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 및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을 선정, 발표했다. 일련의 단계를 밟아 경영부실대학을 선별하고 최종적으로 대학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한 마디로 쭉정이들을 솎아내겠다는 것. 그 의도에는 찬성한다. 현재 전국에 난립한 대학 중엔 솎아내야 할 쭉정이도 많다. 일부 사학재단의 횡령·비리 사건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계도과정을 거쳐도 정상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해당 사학에 대해 극단적 폐교 명령이라도 내려야 한다. 이에 대해선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의식만 공유했다는 점에 있다. 제한대학 선정을 위한 평가지표는, 모든 구성원의 심정적 동의까지는 구할 수 없을지언정, 논리적 이의는 갖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교과부에서 제시한 평가지표는 적의까지 품게 만들었다. 평가기준의 20%가 취업률이라니! 오늘날 상아탑의 위상이 취직을 위한 취업양성소로 떨어졌다지만, 대체 세상 어디에 취업률을 대학 평가기준으로 적용하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삼다니.

추계예대 교수들의 총사퇴 대자보 출처 네이버카페 뿔난추계인들

추계예대 교수들의 총사퇴 대자보
출처 네이버카페 뿔난추계인들

교과부는 이러한 천박한 과정을 통해 총 43개교를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그중 17개교를 학자금 대출 제한대학으로 선정하였다. 이후의 전개는 누구나 아는, 누구나 공분하는 이야기다. 졸업생 취업률이 낮은 추계예술대학교가 학자금 대출 제한 대상인 17개교에 포함되었고, 이에 반발한 교수 47명 전원이 보직사퇴를 결의했다. 재학생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넥타이 매고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하는 예술가를 상상이나 했는가. 애당초 취업률을 지표로 삼은 것 자체가 잘못이지만, 예술가의 취업률은 그 자체로 넌센스다. 학생들 재치 있는 표현대로, 파블로 피카소, 찰리 채플린, 루치아노 파바로티, 톨스토이 등 세기의 예술가들 중 누가 직장인이었단 말인가. 물론 위대한 예술가 모두가 대학 졸업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말이 나왔으니 보태자면, 예술가에게 대학졸업장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유별난 풍조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점진적 폐교의 수순을 밟아 예술가들로부터 그 알량한 대학졸업장마저 강탈하려는 교과부의 모습은 가뜩이나 마뜩찮다. 용렬하고 졸렬한 교과부의 속셈이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관련기사를 들춰보았다. 꿍꿍이까지 알 수는 없지만, 교과부의 주장이 현실과는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명단을 공개하며 교과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정부의 대학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밝혔다. 말만 들으면 마치 지금까지 정부가 교육예산 중 상당한 금액을 대학등록금 지원에 사용하기라도 한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교과부에서 13일 발표한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분석결과를 공개한 기사에 따르면 진실은 그 반대에 위치해 있다.

기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등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데도 인색했다. 한국은 고등교육 단계에서 정부가 지출하는 공교육비의 11.4%만을 학생에게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로 지원했는데, 이는 OECD 평균(20.3%)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한겨레 9.14 ‘정부투자, 초중고엔 평균…대학엔 최하위’). 제목이 드러내듯, 대학에 대한 우리 정부의 투자는 OECD국가 중 꼴찌다. 삽질 그만하고, 그 돈을 교육예산으로 퍼부어도 시원찮을 판에,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사족을 붙이자면, 교과부는 평가를 진행하면서 일부 종교사학에 평가거부의 기회를 마련해줘 특혜의혹을 사고 있다. ‘종교지도자 양성 관련학과 재학생 비율이 25% 이상인 대학에 한해서’라는데, 같은 논리라면 미래예술가 양성 관련학과 재학생 비율이 100%인 예술대학은 왜 그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인가.

이번에 추계예대에서 시작된 연대는 추계예대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는 단지 운 나쁜 한 예술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예술대학의 문제가 될 것이다. 나아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예술가들이라면 이 연대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설령 그대가 갑근세를 내는 예술인이라 할지라도.



김일송 필자소개
김일송은 2003년 [씬플레이빌]에 입사,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했다. 이후 해당 월간지를 비롯, 다양한 인쇄매체에는 글품을, 각종 지상파 라디오에는 말품을 팔면서 공연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금은 발트에서 발칸까지 동유럽을 기행 중이다. 여전히 [씬플레이빌] 판권면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조만간 귀국 예정이다. 트위터 @ils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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