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김성희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 디렉터였던 프리 라이젠은 “컨템퍼러리란,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목격하고, 생각한 것들을 자신이 선택한 이 시대의 수단으로 표현한 모든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더아프로 인터뷰 참조. 페스티벌 봄 디렉터인 김성희에게도 컨템퍼러리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시․공간의 영역이지만, 새로운 형식과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예술적 비전을 제시하려는 예술가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그에게 예술가는 페스티벌 봄을 만들게 된 동기 자체며 축제는 이러한 만남을 위한 가장 직접적인 통로다.

잘 싸워야만 한다

다섯 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한 김성희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이미 오래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서른 살이 되어서야 우연히 접하게 된 예술경영이라는 영역을 전력을 다해 받아들였다. 그에게 예술경영은 예술에 대한 태도로 읽혀졌다. 예술가로서 늘 컨템퍼러리에 대한 감각을 느끼면서 고등학교 시절서부터는 시대를 앞선 예술의 전위성에 관심이 많았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하드코어가 된다는 그의 말은 이미 예견된 수순인지도 모른다. 예술의 역사를 전복의 역사로 이해한다는 그에게는 남다른 전투적 기질이 엿보인다.

“사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길을 다지고 넓히기 보다는 아직 없는 길을 만들어 가보고 싶은 욕망이 크다. 언제나 새로움을 찾으려는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지 않나. 관습이나 전통, 기존의 믿음을 뒤엎으려면 싸울 수밖에 없다. 아니 잘 싸워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좋고 싫은 게 너무 분명하다. 나의 단점이다. 양적인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많은 수의 공연을 보는 것보다 질적인 차원의 어떤 지점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정확한 매핑에 집중해 행동반경을 정한다. 그러다 페스티벌 봄이 시작되면 나는 공연장에 나가 온종일 그곳에만 머문다. 리허설을 포함해 매 작품을 적어도 4회 이상을 본다. 이때가 제일 신나는 순간이다.”

국내에서 ‘국제다원예술축제’라고 소개되는 페스티벌 봄은, 그의 입장에서는 ‘다원’이라는 용어가 일으키는 관점의 모호함 대신 동시대성을 아우르는 전위의 예술로서 그 가치가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본인 성향에 더 어울린다고 한 그는 그간 국내에서 소개되지 않은 탈장르의 작품과 작가들과 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새로운 작품과 예술가들을 통해 새로운 경로를 진입하고 있는 관객들을 그는 중요하게 여긴다. 그가 생각해온 예술의 비전과 태도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주요한 대상층이기 때문이다. 그는 컨템퍼러리의 힘을 해석의 예술로서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객들이야말로 지금의 지적인 충돌의 유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디렉터로서 시행착오를 많이 겼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배움을 통한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다. 예전에는 좋은 디렉터는 많은 관객들이 보러 올 수 있는 작품을 진열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패드 4G가 나와 기존 제품을 버리는 것처럼 예술가를 소비할 수는 없다. 디렉터는 작가들을 위해 존재한다. 아직 소개되지 않은 예술가라 할지라도 그가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되면 그의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또한 여기에 타이밍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의 존재를 늘 빨리 알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배웠다. 정확한 시기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사실 페스티벌 봄에서 자체제작 비율을 높이고 있지만 실제 예산과 인력 등을 감안할 때 한계는 분명 있다. 페스티벌 봄에서 소개되는 모든 작품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그런 기대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페스티벌 봄에서 소개된 작가가 이를 계기로 다른 페스티벌과 극장에 초청되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발전되기를 바란다.”

미래의 시ㆍ공간을 기다리며

2000년 뉴욕대에서 예술경영 석사를 마치고 귀국할 당시에만 하더라도 아직 국내에서는 예술경영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아니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았을 때 그는 이 직업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규정하고 활동을 병행해야만 했다. 하나의 전문직으로 인식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한편 오래전부터 그가 품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관점이 예술경영이라는 좌표로 다시 설정되면서 그는 끊임없는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프로그래밍을 한 모다페의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더라도 지금 그의 생각들이 포개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금 페스티벌 봄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론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예술의 비전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10년 전이나 지금 이 순간에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목적은 동일하다.

토시키 오카다 <핫페퍼, 에어컨, 그리고 고별사> 페스티벌 봄 2011

토시키 오카다 <핫페퍼, 에어컨, 그리고 고별사>
페스티벌 봄 2011

포사이스 컴퍼니 <덧셈에 대한 역원> 페스티벌 봄 2010 ⓒJulian Gabriel Richter 리미니 프로토콜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페스티벌 봄 2009 ⓒSebastian Hoppe
포사이스 컴퍼니 <덧셈에 대한 역원>
페스티벌 봄 2010 ⓒJulian Gabriel Richter
리미니 프로토콜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페스티벌 봄 2009 ⓒSebastian Hoppe

그간 페스티벌 봄을 통해 배출된 것은 예술가들뿐만이 아니다. 적어도 김성희라는 이름의 디렉터가 펼쳐놓은 판에 기꺼이 동참한 후배 기획자와 제작자도 꽤 된다. 짧은 기간 동안 축제 운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가 분명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조직의 운영자로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것과 조직의 비전과 미래를 책임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앞으로 몇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는 페스티벌 봄의 새로운 디렉터를 기대한다. 한편으로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그는 축제의 미래를 위해 디렉터가 바뀌는 것이 필연이라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떠나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 디렉터가 걱정하는 것은 현실적인 운영 여건이 좀 나아지는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이를 즐길 줄 아는 친구들을 위해 그는 배려하는 여유도 지녔다.

&ldquo;이미(already)와 아직(yet)의 경계에서 아직 도달하지 않은 어떤 시&middot;공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지금의 틈을 포착할 수가 있다. 그래서 동시대성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완성된 어떤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어떤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얻어지는 매우 지적인 유희인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들이 이미 오랜 기간 창작자로서 겼었던 감정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용수나 안무가로 생활했을 때와 디렉터로서 예술경영을 하는 것이 별개가 아닌 연속선상에서 밟아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창작이나 예술경영이나 동일한 프로세스를 밟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디렉터로서의 나의 큰 자산이라고 본다. 이러한 자신감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기적으로는 2008년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부터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종종 오해하는 부분은 축제를 운영하는 데 인맥과 비즈니스를 잘 관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나는 소수의 네트워크를 통해 긴밀하게 움직인다. 과욕은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통제하는 편이다. 지금 하는 것이 과욕인지 아닌지를 늘 생각한다. 타고난 것이 이렇다. 그래서 만약 나보고 극장을 선택해 일하라고 한다면 큰 극장보다 300석 이내의 작은 극장이 좋을 것 같다. 마이너리그가 좋다.&rdquo;

느끼고, 배우고, 즐기라

김성희

지난 10여 년을 거쳐 그는 국내예술계에서 가장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인터뷰 일정을 정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페스티벌 봄의 내년 프로그래밍과 자체제작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한편 최근 국립극단에서 진행된 &lsquo;고래, 시간의 잠수자&rsquo;나 백남준아트센터 등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국내에서도 다원예술의 개념과 영역이 점차 확장되는 분위기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그는 누구보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이야기하며 소통할 수 있는 동시대 예술가와 제작자, 기획자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반갑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호소력 짙은 커다란 눈동자를 자주 깜빡이는 그를 보면 꼭 눈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위에서 언급된 내용이 매우 진지한 어투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그의 대화법은 매우 소탈하다. 마치 자신이 즐기고 있는 &lsquo;놀 거리&rsquo;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당당하게 밝히는 그는 직설적인 대화법을 갖추고 있다. 지난 10년의 고군분투 속에서 그가 지칠 줄 모르는 것은, 이 매순간의 과정을 느끼고, 배우고, 즐기기 때문이다. 그가 뭇사람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사는 것은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성희_이화여자대학교 체육대학 무용과 학사, 석사를 거쳐 뉴욕대학교 예술경영학 석사, 경희대학교 경영학 박사를 마쳤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모다페의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2007년 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 공동 디렉터를 거쳐 2008년부터 현재까지 페스티벌 봄 디렉터를 맡고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과 로메오 카스텔루치, 안 파브르, 라이문트 호게 등과 공동제작을 했으며 안은미컴퍼니의 작품 제작 및 유럽투어를 진행했다.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조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염혜원 필자소개
염혜원은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지식&middot;정보파트에서 웹진을 담당하고 있다. byeyum@gokam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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