공간 루프 책임큐레이터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본지 편집위원. nathalie.boseul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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