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자원을 배분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에는 ‘숙고의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 게다가 이 숙고의 시간이 절차라는 이름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고, 제도란 법이나 규정으로 나타나게 되니 사소한 규정 개정에도 6개월은 소요된다. 의지를 가지고 이 6개월이 보내고 나면 이미 현장은 저만치 앞서 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다.”

공부가 아니라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어 대학에 갔고, 허랑방탕했던 이십대를 한방에 청산할 방법을 모색하던 중 행정고시에 응시, 청년기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던 공무원이 되었다. 고시 합격으로 앓던 어머니 벌떡 일어나시고, 투여한 노력 이상으로 쏟아지는 주변의 과찬에 다소 속물스러운 한국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26만 8천원(1988년)이라는 소박한 월급과 기대만큼 화려하지 못했던 잡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모범생 행시 출신들과는 달리 ‘출신성분이 다르다’는 자의식 덕분에 지난 24년 공무원 생활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고 자평하는 그는, 현재 속세의 말로 칭하자면 ‘중앙관료’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 김영산 예술정책관.

그러나 이 권위 있는 직함의 이면에는 언제나 ‘중앙정부관료’에 대한 민간인들의 전통적인 선입견이 들끓는다. 심지어 고대 셰익스피어도 ‘언제나 너무 늦게 나타나 도움을 주겠다는 법률, 건방지고 불손한 관료들’이라 발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러한 오래된 통념에도 불구, 그는 문화예술 현장 전문가들이 여전히 기억하고, 언급하고, 찾아가고, 의지하는 퍽 예외적인 공무원이다. 그는 오늘도 “공무원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검지를 좌우로 유유히 흔들며 (도무지 공무원답지 않은 포스로) 인터뷰 질문을 맞이한다.

‘장관님 어찌 하오리까’
‘장관님 어찌 하오리까’

‘장관님 어찌 하오리까’

우연 ‘현장+人’ 인터뷰는 문화예술 현장 전문가를 소개하는 코너다. 김영산 국장은 현장이 아닌 정책과 행정, 제도 밖이 아닌 제도의 내부, 시스템 밖이 아닌 시스템 속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이로 모시게 되었다. 그 이유는 현장인들로부터 자주 언급되었던 퍽 예외적인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여전히 본인을 찾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읽고 있는가? 지금도 그들의 목소리와 활동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들은 왜 김영산 국장을 유독 가깝다고 느끼게 되었을까?

김영산 공무원이란 무엇을 해도 욕을 먹는 직업인데 친근하게 봐 주신다니 영광이다. 그러나 모두 과장 시절의 일이다. 지금은 국회업무 등으로 업무가 확장되다보니 현장과 접촉할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다. 단지 6개월만 근무해도 현장을 다 안다고 확신하는 문화부 직원들을 만나면 “절대 그렇지 않다. 2, 30년 문화예술에 투신한 그분들의 전문성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며 과거의 경험을 전수할 뿐이다. 사실 2004년 이창동 장관 시절, 당시로는 젊은 나이로 공연과장이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 역시 현장에 대해서는 대단히 무지했다. 당시 문화부 정책에 반대하는 ‘연극인 100인 서명’이 일어났는데 장관으로부터 이분들 가운데 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대화를 나눌 만한 열 분을 골라오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 결국 ‘장관님 대체 어찌 하오리까’라고 반문하는 상황이 되었다. 발령 2~3주째라는 것은 변명일 뿐, 소위 공연과장으로 이런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가 싶어 자괴감을 느꼈고 그때부터 현장을 분주히 찾아다니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다 보니 저녁마다 공연도 열심히 보고 밤마다 술도 참 많이 마셨다. 현장예술인과의 만남 속에서 정작 공연과 직원들이 공연을 보러오지 않으니 찾아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뻐해준다는 걸 알았다.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어도 현장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단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다니 이것만큼 어렵지만 쉽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번은 대학로 극단 분들과 만나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했더니, “우리 소원은 대학로 낙산가든에서 갈비 한번 먹어보는 것”이라 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대학로에서 평생을 보내신 분들의 소원이 낙산가든이라니! 그때 실감했다. 아, 예술인들의 삶이 정말 열악하구나!

우연 그러나 현장과 정책 사이에는 언제나 시차와 온도차가 존재한다. 이 차이 덕분에 공공과 민간 사이에는 언제나 갈등과 몰이해가 생겨난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국제적이기까지 하다. 2월에 있었던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의 주제가 ‘아티스트 레지던시’였는데, 공공지원을 얻고자 했으나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는 공무원들 때문에 심한 자존감의 상처를 입은 태국의 국제적인 무용가 피쳇 클런천이 “차라리 ‘공무원-아티스트 공동 레지던시’를 제안한다”고 말해 좌중의 환호를 받았다. 상호 일상을 공유해서라도 아티스트의 작업방식을 공공 종사자에게 이해시키고 싶다는 발언인데, 그만큼 이 둘 사이에는 늘 불가피한 ‘거리’가 존재한다. 차마 개선 불가능한 일일까?

김영산 노력하여 갭을 줄일 수는 있지만 마치 문화지체현상처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행정’과 ‘경영’은 다르기 때문이다. 늘 ‘경영’은 빠르고 ‘행정’은 느리다. 이유는 ‘행정’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관리’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관성, 기준, 원칙이 중요하다. 민간의 자원이라면 사장 한 사람의 오케이로 쓸 수 있지만, 공공의 자원을 배분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에는 ‘숙고의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 게다가 이 숙고의 시간이 절차라는 이름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고, 제도란 법, 규정으로 나타나게 되니 사소한 규정 개정에도 6개월은 소요된다. 의지를 가지고 이 6개월을 보내고 나면 이미 현장은 저만치 앞서 가 있다. 그러나 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다. 사람이 좀 더 현장에 애정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면 이 간극은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1년이 걸릴 일을 6개월로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대상, 행정수요, 즉 현장에 대한 무궁무진한 애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공무원들에게는 ‘순환보직’이라는 문제가 있다. 민관유착, 즉 ‘고인 물은 썩는다’는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특정부문을 위해 일할 수 없다. 공무원들의 직업의식이 요청되는 지점이다. 누가 하더라도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정책을 이루어보겠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현장과 정책 사이

우연 자, 그렇다면 예술 현장인들을 위한 실무적인 팁을 부탁드려 보겠다. 2011년 웹진에서 마포구청의 한 공무원이 ‘예술 현장인과의 소통법’본지 140호 하우투 ‘공무원과 기획자의 소통법’ 보기이라는 좋은 글을 선물해준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공무원과 편하게 만나는 행정요령’을 정리해주어 좋은 반응이 있었다. 예술행정, 정책집행자, 문화예술담당 공무원과 일하기 위한 실무 팁이 있을까?

김영산 기초단위 공무원은 예술현장과 대면접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무적인 소통방법에 대해 알려주신 듯하다. 그러나 중앙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운영방식은 민간을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 소속단체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공연예술센터,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등과 같은 공공기관을 통해 사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장과의 직접적인 소통은 사실 어렵다. 현장과의 소통은 도리어 이들 기관과 현장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우리는 이들 기관과 소통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참여정부 후반부터 이러한 소속단체와 기관들이 급증했는데, 초기 의도와는 달리 현장과 기관, 기관과 중앙부처 사이의 소통에 어려움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이 잘되면 현장전문성과 사업수행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도리어 현장과 정책 사이에 의사소통의 장벽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은 이들 기관에 적극적으로 의사개진을 해주시고, 기관들은 문화체육관광부에 현장의 요구와 소리를 일상적으로 전달해주실 필요가 있다. 즉 이제는 중앙부처와 현장 사이에 있는 기관들이 사업에 관한 전문성을 부처로 전달해주는 능력뿐 아니라, 중앙부처가 요구하는 행정절차와 공정한 집행이라는 전문성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우연 그동안 [weekly@예술경영]에서는 현장과 정책 사이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는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었다. 상호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오늘 이 중 하나의 이슈를 골라 예술정책관으로서 의견을 피력해 달라.

김영산 ‘뜨거운 감자’가 제법 많다.(고심) ‘문화체육관광부인가? 문화건축부인가?’라는 이슈를 골라보겠다. ‘예술현장, 여전히 토목공사 중’이라는 비판이다. 여기저기서 공사가 난립하다보니 문화체육관광부 사업도 이렇게 해석되는 것 같지만, 사실 예술의전당이 설립된 후 20년 동안 중앙정부 주도의 인프라 건립은 거의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역사박물관, 한글박물관 정도이다. 기무사터에 짓고 있는 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예술계의 숙원사업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에 가도 그 나라의 수도에 상징적인 내셔널갤러리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이런 인프라가 없었고, 도심에 자리한 수도사령부 자리에 2,500억 원 이상을 투입하여 문화 인프라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실행되기까지는 어려운 일이었다. 역사박물관도 한글학회의 오랜 요구에 의해 건립되는 것이다. 문제는 지자체다. 현재도 지역문화예술회관은 계속 설립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현재 예산구조상 지자체의 예산은 광역특별회계로 운영되기 때문에 중앙에서 모든 예산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가 없고 지자체의 결정에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부처에서 기존 시민회관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인프라 건립보다 시설운영,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신규 공연장들이 우후죽순 지어지고 있는 중이다. 인구 9만 명의 도시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2천석 극장을 짓는 계획을 낸다거나, 옆 군에서 천석짜리 공연장을 지으면, 안되겠다, 우리는 천백석 극장을 짓겠다고 하는 식이다. 지역 문예회관 난립에 관하여 국비 20억 원 정액 매칭으로 한도를 정해 이를 통제해보려 했으나 공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가 통제해야 하는가? 중앙정부가 아니라 바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우리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문예회관에서 민방위 훈련을 받기 보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나고 싶다”고 주장해주셔야 한다.



통제와 가능성의 시선 통제와 가능성의 시선

통제와 가능성의 시선

우연 이제, 지금껏 해온 일에 대한 자평을 듣고 싶다. 문화부 생활을 하면서 정책적으로 참 잘한 일이라고 자찬하는 일과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워 반성하는 일을 말씀해달라.

김영산 잘한 일이라…. 예술경영지원센터 설립? 서울아트마켓?(웃음). 사실 잘 아시겠지만, 서울아트마켓 설립 시에도 공연예술계의 찬반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교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프라로 성장하지 않았는가? 공연예술실태조사도 있다. 당시 예술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현장인프라를 진단할 수 있는 기반이 없었는데 지금은 시각분야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트앤비즈니스사업(A&B)도 한정된 국가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으니 기업과 예술단체를 매칭 시키려고 시작한 일인데 첫 의도만큼 잘 되었으면 한다. 부끄러운 일은…, 최근의 일이다. 문화부 생활을 하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예술인 복지에 힘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예술인들의 생계가 해결되고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얼마 전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다. ‘예술인복지법’이란 이름으로 법이 통과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다. ‘소외계층’과 같이 특정 계층을 위한 법은 존재하지만, 예술인이라는 특정 직업군을 위한 법이 제정된 것은 국제적으로도 퍽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법 제정 후에 문화부 내에서 성과라 불려지고, 바깥에서 예술계 이슈로 언급될 때마다 스스로 마음이 슬프고 뒤통수가 뜨겁고 부끄럽다. 왜? 내용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앙꼬 없는 찐빵’이라 하시는데, 맞다. 11월 시행인데 시행령, 시행규칙을 만들고 재단설립을 하면서 후속으로 채워야 할 내용이 많다. 그 ‘앙꼬’를 채우는 일이 관건이다.

법과 제도와 시스템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규제와 통제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가능성과 미래도 열어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나 창조적인 문화예술에 관한 한. 그러나 언제나 통제의 시선과 가능성을 향한 시선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하는 법. 바로 이 갈등이 가장 첨예한, 가장 불편한 공간이 바로 현장과 정책 사이일 것이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이 불편함 속에 휘말리는 오해도 있지만 늘어나는 이해도 있다는 것을, 문제도 있지만 해법도 있다는 것을. 24년 공무원 생활동안 이 불편한 공간 속으로 자진출두 하였을 때 과연 음주량은 대폭 늘었고 늘어난 음주량만큼 보람도 컸다고 그는 말한다. 공무원으로서 대체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회의가 느껴질 무렵, 현장의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은 ‘내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인내와 노고도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문밖에서 시끌벅적 드센 부산 사투리가 들려온다. 부산지역 공연장 관계자분들이 문화부에 오셨다가 얼굴이라도 꼭 보고 가겠다며 소란하다. 잽싸게 말끔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그는 국장실 문턱을 후다닥 넘어 화창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눈다. 또 무언가 불편한 갈등을 경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무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지칭하기엔 이렇게 그의 사무실 문턱은 낮다. 그는 여전히 이 낮은 문턱을 넘나들며 현장과 정책 사이, 그 불편한 경계에 선다. 이것이 그가 사는 방식, ‘엣지(edge) 있는 공무원으로 살기’이다.


김영산은 한양대 사회학과, 동 대학 행정대학원 석사, 플로리다주립대 예술행정 석사를 마쳤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 예술정책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그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 저작권 정책관, 문화정책과 과장, 정책홍보관리실 혁신인사기획관, 예술국 예술정책과장 등을 거쳤다.



우연

필자소개
우연은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장으로, 서울아트마켓, 해외진출지원사업, 지식정보사업을 총괄하고 있다(2007~현재). 서울예술단 PD,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기획실장,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기획실장을 역임했다.
wyeon@gokam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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